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휘트니 휴스턴이 죽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 워크맨과 함께 했던 팝가수

by 아프로뒷태 2012. 2. 12.

 

최근 누군가의 부고 소식은 평온한 휴일에 찾아왔다. 이상하게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을 때도 그랬고, 김대중 대통령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을 애뜻하게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들에 대해 조금은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지만, 그들에 대한 경외심, 같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쉽게 하지 못할 일을 그들이 이루고 떠나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오늘은 굉장한 휴일이 될 것 같았다. 구상해 둔 글을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전날 잠들기까지 책을 읽었는데 글자들이 착착 눈에 감겨 들어왔다.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독서를 즐겼다. 내일 아무리 험난한 일이 닥쳐와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절로 든 아주 멋진 독서시간이었다. 독서를 마치고 건강을 위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일은 이보다 더 좋아질거야'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하루의 계획을 흔들어 놓은 것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뉴스를 시청했다. 며칠째 MBC는 파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정오의 뉴스에서 항상 보던 앵커가 자리를 비웠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전문 뉴스 앵커가 아닌, 예능 프로의 아나운서였다. 밥을 먹으며 언제 MBC의 노사문제가 잘 해결될지, 언제 시청자는 공영방송으로써 MBC방송의 신뢰있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또 MBC 제작진들은 상부로부터 검열없이 자유롭게 방송할 수 있을지, 시청자로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빠져있던 찰라였다. 예능 프로의 아나운서는 평소 예능 프로에서 보던 밝고 개구진 표정이 아니었다. 낯빛이 어둡고 어딘지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그 표정으로 아나운서가 말했다.  

 

'휘트니 휴스턴, 향년 48세 나이로 호텔에서 사망했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난 뒤, 나는 머리속에서 뭉클한 통증을 느꼈다. 단순한 공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저장된 기억의 죽음이었다. 기억의 저편에 살아있는 누군가가 죽었다니...... 휘트니 휴스턴, 그녀의 죽음은 단순히 세계 팝 가수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은 내 어린시절의 죽음이었다. 내 어린시절,  워크맨속에 기록된 고운 목소리의 죽음이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992년 영화 <보디가드> 때문이었다. 매력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멋들어지는 여배우의 역할까지 소화해내다니. 그녀의 본래 직업이 배우인지, 가수인지 헷갈릴 정도로 연기력과 가창력이 탁월했다. 이때 휘트니와 더불어 영화에서 경호원 역을 맡은 캐빈 코스트너의 묵묵한 연기와 멋들어진 외모는 나뿐만 아니라, 당시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 이후, 나는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에 심취했었다. 그녀를 머라이어 캐리, 셀링 디옹과 함께  팝여가수의 여신 트리오라고 생각했다.

 

 

 

 

 

나의 어린시절, 집에는 내 키 만큼 큰 전축이 있었다. 최신 가수의 곡, 가곡, 크리스마스 캐롤곡을 LP판으로 듣곤 했다. 판이 돌아가는 동안 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 것은 운동장에 나가서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는 일보다 더 재미있었다. 평소 학교를 다니면서 전축을 휴대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나는 내 손안의 전축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부산의 국제시장을 찾아 갔다. 모아둔 용돈으로 일본산 워크맨을 샀다. 그때 들었던 곡이 휘트니와 머라이어 캐리, 셀링 디옹이었다. 워크맨은 나의 우울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유일하게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는 도구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병이 깊고 몸이 연약한 탓에 병원에 자주 입원했던 원인도 있었지만 성격상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구경가거나 수다떠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시시했다. 그땐 그랬다. 사춘기도 아닌데 유달리 조로 증상이 있었다. 이상하게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노숙했다. 

 

 

 세월은 무섭게 흘러갔다. 꿈을 이루기 노력했고 그 열정의 나날 속에서 십대가 흘러갔고 이십대가 흘러갔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만큼은 생생했다. 십대에 함께 했던 휘트니의 목소리는 우울했던 나를 다독여 주는 친구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즐겨듣던 팝의 리듬은 급속도로 빨라졌고 팝의 가사와 감정은 나의 감성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변해갔다. 나는 휘트니를 기억의 사각지대로 쌓아두고 크리스티나 아귈레나나 저스틴을 듣곤 했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전해주는 문화를 급속도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즐겼다.

 

 

 

 

 

가끔 거울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월은 정말 무섭다. 그 사이 휘트니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더이상 휘트니는 여신이 아니었다. 팔등신 비율을 가진 이상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세월따라 늙을 수도 있었지만 그 늙음에는 어딘가 이상한 그늘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변했다 하여도 휘트니는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풍요롭게 삶을 누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언론을 통한 휘트니는 애석한 소식을 들려왔다. 휘트니는 이혼과 마약으로 슬럼프에 젖어있었다. 그 당시 파파라치에 의해 보여진 그녀의 몰골은 매력적인 여전사, 절대 고음의 휘트니를 도무지 떠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재기를 꿈꾸었다. 슬픔을 노래로써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녀의 내한 공연소식을 듣고 기뻤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휘트니. 당신이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당신이 멋지게 재귀를 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야. 꿈이 좌절된 사람들에게,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람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그러나 휘트니가 죽었다. 살아있는 나는 밥을 먹으면서 2012년 2월 12일 휘트니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휘트니는 어느 호텔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고 보도되었다. 부검을 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타살로 의문이 가지 않는다고 보도되었다. 만약 그녀가 타살이 아닌 홀로 죽음을 맞았다면, 그건 아주 쓸쓸한 죽음이다. 휘트니는 자본의 풍요로움 속에서 인공적인 미보다 인간으로서 빚어낼 수 있는 자연 미를 화려하게 펼쳤다. 카메라 앞에서는 고고하고 아름다우며 훌륭한 여신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고통이 따라랐으리라. 화려함 뒤에는 쓰디쓴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뭐, 인생은 결코 쉽게 건너갈 수 없는 징검다리이니깐. 

 

그녀의 죽음이 어떻게 나에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나도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세대가 되었다. 

 

위대한 사랑은 쓰러진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는 것을 휘트니를 생각하며 느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