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스팅

[스크랩] 유전자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by 아프로뒷태 2012. 1. 15.

유전자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유전자 이야기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나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사람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 흔히 등장하는 상자 모양의 기계가 있다. 심전도(ECG, electrocardiogram)를 찍는 이 기계(심전도계)는 심장이 수축함에 따라 활동전류가 변화되는 양상을 곡선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가슴에 추 몇 개를 붙이고 잠시 심전도를 찍어 보는 것만으로 심장에 생긴 이상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기계 중 하나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면 아기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는 엄마에게 아기 얼굴을 보여주고 엄마 배 위에 아기를 한 번 올려놓음으로써 아기의 순산에 대해 엄마에게 웃음을 선사한 다음 아기에 특별한 이상이 있지 않은지 소아과 의사의 검진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당연히 스쳐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한 심전도 검사에서 아기의 심전도에 이상이 발견된다면 아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나마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라면 안심할 수 있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아무리 치료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가족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원인이 무엇입니까?”라는 아빠의 질문에 “유전자에 이상이 있어서 발생하는 브루가다 증후군(Brugada syndrome)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왜 하필이면 내 아기에게 이와 같은 이상이 생겼을까’하는 비통한 심정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유전자의 유일한 기능은 단백질 합성을 위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 심전도를 찍는 심전도계.  ⓒ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면서 학자나 일반인들 공히 유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이전의 동화에서는 임금님과 사이가 좋은 왕비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임금님께 “이번에 왕비께서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낳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유전이라는 현상이 알려지면서부터는 근본적으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사람은 사람을 낳을 수 있을 뿐, 다른 동물이나 물건을 낳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의외의 생명체 또는 무생명체가 산모 뱃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유전정보를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부모에서 자식으로 물려지는 특징을 형성하는 인자를 유전자(gene)라 하게 되었고, 이 유전자는 DNA가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으며, 유전자 한 개는 인체에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 한 개를 합성할 수 있는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유전자, DNA, 유전체(genome),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등과 같은 용어를 접하는 일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단백질 합성을 위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것뿐이다. 인체에서 운동, 소화, 운반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각종 기능을 하는 것은 대부분이 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특정 단백질이 기능을 잘 하고 있는가 아닌가, 특정 단백질에 변이가 생겨 그 기능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는가에 따라 인체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는 단백질을 발견한다면 그 단백질이 왜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 발견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야 하는데 분자구조의 특성상 단백질을 분리해 그 구조와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 현재 생명과학의 수준으로 볼 때 그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정보를 지닌 유전자를 분리해 그 염기서열을 판독함으로써 정상인지 아닌지, 이상이 있다면 이상이 생긴 염기서열의 정보를 이용해 합성되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은 어떠한지를 밝혀내는 일보다 훨씬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게 바로 매스컴 등에서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새로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뉴스를 훨씬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유의 하나이다. 물론 보도내용을 전하는 기자들이 유전자 염기서열에 익숙할 뿐, 유전자의 정보를 받아서 합성되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덜 익숙한 것도 유전자가 만능인 듯한 느낌을 주는 매스컴의 보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20세기 후반에 이룩한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특정 질병이 특정 유전자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주었다. 페닐케톤뇨증, 낫모양 적혈구 빈혈증 등 이미 수백 가지 질병이 인체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 한 개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으며, 아직은 일반화되지 못했지만 이상이 생긴 유전자를 정상인 유전자로 바꿔 끼울 수 있는 유전자 치료법만 개발된다면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동시에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금도 세계 여러 연구기관에서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떤 질병이 유전성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하다 보면 유전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만능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유전자 한 개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의해 인체의 수많은 단백질 중 한 개에 이상이 생긴다고 해서 암, 당뇨병, 고혈압, 교통사고 등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생활습관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가 그러했던 것처럼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보다 우수하므로 이들이 지구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우생학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현재의 진리이지만 1953년에 DNA가 이중나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반세기 이상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왓슨은 조만간 발행될 자신의 책에서 “인종별로 유전적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유전적 차이는 각 인종의 능력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는 주장을 할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있었으니 생명과학의 대가인 왓슨이 “유전자에 의해 인간능력이 결정된다”라는 받아들이기 힘든(또는 싫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이와 같은 보도내용에 대해 해명을 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전에도 유전자를 도구로 인종차별에 가까운 발언을 한 적이 있으므로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국내에 번역된 왓슨의 저서.  ⓒ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때에는 사람이 약 10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2001년에 99%의 인간 유전체 해독을 마친 시점에서는 사람이 2만8천~4만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했고, 2004년에 100% 해독 후에는 인간이 불과 2만2천 개의 유전자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논문으로 발표됐다.

생각보다 유전자 숫자가 적다는 것은 유전자만으로 인체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와 주변 환경의 관계에 의해 인체의 기능과 역할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오늘날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를 발견하기는 쉬워도 유전자와 주변 환경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진행하기도 어렵고, 결과를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인지 유전자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연구결과가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다.

서두에 예를 든 브루가다 증후군은 심박동이 일정하지 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는 질병이다. 이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한 학자들은 SCN5A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하여 이 유전자의 정보를 받아 합성되는 Na+ 이온통로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낸 바 있다. SCN5A에 발생하는 유전자 변이는 160가지 이상이 알려져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전체 환자 중 SCN5A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되는 경우는 약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0%의 환자는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것일까?

11월 1일자 온라인판 미국심장학회 잡지에는 새로 발견된 GPD1-L이라는 유전자가 브루가다 증후군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인체에서 발생하는 산화적 인산화 등에 의해 이 유전자가 자극을 받으면 변이가 일어날 수 있고, 그와 같은 변이는 심장의 전기전도에 이상을 일으켜 생명과 직결되는 부정맥(arhythmia)을 일으키는 브르가다 증후군의 원인이 되며, 이 유전자 이상은 다른 심부정맥과 관련이 있는 질병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린이가 원인 모르게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영아돌연사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인데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알게 됨으로써 혹시나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 더 조심스럽게 생활하여 뜻하지 않은 피해를 예방할 수 있게 된다면 유전자의 변이를 찾는 일이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질병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일은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 한계가 어딘지 도저히 예측조차 불가능한 유전자로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것은 한평생을 살면서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바뀌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너무나도 폄하하고 있는 견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왓슨이 새로운 책에서 어떤 주장을 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으나 왓슨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필자는 인간의 능력이 유전자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이 진리임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임을 확신한다.

출처 : ☆Dream
글쓴이 : ◈ BlueSky ◈ 원글보기
메모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