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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by 아프로뒷태 2010. 11. 4.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듣고 있나요? 당신을 부르는 소리를. 당신이 떠난 후, 나는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자꾸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을 잊기 위해서예요. 그래요. 나는 영화를 보면서 당신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잊곤 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시네마 천국>의 엔딩 씬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 영화에 바로, 어제의 당신과 내가 있었어요. 어쩌다 그 씬을 보게 되었을까요. 영화를 보는 것은 진정으로 당신을 잊는 일이 아니었어요. 잠시 당신을 망각하는 일이었어요. 망각은 또다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요.

 

보고 있나요? 나는 어두운 밤, 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와 불을 켜면 형광등이 깜박거리고 그 빛 아래에 누워있는 나의 육신을 보곤 해요. 그 육신이 내게 말을 해요. 손을 흔들면서. "수고했어. 이리 와." 당신도 그랬을까요? 어두운 밤에 불이 켜진 집으로 들어오면 그 빛 아래에 누워있는 나의 육신을 보고 행복했었나요? 수고했다고 안아주는 내가 반가웠나요? 어쩌면 당신은 외롭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당신의 옆에 항상 내가 있었으니깐.

 

당신도 그랬을까요? 하루 종일 움직이고, 뛰고, 사람들과 말을 하고 나면 입안에서 단내가 나요.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피곤이 몰려와 가만히 있어도 눈꺼풀이 절로 내려와요. 그럴 땐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편안히 잠을 자기 위해 음식을 먹어요. 위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야 잠이 더 잘 오거든요. 잠을 자야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혹시 기억해요? 어두운 밤이었어요. 당신은 나의 손을 잡았어요. 나는 깜깜한 거리에서 당신의 손을 놓칠까봐, 당신을 잃어버릴까봐 손에 힘을 꽉 주었지요. 그리고 당신의 큰 손에 쥐어진 나의 작은 손을 보며 나는 당신이 나의 손을 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확신이었어요. 아주 분명한 확신. 하지만 당신의 큰 손이 나의 작은 손을 놓은 것은 고의였나요? 아니면 내가 당신의 손을 놓친 건가요?

 

당신은 몰라요. 내가 어떤지. 당신이 나에게 진실의 전부를 말함으로써 나는 절망을 보고 말았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절망을. 그러나 절망을 이겨내야 했어요.

 

당신이 떠난 후,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떠날 때, 나는 꺼이꺼이 숨이 넘어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잖아요.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 소설의 마지막으로 대신하며 전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다른 사람의 소설이 아닌 바로 나의 소설로써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당신의 여자가 당신의 팔에 달라붙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한 순간의 놀이 뿐이었어요. 잊혀 질 수 있는 기억, 아무 것도 아닌 기억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나에겐 잊어지지 않는 기억, 잔인한 기억이에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기억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의 기억에 의존하면 당신의 기억이 나의 삶을 지배하겠지요. 그 기억에 갇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겠지요. 오히려 나는 당신이라는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할 거예요.

 

            나는 당신과 당신의 여자가 보는 앞에서 뒤돌아서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아요. 당신과 당신의 여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데, 나는 걷지를 못해요. 발바닥이 땅에 달라붙었나 봐요. 발을 땅에서 떼어보려고 용을 쓰는데, 나의 등 뒤에서 당신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요. 아, 그제야 발이 움직여요. 한 발 두 발 앞으로 나아가요. 조금은 절뚝거리지만요. 길바닥에 나의 왼쪽 신발이 덩그러니 있어요. 그 신을 줍고 걸어가는데 가슴이 텅 비어버린 듯 묵중한 것이 깊숙이 가라앉아요. 뜨겁던 몸의 열기가 구멍이란 구멍으로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 몸의 어딘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한 것이.

 

            나는 집으로 들어와 당신을 위해 퍼 놓은 밥을 먹어요. 식어버린 갈치조림에서 비린내가 나요. 이를 꽉 물고 밥을 먹는데 어금니의 잇몸이 아려요. 드디어 아픔이 느껴져요. 생선가시를 빼려는데 잘 빠지지 않아요. 빠질 듯 말 듯 한 것이……. 생선가시 때문인지, 당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나요. 이것은 나의 욕망과 질투가 아니라, 남의 시선에 의한 욕망이에요. 두려움 때문에 고통을 피하려고 애쓰는 욕망이에요.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적당히 살고 싶은 거예요. 치열하게 살아가려면 목숨이 몇 번이고 필요할 테니깐요.

 

             아, 생선가시가 뽑혔어요. 나는 당신에게 벗어난 걸까요? 그런데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는 당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량 생산품처럼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인가요? 사랑도 이제 통조림에 넣어 팔게 되는 시대인가요? 좀더 비싼 가격의 통조림에 들어가 누군가 선택해주길 준비해야 하는 건가요? 혹시 그런 게 있나요? 갈치조림을 통조림으로 만들어놓는다면 유통기한을 영원히 두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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