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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동경에 사는 그녀를 찾아가다 2

by 아프로뒷태 2012. 5. 1.

신주쿠에서 내려서 남쪽 출구로 나와. 출구 앞에 꽃집이 있어.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의 문자메시지였다. 신주쿠까지 제대로 찾아갈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방황 없이 잘 찾아갔다. 신주쿠역에 도착했을 때, 스스로에게 대견했다. 역에서 내려서 플랫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한글로 된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동경여행의 코스로 선택하는 곳이 신주쿠였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출구로 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에서 남쪽 출구로 나갔다. 역 앞에는 등산을 가려는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명단을 체크했고 누군가는 버스가 오고 있다고 소리쳤다. 나는 꽃집을 찾아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역 주변의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 중에서 꽃가게를 찾기란 찾기 쉽지 않았다. 꽃가게보다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닥을 보며 걷는데 희멀건 것이 있었다. 지난 밤 누군가 구토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검은 시멘트 바닥에 하얀 토사물의 흔적을 보니, 서울과 동경의 밤거리문화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일까?

 

 

한참동안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아주 멀리에서 낯익은 얼굴의 사람이 보였다. 그녀였다. 그대로였다. 멀리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3년 전에 본 그녀의 모습보다 더 건강해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에게 나는 서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껴안았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얼마만의 만남인가. 그녀와 나는 서로를 한참동안 부둥켜안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우선, 집에 가서 짐을 풀자. 그녀는 다시 전철을 타야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티켓을 스스로 발권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신주쿠역까지 찾아온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역시 인간은 긴장하고 집중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일본 지하철 값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녀에게 일일권을 끊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같은 구간을 사용할 때만 그렇지 환승할 땐 전혀 효력이 없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환승제도와 달랐다. 일본의 대중교통문화가 어떤가를 되짚어보았다. 일본의 지하철은 한국과 달리 민간사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중규모나 대기업 수준의 민간 철도 회사들이 많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영 지하철이나 소규모 민간철도도 있어서 각 구간의 전철마다 요금책정이 기준이 무분별했다. 특히 한국과 달리, 환승 제도가 없어 환승시 각 구간의 해당요금을 다시 내야 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한국이 얼마나 교통시설이 잘 된 나라인가를 더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작년 미국으로 대학을 간 제자가 있었다. 학창시절 과외를 한 아이가 미국의 패션 스쿨로 입학하여 뉴욕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녀석의 말로는 뉴욕의 지하철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지하철은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사는 나라에서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아서 흡족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아주 비쌌다. 한화와 엔화를 비교해 엔화가 환율의 가치가 높아서 교통비가 비싸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과연 국민의 대중교통이 비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말로는 일본철도는 1890년대부터 정부의 재정지원이 약화되고 민간자본이 도입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1900년대 사유 철도과 국유화되면서 국철과 사철이 공존하다 국철이 1987년 민영화되면서 국철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하철은 백화점, 호텔, 레저, 관광사업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운영 중인 지역간철철도회사는 국철이 민영화된 JR과 민간이 운영하는 사철이 있었다. 일본 철도는 일부 지하철 노선 등 극소수의 노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민간 자본에 의해 건설되고 운영된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여 선로를 구입하고, 차량을 구입하며, 기타 비용을 모두 스스로 부담한다고 했다. 민간 기업이 벌이는 사업이기에 정부의 공적 보조나 특혜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전철 요금이 비싼 것 같았다. 어느 정도라면, 분식집과 같은 가게에서 우동이나 가츠동을 한 그릇 주문하면 300엔이나 600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한 구간의 전철비는 한 끼의 밥보다 더 비쌌다.

 

 

 

그녀의 집은 역부근에 있는 다세대 원룸이었다. 집주인은 재일교포이면서 전직 조직폭력배라고 했다. 일층엔 집주인이 살고 이층에 다세대의 여성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집주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매번 찾아오는 여자가 바뀐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매번 다른 여자들이 찾아온다. 오늘은 코양, 내일은 발양, 모레는 눈양이라. 남자의 인생이 참 흥미로울 듯 했다. 남자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흥미로운 소설이 탄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유명한 철도원을 쓴 작가도 알고 보면 조직 폭력배 출신이었다.

 

 

 

청바지에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끈을 매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슬램덩크 만화 기억나니? 우리가 초,중학교 때 방송해주었잖아. 나는 신발끈의 매듭을 두 번 매며 그랬지라고 대답했다. 슬램덩크 만화는 실제 마을을 배경으로 만든 만화야. 그녀는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우리가 갈 곳은 에노시마 역이야. 전철을 타고 동경의 중심이 아닌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조금은 의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경의 중심을 둘러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키타세 에노시마역, 역의 외벽은 붉은색으로 페인팅 되어 있었다. 붉은색하면 일장기가 떠올랐으므로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지붕의 색은 달랐다. 지붕은 파스타치오 색으로 꽤 인상적이었다. 지붕의 처마는 호쿠사이의 판화에서 볼 수 있는 파도를 연상시켰다. 파도가 하늘을 솟아오르는 듯 한 기세였다. 에노시마역은 용궁의 모양을 본떠 만든 역이라고 했다. 역시 바닷가주변에 있는 역이라 그런 듯 하였다. 무엇보다 후지산이 보이는 섬이 있는 역이라 더 의미 깊은 듯 하였다. 후지산의 아름다움은 예술작품에서 주로 등장했다. 문학 속에서나 미술 작품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다. 후지산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영감이 되어 왔다. 반복적인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성층 화산이고, 1707년 휴지기에 들어갔지만 언제 다시 화산활동이 일어날 지 몰라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1800년까지 여성은 후지산에 입산할 수 없었다. 신사나 제사와 같은 의식 때 여성의 참석을 금하는 풍습이 있었다. 한 여름에도 산에 오를려면 두꺼운 점퍼를 입어야 할 만큼 추운 곳이었다. 지폐에도 등장하고 세계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으로 등록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후지산은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영험한 존재였다고 한다.

