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럴리가 없을거야? 그치?"
그녀는 평소와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음성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애써 말끝을 치켜올리며 별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반어법으로 쓰일 때 사용하는 대화법이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돌파리 의사일거야. 아님 잘못 진단했거나..."
그녀는 자꾸 부정에 부정을 더하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기만 한다. 그래야 한다고 자꾸 판단이 선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언어들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른다. 침을 꼴깍 삼킨다. 동시에 목구멍까지 솟아 오른 말들을 다시 주어 삼킨다. 그렇다. 부정에 부정은 강한 긍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럴리 있을 수 있고, 돌파리 의사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와 내가 함께 하는 순간에 내가 지켜야할 리액션이다.
"그리고 평소 우리를 담당하던 의사가 아니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동시에 나의 오른손에 있던 핸드폰이 미끄러져 나간다. 핸드크림을 과도하게 많이 바른 건 아닌가 싶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집어들고 오른손은 바지에 대고 문지른다. 손바닥이 미끄럽지 않게 빡빡 문지른다. 손바닥을 유리에 맞대었을 때 뽀드득 소리가 날 만큼.
그녀는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불온한 노력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녀가 떨고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나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마땅히 소개해줄 병원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져 듣고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 아냐, 그래도 맞을거야" 라고 차마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가 전화를 끊기전에 꼭 해야 할 말들을 입안까지 끌어 모은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가서 검사 맡아봐."
그때서야 그녀는 모든 상황을 인정하는 듯 낮은 음성으로 대답한다.
"응"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니, 대학병원에 가보래."
혹시 했던 감정이 역시 하는 감정으로 변화되는 찰라이다.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대."
그녀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이럴 때 그가 있었더라면, 그에게 원인을 물었을 것이고 속시원한 대답이라도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대답을 듣는다고 하여 뾰족한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의 빈자리는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너는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너의 웃음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너의 성장은 나에게 신비로움을 주었다. 내가 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나에게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주었다. 너를 안고 있는 순간, 나는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너의 옷을 사는 순간, 나는 모성을 느꼈다. 너는 나에게 빛이 되는 존재이다. 너는 나에게 생명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존재이다. 너는 나에게 현재이고 미래이다. 나는 너가 없는 빈자리를 못견딜 것이다. 비록 너와 만난지 이백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너는 이미 나에게 큰 별이다.
사랑하는 별, 어둠속에서 빛이 될 별,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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