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타인의 고백과 폭로에 열광하지 말고 자기고백과 반성으로 돌아가자.

by 아프로뒷태 2011. 4. 18.

사람들이 타인의 고백과 폭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점에서 끊임없이 탄생될 수 있었다. 서사의 발달은 미지의 세계에 대해 탐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기록화되었고 체계화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서사장르가 발달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생활이다. 굳이 서사장르를 통해 이야기를 접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의 행위와 대화 자체가 서사가 된다. 

지금의 문제는 서사가 아니다. 무엇을 이야기했는가도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왜 우리는 사실과 거짓에 목 메달고 있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판사가 된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또는 TV나 다양한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정보를 수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하는 자로 변모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윤리적인 판단까지 더해 재생산해낸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판사가 된 시대가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의 사실과 거짓.

타인의 사생활을 알고 평가하는 일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나친 개인의 주관과 판단력으로 타인을 비방하는 글이나 묘욕하는 글이 수다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들은 웬만해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만한 사건이 되지 못한다.

 

남을 엿보기에서 노골적으로 들여다보기 그러다 노골적으로 비판하기에 이른 지금, 정작 돌아보아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아닐까?

 

한겨레 신문 기사를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고백은 얼마입니까?

당신의 고백은 얼마입니까? [2011.04.18 제856호]

[특집]
개인과 미디어가 손발 맞추며 상업화한 고백산업… 선정적 상품 혹은 권력의 천박성 폭로하는 민주주의의 도구

 

 

 

 

출간 하루 만에 초판 5만 부를 모두 출고했고, 2만 부가 팔려나갔다. 2주 만에 10만 부가 소진됐다. 지난 3월22일 세상에 나온 신정아의 <4001>(사월의책 펴냄) 판매 상황이다. 지은이인 신정아씨는 1억원이 넘는 인세 수입을 올렸다. 판매 추이는 점차 잦아들고 있지만 출판사 관계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20만 부 정도의 판매를 기대한다”고 내다봤다. 출간 전에 출판업계에서는 이 책이 얼마나 팔려나갈지에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만 명의 독자가 1만4천원이라는 돈을 주고 이 책을 샀다. 날개 돋친 듯 빠르게 팔려나가는 이 책에 대해 한편에서는 “허탈하다”고 한숨을 쉬고, 다른 한편에서는 “틈새시장을 찾았다”고 외친다.

 

 

출판시장 흔드는 ‘짱돌’

 

지난해 2월 나온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는 15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2007년 삼성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법무팀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와 양심고백을 했던 당시의 내용을 엮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4001>과 다른 맥락에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안에 대한 고백과 폭로라는 면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신정아의 책이 출간과 동시에 신문지면과 인터넷을 도배하며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대단한 홍보 효과를 얻은 데 반해, <삼성을 생각한다>는 광고와 홍보의 통로가 막혀 있었지만 그런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고백이 돈이 된다. 단순히 ‘우연한 대박’이나 ‘로또’로 치부하기 힘든 몇 가지 징후가 보인다. 출판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고백록이면서 동시에 좀처럼 나오기 힘든 10만 부의 벽을 넘긴 베스트셀러인 두 권의 책이 만들어낸 성공을 비롯해 유명인부터 일반인까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문화적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고백이 하나의 산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른바 ‘고백산업’이다.

 

<4001>과 <삼성을 생각한다> 이전에도 고백서는 가끔 튀어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99년 탤런트 서갑숙이 내놓은 성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비롯해, 2003년 가수 배인순씨가 전남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쓴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 등은 연예인 개인이 자신의 삶을 써내려간 책이다. 이후 2009년에는 야구선수 마해영씨가 금지약물 등 야구계의 실상을 담은 <야구본색>을 펴냈다. 이 책들이 나온 때도 관련된 논란과 파문이 일었지만 대부분 일방적인 비난을 받았다. 폭발적인 판매나 출판계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술한 책이 커다란 카테고리를 형성할 만큼 많다. 미국의 경우 잘 알려진 유명인은 어김없이 자서전을 펴내고, 스캔들이나 논란의 주인공은 뒷이야기를 담은 고백서를 펴낸다. 한 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서전을 냈고,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인 모니카 르윈스키는 고백서를 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돌출적인 고백서나 자기과시용·홍보용으로 제작한 책들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자서전이나 평전, 회고록, 고백서 등을 찾기 힘들었다.

 

최근 2년을 되짚어보자. <4001>과 <삼성을 생각한다>를 둘러싼 상황은 달랐다. 이 책들은 ‘모난 돌’이 아니라 적어도 출판시장을 흔들 만큼 영향력 있는 ‘짱돌’이었다. 지난해 유례없이 두 권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일도 있다. 세상을 떠난 두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와 <김대중 자서전>이다. 고인을 그리는 마음이 컸던 이들에게 단비나 다름없는 책이라는 게 판매의 주요 요인이었겠지만, 그래도 이 책들이 자서전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기 고백이나 고백을 통한 폭로가 자서전이나 회고록, 평전 등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은이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로 출간되고, 출간에 그치지 않고 대량 판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TV 통해 진지하거나 사사롭거나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희씨는 이를 “권위적이고 계급이 나눠져 있으며 서로 얘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던 사회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용인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고백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실이 형성되는 과정은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분명히 반론이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 법적 대응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 중 하나라고 여긴다면 우리 출판물의 일반적인 모습에 비춰볼 때 이것은 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폭로성 고백이든 자신의 삶을 개인적으로 고찰하는 고백이든 그 내용이 책에 담긴다는 것은 곱씹어봐야 하는 지점이다. ‘나’가 화자가 되어 ‘나’를 이야기하는 고백서 형태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다는 행위 자체에서부터 신뢰감을 얻는다. 자신을 내세우는 순간 그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개인의 목소리가 담긴 고백이나 폭로가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이뤄져온 오랜 관행과는 다르다. 개인의 고백이나 폭로가 제3자에 의해 작성되고 편집된 구호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전후 사정의 몸체를 갖춘 이야기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고백은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독자를 잡아끄는 이야기가 된다.

