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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하우게.

by 아프로뒷태 2010. 11. 18.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내리는 것을

어찌해야 하나,

춤추며 팔랑거리는 솜털에 대고

둔중한 창을 겨누어야 하나,

어깨를 구부린 채

오는 대로 받아야 하나?

 

어스름이 내릴 무렵

막대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도와주려고.

별 힘도

안 드는 일이다.

막대로

툭 두드리거나

가지 끝에서

휙 흔들면 그뿐-

 

사과나무가

제자리로

튕겨 돌아오는 동안

털린 눈을 고스란히

맞기는 해도.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다, 어린 나무들은,

바람 말고는 어디에고

숙이는 법을

아직 배운 적이 없다-

이 모든 일이

다만 재미요

짜릿한 놀이일 뿐.

수확을 맺어본 나무들은

눈을 한 아름 얹고도

아무렇지 않다.

 

 

 

 

검은 십자가들

 

 

검은 십자가들이

흰 눈밭에

비 맞으며 구부정히 서 있었다, 기우뚱한 채.

 

죽은 자들이

십자가를 메고

가시밭 황야를 건너

여기 얼음 덮인 덤불마다

내려놓고

잠들어 있다.

 

 

 

살얼음

 

 

가을 폭풍이 지나간 후

피오르드는 잠잠했다.

이제 그것은 누워

우주와 별이 되비추고

달은 그 위로

금빛 다발을 풀어낸다.

 

그리고 어느 밤

검게 빛나는 심연은

강철 막을 덮었다

-피난처를 위해.

새들과

던져진 돌멩이를 견디고

눈에게 드러누울 자리를 내주었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물인가?

 

겨울 폭풍과

깊은 해류가

강철 표면을

별안간 가르고

부숴 으갤 때까지.

 

조심하라, 너의 평화는 어디 있는가,

너의 목적, 너의 관계는?

잠자는 바다 위의

살얼음.

 

 

바위산 아래

 

바위산 아래 산다,

바위산인 줄 알면서.

그래도 밭에 씨를 뿌리고

지붕을 단단히 묶고

아이들을 놀게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밤이면 잠자리에 든다.

 

어느 여름 저녁

어쩌면

긴 낫자루에 기대

바위산이

있다는 쪽으로

얼핏 눈길을 주게 되리라

혹은 어쩌면 어느 밤

잠에서 깨어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세우리라.

 

그러니 바위가 굴러 떨어진다 해도

미처 몰랐다고 할 순 없으리.

그래도 일어나

바위산 아래

푸른 밭을 치우러 나갈 것이다.

-생이 지속되는 동안은.

 

외로움의 산 뒤편에서

 

외로움은 달콤하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이

열린 동안은,

네 자신만을 위해

네가 빛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외로운 산이

등 뒤로 무너져 닫히는

그날,

눈먼 비탄으로

너는 부르짖을 것이고

닫힌 벽을

손등으로 내려칠 것이다.

 

또 별에게,

돌에게, 바다와 바람에게 호소할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그들보다 하찮은 존재로 만들며.

 

너-외로움의 산 뒤편에서!

돌아 나가는

숨은 물줄기 하나 있다

신드바드처럼

따라갈 용기만 네게 있다면.

 

 

 

추와 종

 

 

나는 종 속의 혀

무겁고

침묵하는

혀.

 

나를 건드리지 마라-

쇠 옆구리를 찌르는

내 몸짓으로

침묵을

부수게 만들지 마라.

 

종이 흔들리기 시작할

그때에야

나 또한 치고

흔들고

다시 칠 것이다

깊은 쇳덩이를.

 

 

 

동족

 

 

자작나무와 동족이라면

오래 버틸 순 있을 게다.

바람과 비를 견디고

마리칼을 물어뜯는 땅을 견녀내고.

하지만

늘 밝고 곧을 순 없는 법,

바위 산비탈의 자작나무는

울퉁불퉁 뒤틀리고

잔가지들은 거무스레하다.

 

소나무와 동족이라면

역시 버틸 순 있겠고

척박한 땅일수록

더 오래 남을 게다.

하지만 나이테 한가운데는 쉬이 쪼개지고

폭풍 속에 무거우며

눈이 내리면 침울하다.

 

독초와 동족이라면

가장 오래 버틸 게다.

노랗고 푸른 수염에

끔찍이 질기고 사나울 터,

그 무엇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피오르드 건너편의 강

 

떨어지고 떨어진다

어제처럼 오늘도,

독수리만이

내려 덮치는

절벽으로 떨어진다-

쉼 없이 떨어진다,

바위 위로 무겁게

떨어진다,

소리 없이

노래 없이

몸부림치며 떨어진다-

골짜기와 바위틈에서

새어 나온다.

흰 수염으로

거품을 단다,

멈춘다

떨어진다

그리고 걸려 있다-

시간을 벗어나

떨어진다

악몽에 갇혀-

한 마디도 뱉을 수 없다,

어떤 소리도……

 

 

 

만남

 

 

그들은 만났다-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이며.

다음 순간 그녀가 말을 건넸고

한두 걸음 그의 곁을 따라 걸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모든 사람을 알아볼 순 없는 법.

그녀는 아직 젊었고

눈동자 속의 빛도

여전히 까맸다.

 

말들은 떨어져 내렸다,

열린 바다를 가운데 두고

각자의 뱃전에서 던지는

낚시 추처럼.

 

나중에서야 그는

그것들이 엉켜버린 걸 알아차렸다.

