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동경에 사는 그녀를 찾아가다1

by 아프로뒷태 2012. 4. 29.

 

 

세관 검사대를 지나 수하물 수취소로 갔다. 천천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케리어를 찾았다. 찾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낡은 바퀴의 검은색 케리어는 금방 눈에 띄었다. 케리어를 들고 공항 밖으로 나가며 핸드폰 전원을 켰다. 바탕화면에 한국 시간과 일본 시간이 나란히 떠올랐다. 두 나라 사이에 시간차는 없었다. 그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녀의 문자메시지였다.

 

 

케이큐선을 타고 시나가와로 와, 그곳에서 환승해서 야마노테선 전철을 타고 신주쿠에서 내려.

 

 

그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무작정 그녀가 말한 대로 찾아가볼 생각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백지장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목적지를 향해 찾아갔을 때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었다. 물끄러미 전창을 올려보았다. 전철로 이어지는 안내표지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한글로 쓰여진 안내표지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낯선 나라, 일본에서 읽게 되는 한글은 친절하고 다행스럽기 보단 자본주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명동거리에서 흔히 어깨를 부딪치게 되는 일본인들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들은 한 손에 일본어로 된 서울지도를 들고 일본어로 안내된 표지판을 보며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한화를 꺼내 소비를 시작했다. 소비하고 또 소비하고. 여행은 여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하나의 소비산업으로 현대인에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시대에 방랑자라는 말이 휴머니스트로 느껴질까?

 

 

 

 

 

전철 티켓을 끊기 위해 무인발권기 앞에 섰다. 하네다공항에서 시나가와 역까지 270엔. 한국에서 환전한 1000엔을 투입하고 270엔 버튼을 누르자, 티켓과 거스름돈이 나왔다. 시나가와로 가는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렸다. 기둥에는 그림들이 붙어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 사꾸라, 판화가 호쿠사이(1760-1849)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특히 호쿠사이의 그림은 익숙했다. 물거품이 일어나는 일본 파도 그림이었다. 생명의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져 미국 사람들은 그 그림을 방 벽에 붙여 놓는다고 했다. 그림 속에는 일본의 상징인 뾰족한 후지산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산봉우리의 눈이 녹지 않는다는 명산, 후지산의 설경을 볼 수 있을 지 모를 일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에도 녹지않고 찬 기류를 품고 있는 후지산의 위엄이 대한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있었다. 옆에 앉은 중년의 여자는 출근을 하는 길인 듯 했다. 아직 졸음이 오는지 연신 하품을 해대었다. 일본에는 야외전철이 많아 스크린 게이트가 많다고 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천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은 야외전철이 없고 주로 지하만 달려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전철을 타면 한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야외를 좀처럼 구경할 수 없다. 물론 1,2호선은 예외였다. 언젠가 1,2호선을 타고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끝과 끝을 오가는 일은 생각만큼 짧지 않은 긴 여행이었다. 1호선을 타고 도심을 떠나 외곽으로 나아갔을 때, 조금은 사람의 살 냄새가 났다. 풀 비린내도 났던 것 같다.

 

 

 

전철이 도착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승객들이 많지 않았다. 일본의 전철은 서울의 지하철보다 폭이 좁았다. 전철의 폭이 부산의 지하철쯤 정도 될 것 같았다. 부산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과 달리 앙증맞은 부분이 있었다. 하네다 전철을 탔던 역은 지하였지만 출발하자마자, 곧 지상으로 향했다. 어느 곳이나 아침풍경이 늘 그렇듯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청신호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짐을 싣고 달리는 화물차, 교통을 정리하는 교통관리인, 보도에서 운동화를 신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 그들을 스쳐지나면서 나는 서울이 아닌 낯선 세계에 와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리의 환경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밤 청소부들이 깨끗이 거리를 청소해놓은 듯 했다. 그들은 먼지 한 줌도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거리는 상당히 깨끗했다.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는 거리. 무엇보다 가로수가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풀 한 포기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풀. 도시인에겐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풀,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생각한 풀. 하지만 시골에서는 달랐다. 생명이 있는 곳에서 풀은 함께 공존했다. 그 풀이 동경의 거리에 즐비하게 피어나 있었다.

 

 

 

 

 

이 도시의 분위기는 무엇인가? 한국과 시차도 다르지 않는 이 땅에서 낯선 풍경과 마주하고 난 뒤, 아주 오랜만에 새로움에 눈뜨는 환희를 맛보았다. 특이한 구조의 빌딩들, 멋없지만 단층의 단조로운 건물 속에서 일본인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달랐다. 나는 불현듯 그들의 생활방식이 담긴 집과 거리를 보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시나가와 역에서 내려 신주쿠로가는 전철에 환승해야 했다. 시나가와 역에서는 한글로 된 안내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일본어는 무지한 터라 어설픈 영어로 역무원에게 물어 환승 티켓을 사고 신주쿠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일까? 튀김 냄새 같기도 하고, 라면 스프의 냄새 같기도 했다. 전철이 도착했다. 전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다양한 연령층의 일본인들을 볼 수 있었다. 셀러리맨들, 손거울을 꺼내 립스틱을 바르는 할머니,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 밤을 새워가며 놀았는지 부시시한 청춘들의 소근거림, 조곤조곤 말하는 그들의 대화태도가 이색적이었다.

 

아, 그런데 이 냄새는 뭘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