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그랑프리 영화제>가 아트하우스 모모 극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다가오는 수요일에 영화제는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깐느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라는 세계 우수한 영화제의 수상작들을 극장에 상영한다는 것에 상당히 의미를 느꼈고, 설레어했으며 보람을 느꼈다. 상업영화에 밀려 예술영화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예술영화의 자리를 관객에게 홍보하고 곱씹게 하는 일은 인문예술을 발전시키는 일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제 기간동안 상영할 영화들을 선정하고, 각종 언론매체의 기자들에게 보낼 보도 메일을 작업하는 동안 나는 몸살을 앓았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추워진 탓도 있었지만 여름내내 앓던 마음의 병이 몸속 깊이 퍼져 체력이 무한히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늘이 절박하고 소중한 사람은 내일이란 없다. 잠을 미뤄서라도 할 일은 마무리 해야 했다. 그리하여 <세계 3대 그랑프리 영화제>는 탄생되었고 기자와 회원들에게 영화제 소식이 전달되었다. 그 덕에 조선일보에서 이번 영화제를 지면에 실어주었다.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의미 깊었던 것은 흥행과 상업성에 뭍혀 창고안에 쌓아둔 필름들을 밖으로 꺼내어, 극장에 상영한 일이었다. 그럼으로해서 관객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게 된 것이다.
모두들 좋은 영화를 DVD로 관람하는 일보다, 극장에서 관람하면 더 새롭게 감화될 것이다. 또다른 느낌의 영화세상을 경험할 것이며 예술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소중한 찰라이지만 지적재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의 작품중에서 유독 극장에서 못봤던 영화가 한편 있었다. 영화제를 기획하면서도 정보로만 접하고 있었지, 직접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라 더욱 기대됐다. 그것은 바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이다.
참고로 내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일본문화교류재단과 협의하여 영화제를 기획할 계획이다. 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국내에 소개된 일본의 청춘영화보다 일본의 고전작품을 소개하는 일에 의의를 둘 참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서 <나라야마 부시코>를 상영하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 깊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를 통해 작가 후가자와 시치로의 두 작품 가로전설(노인을 버리는 전설)을 토대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와 농촌의 성을 묘사한 <동북의 신무여>를 한 데 모아 모자간의 정, 생과 사의 근원을 추구했다.
영화는 수백 년전 일본 산촌의 원시적 생활상을 장면마다 그려낸다.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수간에서 생매장까지, 갖가지 기담을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리얼하게 담았다. 이 같은 느낌은 감독이 배우와 스탭을 이끌고 산속 폐촌에서 2년 동안 살며 찍은 결과이다. 어머니의 역의 사카모토 스미코는 치아를 부러뜨려가며 열연했다.
영화의 포스터이다. 외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인간의 희비극이 담긴 작품이라 전혀 외설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수백 년전,한 마을의 관습에 따르면 일흔 살이 된 노인들은 나라야마의 산의 꼭대기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다. 나머지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인들은 나라야마로 당당히 떠나야했다. 그것이 기품있는 죽음을 맞는 일이었고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아남기 위해 노인을 죽여야 하는 '기로전설'. 우리에게도 '고려장'이라는 비슷한 풍습이 있었음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낯설지는 않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담보가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에 담겨 있다. 일흔 살이 된 어머니가 아들과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나라야마 산으로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애틋한 이야기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 밑바닥에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슬픔이 등장인물의 삶을 훑어 나간다.
여기에 또 다른 스토리가 더해진다. 산속 깊은 곳에서 성풍속의 원시성과 사회성을 풍자적으로 풀어나간다. 이 부분의 스토리는 영화 내낸 웃음과 비소를 터뜨리게 한다.
영화가 깐느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토리로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였다. 다츠헤이 (오가타 캔)은 겉으로 보기엔 묵묵하고 사내다우나 심연은 연약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단지 풍습에 의해 어머니, 오린을 나라야마 산으로 보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를 묵묵히 이행하는 모습에서 아들의 슬픔과 비애를 발견하게 된다.
오린은 현명한 할머니이다. 지혜롭고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앉을 줄 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굽힐 줄 모른다.
오린의 아들이다. 그는 바보 소리를 듣는다. 특히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그에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정말 씻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야마 산골의 원시적 성풍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형성되어 있기에 그에게 향상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나라야먀 산골에서 여자는 귀한 존재이다. 그 대접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생산성의 문제와 관련있다. 산골에서는 식량이 없다보니 식량을 쓸데 없이 축내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대접받는다. 그래서 어떤 여자도 귀한 존재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
오린이 나라야마 산골로 가서 죽기로 결심하면서 아들에게 새로운 여자를 점지해준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심성이 곧고 일을 잘하여 오린의 신뢰를 얻는다. 그녀의 굳센 장단지를 영화내내 잊을 수 없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그 중 임종을 앞둔 여자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죽는 날 밤, 남편은 아내에게 유언을 한다. 집안이 흉하고 조상들이 장수하여 나라야마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지 못하고 병으로 죽는 것은 예전에 집안에 들어온 강간범을 때려 죽여서이다 라고. 그리하여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언을 남긴다. 아내는 남편의 유언을 따른다. 그 모습에서 인류의 원시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성풍속을 엿볼 수 있다.
오린이 나라야마 산속으로 떠나기 전, 마을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제를 보낸다. 그녀를 떠나 보내는 원로들이 행하는 의식들이 이색적이다. 사진 속에 있는 독은 술독이다. 이 술은 오린을 보내기 위한 축제의 술독이자, 영혼과 육체를 달래기 위한 위로의 독이다.
오린은 아들에게 나라야마에서 죽는 일이 왜 명예롭게 죽는 일인지를 설득한다. 그리고 평생의 짐으로 안고 살아왔던 남편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준다. 오린은 남편이 심약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나라야마에 보내지 못하고 죽은 일을 치부로 느낀다. 그리하여 오직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나라야마 산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강조한다.
나라야마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어머니를 업고 산을 오르는 일은 이별의 슬픔 못지 않게 고통이다. 발톱이 떨어지고 부러지는 상황에서도 산을 올라야 하는 아들의 마음, 그것을 재촉하는 어머니의 마음. 이들을 지켜보는 내내 관객으로서 나의 마음이 불편했다.
산을 오르는 노인은 절대 말을 해선 안 된다. 산을 오르는 내내 말을 하지 않는 오린, 이를 보는 관객들 또한 침묵으로서 긴장하며 지켜봐야 했다.
나라야마에 가는 날, 눈이 오면 행복해진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로 평온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나라야마에는 까마귀들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뜯겨먹거나 굶주림으로 죽는 일은 가혹하다. 그래서 나라야마에 가는 날, 눈이 오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고통없이 죽음을 맞는 것보다 행복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츠헤이가 어머니 오린과 헤어지는 순간이다. 10여분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꼼지락거리며 소리를 낸다. 객석에서 여기저기 휴지를 뜯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아들과 어머니의 이별을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남녀 할 것없이 소리 없이 눈물을 거두는 소리가 극장안에 가득하다.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삶의 진리다. 그러나 <나라야마 부시코>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안에는 어떤 감동적인 소설도 따라 올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20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였지만. 영화를 소설로 완성하기도 하였다. 이 소설의 가치는 그 폭발적인 감동에 있다.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일본영화 100년 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영화적인 찬사를 차치하고서라도 한 편의 소설로도 아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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