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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동경에 사는 그녀를 찾아가다 3

by 아프로뒷태 2012. 5. 4.

 

춥지 않니?

에노시마 섬을 나왔을 무렵, 바닷바람에 체온이 떨어져 꽤 피곤한 상태였다. 따뜻한 원두커피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가게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말하며 꼭 데려가고 싶은 커피가게가 있다고 했다. 그곳이 여기에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전차를 타고 좀 더 가야한다고 했다. 그럼 한 잔 정도 마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닷바람 치곤 꽤 차가운 바람이었다. 인근에 후지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온이 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패스트 푸드점으로 보이는 상점이 보였다. 퍼스트 키친(first kitchen), 그곳으로 들어가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설탕과 스푼을 챙기려는데 바구니 속에 담긴 일회용 밀크액과 레몬액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호기심에 하나를 꺼내 개봉했다. 퍼스트 키친에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제품인 듯 했다. 레몬즙이었다.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보았다. 상큼했다. 매년 봄이면 레몬을 사서 레몬차를 만들곤 했다. 레몬에 설탕을 넣어 절인 후,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거나 얼음물에 타 마시면 청량음료보다 더 좋은 음식이 따로 없었다. 일회용 레몬액을 다 먹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레몬액 세 네 개를 집어 가방에 넣었다.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다. 이것은 후에 일본 여행 중 최고의 보약으로 쓰였다. 입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피로할 때마다 하나씩 먹었을 때, 기분을 상기시켰다. 상큼한 비타민이 따로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한국으로 들어가면 퍼스트 키친의 레몬액을 한 봉지 구입해서 가겠다고 했다.

 

 

 

 

 

 

 

해안을 달리는 기차를 탈거야. 그녀는 에노시마에는 해안을 달리는 노면 전차 에노덴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현지인들도 에노덴을 타고 해변을 거슬러 관광하는 것을 좋아하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해. 그녀는 에노덴 전철로 나를 안내했다. 1910년 11월 14일에 에노덴 구간이 개통되었다. 에노덴은 전차의 길이가 짧았다. 미니 전차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겠다. 전차의 창밖으로 바다풍경이 펼쳐졌다. 이 해변에서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연상할 수 있지. 슬램덩크에서 양아치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잖니? 실재로 이 해변엔 동네 양아치들이 자주 지나다녀. 하지만 난폭하진 않아. 만화처럼 단순하고 어리숙한 양아치들이지. 순박한 구석이 있어.

 

 

 

 

 

 

 

 

 

 

 

 

 

 

 

에노덴 전차를 타고 가마쿠라 역으로 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기차를 타고 한국 동해의 해안선을 달리는 기분과 사뭇 달랐다. 도쿄에서 느꼈던 단층의 집에 잘 정돈된 앞뜰과 뒤뜰, 그리고 화분으로 집을 꾸미되, 꽃을 심는 풍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집 앞에 넓게 펼쳐진 바다는 가슴에 멍든 자국을 시원하게 토해낼 듯 광활했다. 아, 나도 이곳에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산보를 다니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싶었다. 언젠가 부산의 해운대를 거닐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살고 싶다고.

 

 

 

 

에노덴 전차에서 내리자, 역 앞에서 참새 조각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역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인 듯 했다. 역 앞의 잔디밭에 시계탑이 있었다. 시계탑을 거쳐 마을로 들어가는데, 마을의 풍경이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마을 전체의 분위기가 관광도시를 계획하고 디자인 된 듯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일본인들은 스타벅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스타벅스라고 했다. 일본에 있는 이색적인 스타벅스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말을 하며 그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가마쿠라 역에서 스타벅스로 가는 길에 건물들은 단층에 모더니티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중상층쯤 되지. 그녀는 마을 분위기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걷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일본의 중상층의 대부분이 가마쿠라 마을의 사람들처럼 산다면 꽤 여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치하지 않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법을 안다고 할까? 한국과 비교해 중산층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조건 새것으로, 높이, 건물을 지으려는 한국의 풍토와 비교해 아날로그한 느낌이 있다고 할까. 가마쿠라는 가마쿠라 막부가 탄생한 곳으로 작가나 도예가 등 많은 문화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기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가마쿠라의 요코하마 스타벅스는 타국의 문화를 자국의 문화와 융합하는 묘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은 나무로 만들었다. 일본의 집 외관을 닮은 듯 하였다. 대부분 나무로 지은 옛집이 많았으므로. 그녀가 스타벅스라고 소개하였을 때, 나는 기존의 도회적 분위기를 품어내는 스타벅스와 달리, 엔티크한 분위기이 스타벅스에 매료되었다. 매장의 안에는 요코하마 유이치 만화가의 만화가 한쪽 벽에 그려져 있었고, 밖에는 수영장과 정원이 있었다. 요코야마 류이찌 만화가가 살던 곳의 땅을 스타벅스가 매입하여 리모델링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영장은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에메랄드빛 파란 물빛이 인공구조물과 대비를 이루어 풍경으로서 보존가치를 느끼게 해주었다. 요코하마 유이치씨는 이 수영장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안에 수영장이라? 만화가의 수영장이라? 하늘이 보이는 수영장이라?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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