 

 

 

역에서 나와 에노시마 섬으로 향했다. 에노시마 섬의 전망대에서 후지산을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나는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에서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꽤 있었다. 영상 8도이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그럼에도 바람을 놓치지 않고 서핑에 뛰어든 것으로 보아 매니아들인 듯 했다. 에노시마 섬으로 가는 길에 야자수 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슬램덩크 만화를 배경으로 한 마을이야. 하와이를 본떠 만든 섬이지.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섬이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섬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외도, 그곳은 에노시마에 비해 지나치게 인공적인 섬이긴 하지만 이국적인 느낌으로 조성하여 한때 관광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에노시마 섬에는 신전이 많았다. 일본은 다신多信교 국가야. 그래서 한국과 달리 기독교가 보편화 될 수 없는 국가이지. 서울의 옥상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여기에도 저기에도 십자가를 볼 수 있지. 하지만 일본에서는 십자가를 쉽게 볼 수 없어. 다양한 종류의 신을 믿는 국가이니깐. 그녀는 신전의 도리이를 보며 말했다.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거의 다 있는 의식적인 문이야. 두 개의 원통형 수직기둥위에 들보가 얹혀 있지. 보통 붉은 색인데 에노시마 섬의 도리이는 파스타치오 색이었다. 도리이는 신성한 공간과 일반인의 평범한 공간의 경계지였다.

 

 

 

에노시마 섬의 골목길은 민간주택과 상점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상업거리로 잘 발달되었다. 에노시마 섬의 꼭대기를 기점으로 가는 길의 골목에는 음식, 관광 상점들이 연이어 있었다. 낮에는 상점에서 물건을 팔고 밤에는 일반 가정집으로 활용하지. 지역주민들이 관광산업으로 적절히 활용하였지. 그래서 생계 걱정이 없어.  

 

 

 

 

 그녀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한 상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타코센베야. 문어나 해파리를 납작하게 찍어서 만든 먹거리이지. 너에게 한 번 꼭 맛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녀는 꽤 긴 줄로 서 있는 사람들 틈에 서서 나에게 말했다. 꽤 맛있을 거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이니 꽤 장사가 되는 듯 했다. 상점에선 가족단위의 구성원으로 장사를 하는 듯 했다. 허리가 굽은 노모가 주문을 받았고 가장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와 두 명의 젊은 여인이 문어를 찍었다. 손마디만한 문어가 압축기에 찍히면서 삼십여 배 정도의 크기로 불어났다.

 

 

에노시마 섬에는 고양이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요염한 포즈를 취하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 앞에서 고양이들은 무심한 듯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 보았을 때, 요트 수십여대가 정박해있었다. 쇼난 항구야, 요트를 타는 곳으로 적격이지. 나역시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 이곳에서 요트를 탔고 일광욕을 즐겼어. 그녀는 배들이 보이는 항구를 보며 부산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 비교하면 큰 배는 들어올 수 없지만 작은 배들이 들어와 관람하는 소소한 맛이 있다고 했다.

 

 

 

 

 

 

 

 

 

 

섬의 정상에 올랐을 때,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남쪽을 제외하고 사방이 바다였다. 날씨가 맑았다면 후지산이 보였을 텐데. 그녀는 후지산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먹구름이 가득 끼인 바다의 수평선에는 후지산이 보이지 않았다. 후지산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후지산을 꼭 보고 싶었다. 일본인들이 영험하게 생각했다는 명산.

 

 

 

 

왜 이곳에는 갈매기보다 매들이 많은 거지? 나는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는 손을 들면 매의 습격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손에 먹이가 있는 줄 알고 매가 달려든다는 것이다. 특히 관광객들이 손에 음식을 들고 있으면 매들이 음식을 낚아채어 간다고 했다. 에노시마는 바다인데 왜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매가 더 많이 날아다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째서 매가 더 많아졌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에노시마의 섬 뒤편에는 오랜 파도에 치이고 깎인 암반과 절벽이 진풍경을 이루었다. 바닷물과 암반의 경계에서 한 참 멀리 떨어진 절벽은 규모가 상당했다. 그리고 밀물이 밀려왔는지 절벽이 젖어 있었다. 암벽의 높이가 상당하여 밀물이 밀려왔다고 상상할 수 없는 높이였다. 그래서인지 젖은 암벽의 위엄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평소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에노시마 섬에서 나오면서 나는 문득 시가나와 역과 신주쿠로 향하던 전철에서 맡았던 냄새에 대해 물어보았다.

 

전철을 탔는데 냄새가 났어. 그 냄새가?

 

간장 냄새야.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먹으니깐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지. 일본요리엔 간장이 빠지지 않아. 그래서 간장냄새가 나는거야.

 

역시 그랬다. 나라마다 그 사람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그 냄새는 그 나라의 음식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먹은 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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