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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이적 <빨래>-기억을 빨다.

by 아프로뒷태 2010. 10. 3.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앞으로 많이 바쁘실 것 같으세요?"

 

                  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머뭇거린다. 이화여대 부근의 부에노 커피가게 안의 커피향은 깊고 고독하다. 나는 아메리카노 잔을 오른손 검지로 만지작 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읖조린다.

 

                  "네. 그럴 것 같아요."

                   그의 표정에서 그늘이 뭍어난다.

                  "그럴때가 있잖아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고 싶을 때, 지금이 아니면 자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기. 그런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요."

 

                  그는 카푸치노의 거품을 스푼으로 휘저으며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향한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공중으로 카페의 빛그림자가 아롱거린다. 흔들리는 그림자속에 내가 있다. 그리고 그가 서 있다. 나의 주변에 서 있던 그가 점점 멀어져간다. 

 

                  "우리 이제 갈까요?"

 

                  나는 젖은 눈으로 그를 보며 말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줄게요"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더 이상 거절하지 않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므로. 나는 그와 거리를 두고 걷는다. 침묵만큼 그와 나의 거리는 더 어색해진다. 나는 지하철 플랫폼으로 걸어간다. 그가 뒤에서 나를 보고 있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등이 뜨겁다. 그의 눈빛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낄 정도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그만 욱하고 눈물을 토해버린다. 아직 내 안에서 누군가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절망감에  좌절한다. 전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전철의 부력에 유리벽이 흔들린다. 힘에 밀리지 않으려고 나는 버텨본다. 온 힘을 다해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진다. 유리벽이 흔들린다. 그 유리벽 속에서 흔들리는 나와 마주한다.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쳐든다.

 

                   10월 3일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날이 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져 평범한 여느 날이 될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무렇지 않는 날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낡은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게 되는 날이 될 것이다.

 

                   서로 같은 시간을 두고도 마주했던 사람들이 한 순간 아무렇지 않는 사람들로, 생전 낯도 본 적 없는 사람들로 돌아가는 순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에게 던져진 것은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거나 퇴화하는 일밖에 없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므로.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는다. 예쁘게 차려입은 원피스를 벗고 스타킹을 벗는다. 눈물에 얼룩진 화장을 지우며 어금니를 살짝 깨문다. 이불의 커버를 벗긴다. 그리고 분리된 이불의 커버와 솜을 세탁기 속에 집어 넣는다. 빙빙 돌아가는 세탁기를 내려다보며 추억의 온기가 그대로 뭍어난 기억을 하얗게 빨아 햇볕에 말릴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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