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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가을산 등반, 북한산을 오르다.

by 아프로뒷태 2010. 10. 12.

 

 

                   산을 오르는 일이 인생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무렵이었다. 산행 초창기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숨은 가팠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이번만, 이번만, 정말 마지막으로 이번만 넘기면 정상에 이를 수 있으거야 라는 심정으로 학수고대하며 산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의 기쁨이 생활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지 알게 되었다.

 

                   북한산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지난 여름부터였다. 그러나 지난 여름은 무척 무더웠고 나는 심신이 지쳐 있었으므로 산을 오르고자 하는 마음만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운 단풍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올해 지친 심신으로 인해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을산을 오르는 것은 환경적으로도 아주 적당히 기분좋은 일이었다.

 

                    모든 것을 던져 놓고 가방을 챙겼고 전철을 탔다. 드디어 북한산을 올라간다는 설레임에 손발이 간질간질 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2번출구를 나와 걸어가면 최소아과가 있는 작은 사거리가 나왔다. 좌측으로 계동약국과 경기 철물집 사이로 골목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10미터 정도 걸어가니 한옥으로 지은 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에서 청원산방교육장이라는 팻말이 기와 아래 붙어 있었다.

 

                     그 근엄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에서 문창호를 만드는 방법을 유료수강할 수 있다고 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만이 지켜가는 전통의 분위기가 단번에 시선을 압도했다.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욕실의 문짝이 온전할 날이 없다. 문은 습기로 인해 문틀이 비틀어지거나 문짝의 밑부분이 썩어 떨어져 나간다. 한 번의 수강으로 이 기술을 익혀놓는다면 가정에서 손쉽게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곳의 주인장이 무형문화재으로 지목된 분이라 했다. 그래서 그 분에 대해 알아보았다.

 

                        

 

 

                     무형문화재 소목장 심용식.

 

                    청원산방을 설립하여 전통창호의 대중화와 창호 발전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열 일곱 살 되던 1969년부터 십여 년 동안 조찬형 선생에게서 전통창호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목공소에서 톱밥가루와 6년을 함께 한 끝에 수덕사에 첫 작품을 걸었다. 이후 이광규, 최영한, 신영훈 선생을 만나 목재 고르는 법, 연장 다루는 법 등 문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실습뿐만 아니라 장인으로서 자세와 예술가로서의 갖추어야 할 안목을 배우며 공부의 깊이를 더했다. 국내외 중요 건축물의 창호 제작에 참여하여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81년에 성심예공원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전통창호 제작활동을 했다.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라든가 장롱, 궤, 경대 , 책상, 문갑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기능보유자로서 나무로 된 각종 물건, 가마, 수레, 농기구, 기타 도구류 등을 포함하여 건축을 골조를 담당하는 대목에 대칭되는 용어이다. 기록상으로는 소목장이라는 말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조선전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자급자족에 이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소목가구를 만드는 데에는 대체로 원목을 사용하여 목재가 지닌 나뭇결을 최대로 살려서 자연미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원산방에서 나와 안국역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고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산다고 했다.

 

                       안국역으로 가는 길에 백송을 보았다. 높이가 하도 장엄하여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먼 곳에서 바라보아도 나무에서 보여지는 하얀 빛은 잊지 못할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안국역에서 택시를 타고 구기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은 북한산 입구였다.

 

                       벌써 이곳을 몇 번을 올랐던가.

 

                       매번 산을 올랐지만 산은 내게 새로운 답을 제시해주었다.

                       나는 산의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딪을 때마다 자신에게 질문했다.

 

                       남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나는 어떤 점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바른 것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사소한 것에서 해결하기 모호한 또는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정상을 향해 올랐다.

                       나는 확신했다. 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순간 분명 답이 떨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나의 기대는 어긋났다.

                       아주 가뿐하게 산에 오른 나는 비봉에서 절망을 맞았다.

                       비봉에 다다랐을 때, 나는 아주 당연히 비봉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비봉의 험난한 돌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고 오르려는 찰라였다.

                      

                       조심해서 산에 다녀오거라.

 

                       아침에 전화를 해주신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엄마의 그 한마디를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돌산의 아래를 내려보았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사방이 허공이었다.

                        까닥하다가는 허공의 힘에 이끌려 몸이 기울것 같았다.

                        나는 비봉을 올라가는 데에 별문제는 없어보였으나 반대로 내려가는데 있어서는 자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산의 아래에서 내려다 보는데 고소공포증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비봉을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눈앞에 홀연히 있는 사모바위를 바라보며 북한산과 나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갔다.

                                

              

 

 

 

 비봉의 모습이다. 올라가는 일이 쉬워 보였으나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추락의 두려움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추락에 대해 두려워했던 것일까?

 

 

비봉에서 북한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오랫만에 산을 오르는 일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항상 북한산을 가뿐히 오를 수 있다고 자만했다.

비봉의 정상에서 오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다.

언제부터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에 두려워했을까?

아직 나는 멀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비봉의 바위 정상을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늘 북한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울의 시내가 훤히 보였다.

정부종합청사와 경북궁의 새로운 건물들이 웅장하게 솟아나 있었다.

하지만 안개탓인지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보이던 서울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니 깜깜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순식간에 해가 지는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서울의 빛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나는 도시의 빛과 마주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산에서 막 빠져나온 나는 서울의 광화문과 종로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서울의 화려한 불빛을 발견했다.

 

 

 

 

 

그 빛에 맞서 당당히 살아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과연 그 빛을 안고 내가 살아갈 수 있을 지 덜컥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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