바다 깊이

 

변덕스런 해초 숲과

난데없이 갈라진 틈 위로

해류들이 다투는 지점 어디께.

 

그녀는 어찌나 조심스러웠던지!

재빨리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에겐 끊어진 줄 끝과

그녀의 낚싯바늘이 있었다,

구명밧줄이

던져진 줄은

알지 못했어요.

 

천천히 진실이 떠오른다

 

잠에서 깨자마자

무겁고 어둡게

가라앉고

굳어가는 마음을 느낀다는 것……

 

아직 시간이 있다

 

네가 노래하는 것은

낡은 그림자,

네 자신의

그림자.

 

태어나지 않은 비전들이

너의 날을 위협한다-언젠가 되어야

그것들에

생명을 줄 것인가?

 

아직 시간이 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잔디는

푸르다고.

 

봄의 피오르드

 

그의 선물에는 으스스한 데가 있다.

암녹색 생장물에는

봄의 태양이 알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이물감이 있는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자라난 엽상체들,

썩은 내 나는 분비물과 고약한

침전물과 끈적한 돌과

깊고 검은 물속에서 밀려 올라온

얽힌 수초 더미.

그렇다, 그가 창백한 해안에 선사하려는

초록 벨벳의 띠는

얼음 아래서 짜여졌다, 꼴풀과 미나리아재비를

본 지도 오래일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땅거미가 질 무렵 그의 배려는 빛난다,

얼어붙은 땅을 두른

부드러운 벨벳의 초록 테두리, 그리고 직조공은

조심스레 물러나

눈을 감는다.

 

다시 노래하다

 

내 마음속 깊이 강이 다시 노래하고,

서늘한 밤의 나라로부터 바람없는 고요가 내게

와 닿는다,

다른 바다에서

꿈처럼 푸른 산봉우리들이 스스로를 비추는 곳

으로부터.

 

하지만 나의 말들은 무엇인가?

북쪽을 면한

폭풍으로 튀틀어진 숲,

한낮의

고통스런 열기와 마주한

울퉁불퉁한 바위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커튼을 연다

 

 

잠들기 전 커튼을 연다,

깨어있는 동안 살아 있는 어둠을,

숲과 하늘을 보고 싶다. 나는 안다, 무덤에는

볕을 내다볼 구멍이 없다는 것을.

 

서편으로 오리온이 왔다, 영원히 사냥감을 쫓으며-

나보다 더 멀리 오진 않았다.

바깥 체리나무는 헐벗고 검다.

거대하고 푸른 하늘 굽이엔

단단한 손톱을 달고 아침 달이 다가온다.

 

 

 

신에게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만 같아, 하지만

네 완강한 발톱은 종일 내 시야에 있었지,

산은 산일 뿐이고, 신이 그 무게를 재었다고.

웅장함은 본 적이 있고, 고요 또한 그랬다,

무한과 맞서는 나의 오만함엔

설명이 끝난 기호일 뿐.

 

하지만 오늘 이른 아침 너를 보았다, 일출을 기

다리며

날 채비를 마친 독수리 같았다.

이제 숲 꼭대기 너머에서

너는 넓디넓은 날개를 접는다. 그러자 어둠과

별이 너의 것이다.

 

해안에서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등을 돌렸고-떠났다.

바람과 구름, 그렇다, 심지어 바다마저 등을 돌

렸고

어두워졌다, 해안의 돌은 뛰어들고

짚 오라기 하나, 파도 하나하나 다른 해안으로

서둘러 떠났다.

 

 

저녁 구름

 

 

구름이 온다

먼 해안에서 온

인사를 싣고,

내게 소식을 가져온 지는

오래.

저녁 하늘 높이

얼굴을 붉히지만

그 모든 것이 분명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

그러니-아직 세상에는

희망이

남아 있나보다.

 

 

 

산사태

 

 

네가 웃고 있다면

그건 저 멀리 있다

-차가운 눈 위

햇빛 한 점의 반짝임 속에.

 

다만 고요하고 진진한 존재,

그것이 너다.

누가 짐작했으랴

네가 얼어 육중한 살인적인 바위로

옷섶을 풀어헤칠 줄은.

 

위험하고 헐겁다,

이 돌들은,

너는 서서

그들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아래편 숲에서

그들이 우레 치는 소리를,

껍질 벗은 나무 둥치를 쪼개고 헤더 덤불이나

그런 류의 죄 없는 덩굴식물을 쓸어 뭉개는 소리를

-이런 것들은 너와 함께

골짜기로 내던지는 소리를.

 

그러는 동안 너는-너는 하늘 높이

머리를 치켜든 채,

뻣뻣하고 차가운 바람에

이마를 식히며

휘파람을 분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하우게.

 

하이데거의 대상을 관찰하는 시선을 가진 시인 하우게.

 

 

 

 

 

 

우리가 비밀스레 간직하는 굼

무언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리라,

분명 일어나고 말리라고-

시간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문들이 열리고

암벽이 열리고

샘이 솟아나리라고-

꿈이 열리고,

어느 아침 미끄러지듯 들어가리라고,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어느 작은 항구로.

 

 

 

 

 

하우게의 시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그의 시가 좋아서라기 보다

 

그의 주름 때문이었다.

 

사람은 세월에 따라 몸에 주름이 드러나는데,

 

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시간이 뭍어나는,

 

인고와 노력의 결실이 뭍어나는 주름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어느새 세월이 다가왔고, 

 

주름이 한 줄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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