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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리는 돌고 돈다

by 아프로뒷태 2012. 1. 15.

진리는 돌고 돈다

 

 

발암 이야기

인류의 역사를 빛낸 위대한 업적 중에는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엉터리 업적이 꽤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필자의 중학교 시절, 과학책에서 배운 ‘질량보존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E=mc2이라는 식이 발표된 지금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엉터리 업적이다.

물질과 물질이 반응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질 때 발열 또는 흡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이와 같은 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E=mc2 식에 의해 질량의 차이가 얼마나 생기는지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질량보존의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란 질량의 미세한 차이를 측정할 수 없었던 구시대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과학발전에 장애가 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단지 과학발전에 의해 과거에는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이론이라 해도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거에는 엉터리 이론이었던 것이 세월이 흐른 후 진실로 밝혀질 수도 있으니 학문이 발전하다 보면 “진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피비거의 기생충 발암설

▲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피비거.  ⓒ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기생충에 의해 암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한 피비거(Johannes Andreas Grib Fibiger, 1867~1928)에게 돌아갔다.

암이라는 질병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암이 왜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2세기 로마의사 갈렌(Galen, Claudius Galenus, 129?~200?)이 인체를 구성하는 4체액 중 황담즙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이론 이후 오랜 기간 특별한 이론이 제시되지 않고 있던 중 19세기에 들어와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의 자극설(irritant theory), 콘하임(Julius Friedrick Cohnheim, 1839~1884)의 배세포설, 라우스(Peyton Rous, 1879~1970)의 바이러스 발암설(1910년에 제기됐으나 56년간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등이 제시되었으나 1920년대까지 어느 것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1867년 덴마크에서 출생한 피비거는 1890년에 코펜하겐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1년간 베를린에 있는 코흐(Robert Koch, 1843~1910, 결핵균을 발견한 공로로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세균학의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코흐와 베링(Emil von Behring, 1854~1917, 디프테리아의 혈청요법을 연구해 190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등의 지도를 받으며 세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디프테리아에 대한 연구로 1895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897년부터 코펜하겐 대학교 병리학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1900년에 그 대학의 병리학 교수로 승진하면서 해부병리학 연구소장을 겸하게 됐다.

1907년, 피비거는 결핵 연구를 위해 흰쥐를 이용한 실험을 수행하던 중 우연히 쥐의 위에 종양이 발생한 것을 발견했다. 이 종양은 근육에서 유래한 육종(sarcoma)으로 판명됐으며, 이 종양 조직 안에 곤질로네마 네오플라스티쿰(Gongylonema neoplasticum)이라는 기생충이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기생충이 열대산 바퀴벌레를 중간숙주로 하는 선충의 일종인 스피롭테라라는 사실을 알아낸 피비거는 스피롭테라 유충을 가진 바퀴벌레가 흰쥐에게 잡아먹힌 후 이 유충이 쥐의 위벽에서 성충으로 자라나고, 이 성충이 직접 발암과정에 관여하거나 또는 이 성충이 쥐의 위벽을 계속해서 자극함으로써 육종을 발생시킨다는 가설을 세웠다.

피비거는 이 선충과 암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1천200마리가 넘는 많은 수의 흰쥐에 스피롭테라 유충을 감염시키고 위벽에 육종이 발생하는지를 조사했으나 뚜렷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이 선충은 바퀴벌레를 중간숙주로 삼고 있으며, 쥐의 배설물을 통해 배출된 알은 이 배설물을 먹은 바퀴벌레의 체내에서 자라고, 이것이 쥐에게 섭취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피비거는 당시에 팽배해 있던 “모든 질병은 원인이 되는 병원체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믿고 있었으며, 쥐의 위벽에 생긴 병소에서 기생충을 분리한 후 바퀴벌레의 체내에서 기생충의 유충이 자라도록 한 다음 여기에서 얻은 기생충을 흰쥐에 주입하여 위에서 암을 발생시키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 결과 코펜하겐에 위치한 한 탄수화물 정제 공장에서 발견된 61마리의 시궁쥐 중 40마리의 위에서 선충을 볼 수 있었고, 이 중 18마리가 위암 또는 그 전구적 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실험에서 얻은 바퀴벌레를 정상적인 흰쥐에게 먹이자 거의 대부분의 쥐에서 스피롭테라가 기생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고, 실험대상 54마리 중 7마리에서 위벽에 육종이 자라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피비거는 1913년 길이 4~5cm, 너비 0.2cm 정도의 선충이 위벽으로 침입하여 암을 일으키며, 선충에 의해 발생한 위암은 다른 정상적인 쥐에 이식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위암을 발생하게 한다는 내용을 독일의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암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킨 실험이었으며 발암 과정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화학물질 발암설

