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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달콤한 인생

by 아프로뒷태 2010. 10. 8.

 

 

 

 

 

 

 

 

                

                   "그건 집착이야"

 

                  충정로의 어느 골목길을 걸으며 그는 말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걸음으로써 그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나의 의도를 그는 눈치 채지 못했는지 혼자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와 다섯 발걸음 정도 되는 거리를 두며 뒤따라 걸었다. 그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에 대한 나의 마음도 점점 멀어져 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에서 구두소리가 딸깍딸깍 울려 퍼졌다. 차가운 구두소리는 그와 나의 침묵을 더 불편하게 했다. 나는 발뒤꿈치에 더욱 힘을 주며 걸음을 걸었다. 그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지독하게 음침한 곳이군."

 

                  나는 골목길의 둘러보았다. 골목길은 단층의 재개발을 앞둔 오래된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래된 건축물에서 차갑고 쓸쓸한 기온이 느껴졌다. 마치 나의 등을 떠밀고 있는 듯 했다. 가치 있는 것은 시간과 역사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과 역사에는 비릿하고 무가치한 것들로 숨 가쁘게 차올랐다. 오렌지 빛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축축하게 젖은 땅바닥에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나는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뻔히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왜 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보다 침묵했다. 그는 단호한 침묵으로써 모든 답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나는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종아리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기가 끝이에요. 전 더 이상 갈 때가 없어요. 이제 남은 건 쓰디쓴 악밖에 없어요."

 

                  그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빛을 찾아 말없이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제 나는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나를 위해 기다려줬어요."

 

                 찬바람이 부는 가을의 골목길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나는 스카프로 목을 칭칭 둘러맸다. 평소보다 조금 세게 스카프를 목을 조여 맸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큰 4차선 도로로 나왔을 무렵, 그가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봤다.

 

                 "커피 한잔 할래요?"

 

                 나는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볼일이 있으니 편의점 앞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십여 분 뒤, 그는 어둠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붉은 상자를 내밀었다. 직사각형의 붉은 상자의 중앙에 "GUILLAUME"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직사각형의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는 안을 열어보라고 했다. 나는 상자를 받아들고 상자의 중앙에 쓰인 글자를 한자씩 천천히 눈에 담아보았다. 그리고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초콜릿이었다. 가로 다섯 칸에 두 줄로 만들어진 상자에는 각각의 모양의 초콜릿이 담겨 있었다. 그는 상자 속에 초콜릿 하나를 집어 건넸다.

 

                 "먹고 가"

 

                 나는 그의 두 손안에 있는 검은 초콜릿을 보았다. 온 몸이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처럼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물론 따뜻한 커피와 먹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야."

 

                 그는 초콜릿을 나의 입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맛이 같아보여도 각각 다른 맛의 초콜릿들이야."

 

                 나는 입을 벌려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혀위에서 침과 미온의 열과 뒤섞인 초콜릿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입안에서 맴도는 달콤한 맛이 아주 쓰게 느껴졌다.

 

                "더 먹지 않을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들고 갈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콜릿 상자를 들고 전철을 탔다. 전철안의 남녀들에게는 초콜릿보다 달콤한 표정이 감돌았다. 나는 손에 든 커다란 초콜릿 상자를 보며 홀로 떠나는 이 시린 행로의 고독을 상상했다.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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