▲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야마기와를 추천한 한센병 원인균 발견자 한센.  ⓒ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시상식에 앞서서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 연구소장이던 외르스테드(Christian Oersted, 1777~1851)는 “현재까지 불치의 병인 암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비르효의 자극설과 콘하임의 배세포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아직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충인 기생충이 발암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피비거의 업적은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라는 추천 연설을 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노벨상 선정 위원회에 참여했던 한센병 원인균의 발견자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 1841~1912)은 피비거를 그 해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했다. 피비거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1913년부터 13년이 지나도록 기생충 감염이 암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그의 실험을 아무도 재현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대신 화학물질 발암설을 내세운 야마기와(山極勝三郞, 1863~1930)를 적극 추천했으나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의견이 피비거 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피비거가 수상자로 결정됐다. 피비거의 실험 결과는 훗날 극히 한정된 계통의 쥐에서만 볼 수 있는 결과이며, 일반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으나 피비거는 이 사실을 모른 채 1930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888년 도쿄(東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한 그는 1892년부터 피르호의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피르호의 자극설을 접하고 암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야마기와는 피르호의 반복자극에 의한 발암설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채 1년을 보낸 후 본국으로 돌아온 후 문헌검토에 들어갔다.

참고로 Pott's fracture와 Pott's disease와 같은 의학용어에 이름이 남아 있는 영국의 포트(Percival Pott, 1749~1787)는 1775년에 굴뚝 청소부에게서 음낭 주름사이로 들어가는 매연의 자극에 의해 음낭암이 발생한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 이것이 최초의 화학물질에 의한 발암설을 기술한 것이며, 영국에서 산업혁명과 함께 광산의 먼지, 아닐린 염료와 같은 환경적인 문제가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으나 화학물질이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화학물질이 굴뚝 청소부에게 음낭암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야마기와는 피비거의 논문이 발표된 직후 150일간의 반복실험을 목표로 토끼의 귀에 코울타르를 발라 암을 발생시키는 실험을 시작했고, 약 2개월이 지나자 토끼 귀의 피부가 약간 부어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계속된 실험을 통해 1915년에 코울타르를 바른 토끼에서 103일째와 179일째에 암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화학물질에 의해 암이 발생함을 증명했다.

돌고도는 진리화학물질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늘날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진리이다. 야마기와는 빛을 보지 못하고 193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해에 코울타르의 발암은 코울타르 내에 포함된 3,4-benzopyrene에 의한 것이 밝혀졌으며, 20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수많은 발암 물질이 발견되는 과정에서 그의 연구방법이 촉진제 역할을 했다.

현재는 3-methylcholanthrene, benzopyrene와 같은 polycyclic hydrocarbons을 비롯해 naphthylamine, nitrosoamine, urethane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화학물질이 발암제로 알려져 있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발암 화학물질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피비거의 기생충 발암설은 과연 틀린 이론일까? 피비거의 업적은 오랜 기간 동안 구설수에 오른 업적이며, 지금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업적 중 잘못된 것을 찾을 때 심심치 않게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러나 주혈흡충이 방광암을 일으키고, 간흡충(간디스토마)이 간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유력한 발암기전의 하나로 대두된 오늘날의 의학지식을 감안하면 기생충이 암을 일으킨다는 피비거의 주장이 틀린 이론이라고 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의 실험내용은 틀렸지만 결론은 시대를 훨씬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의 유력한 이론도 세월이 흐르면 그 진위가 불분명해질 수 있는 만큼 진리란 “그 시대의 지식을 감안한 상대적인 진리”일 뿐임을 확인하게 하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곤 한다.
출처 : ☆Dream
글쓴이 : ◈ BlueSky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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