 

고백서류의 책이 잘 팔려나가는 것을 하나의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간주하는 인식에 대한 비판론도 존재한다. 지금은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시대가 아니라 많이 팔리는 책이 더 많이 팔리는 시대”라는 출판평론가 변정수씨는 “베스트셀러에서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출판 외적인 요인이 화제가 되자 책은 부가상품으로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고 평한다. <4001>이 팔려나가는 건 책에 담긴 자극적인 내용 탓에 책이 끊임없이 매체에 노출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변정수씨는 또 “지금까지 사회 일정 부분에 늘 존재했던 부분인데 이것이 산업적으로 새로운 대중사회의 징후라고 보는 건 착시현상”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폭로가 산업으로서 동력을 가지려면 새로운 폭로나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 일상적인 고백과 폭로가 이뤄지는 곳이 TV다. SBS <강심장>, 문화방송 <황금어장-무릎팍 도사>, tvN <화성인 바이러스>(왼쪽부터).

 

고백과 폭로를 조금 더 일상으로 끌고 들어올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TV다. 우리는 원치 않아도 일주일 단위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진지한 고백 혹은 사사로운 폭로를 듣는다. 요즘 저녁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은 크게 오디션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 그리고 토크쇼로 나뉜다. 문화방송 <놀러와>나 한국방송 <해피투게더> <승승장구>가 출연자에게 ‘무한 믿음’을 보내는 전통적인 토크쇼에 가깝다면, 문화방송 <황금어장-무릎팍도사>와 SBS <강심장> 등은 출연자의 고백과 폭로로 토크를 이끌어가는 변종 토크쇼다.

 

연예인뿐 아니라 문화·스포츠계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는 프로그램은 <무릎팍도사>다. 무례한 토크쇼인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는 초대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그를 공격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기 힘든 질문과 대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건드리면 초대손님은 그제야 그동안 하지 않았던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이다. 벌써 방송 5년째를 맞은 <무릎팍도사>는 주로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연예인 등이 출연해 그간의 심경을 고백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탤런트 박상민과 멤버 탈퇴로 마음고생을 한 ‘동방신기’의 두 멤버가 출연했다. 이전에도 이승철이나 싸이, 이영자 등이 출연한 바 있다.

 

 

존재감 확인 및 인지도 상승 통로로 작용

 

<무릎팍도사>가 시간을 들여 고백을 이끌어낸다면 <강심장>은 많은 사람의 준비된 고백을 연속해 터뜨린다. 방송 1년 7개월째를 맞은 이 프로그램은 20여 명의 연예인이 출연해 토크 배틀 형식으로 ‘강한 이야기’를 짧고 굵게 이어간다. 이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대부분 ‘처음’이거나 ‘충격적’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라는 자막을 달고 나온다. 무겁게는 가족관계나 투병부터 가볍게는 나이, 성형, 연애 전력까지 고백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난 1월에는 가수 노유민이 출연해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결혼한 부인이 있고, 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사실과 딸이 조산으로 인해 인큐베이터에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 화제가 됐다.

 

<강심장>의 박상혁 PD는 “노유민을 비롯한 몇몇 연예인은 자신이 직접 할 얘기가 있으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연예인이 노출되는 매체가 많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자기 입으로 전하는 기회는 별로 없어 <강심장>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서 때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연예인이라도 직접 전한 이야기 하나만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박 PD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추기보다 드러낼 때 시청자로부터 호감을 받는 게 요즘 연예인들”이라며 “다들 꺼리는 이야기를 드러내 털어놓으면 해당 연예인에 관한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인지도가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인지도를 높여 시장가치를 올리는 게 요즘 연예인들이 살아가는 메커니즘이라는 얘기다.

 

케이블 채널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는 공중파의 토크쇼와는 또 다른 방식의 고백과 폭로를 전한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출연해 자신의 비밀이나 남들과는 다른 삶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극도의 매운 맛을 즐기거나 초콜릿 없이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결혼을 원하는 사람 등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10년 동안 이를 닦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좋게 말하면 ‘특이’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상’한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는 뭘까.

 

<화성인 바이러스>의 이근찬 PD는 “예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꺼려지는 이야기를 숨겼다면 이제는 오히려 드러내 떳떳해지거나 인정받고 싶어한다”며 “출연자 중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할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 PD는 “출연하기까지 제작진의 설득 과정도 들어가지만, 개인적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사회가 조금은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출연자 중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져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준연예인’이 된 이들도 있다”고 덧붙인다.

 

케이블 채널에는 <화성인 바이러스> 외에도 일반인이 나와 연애부터 직업, 가족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비밀을 고백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최근 신설된 tvN <환상의 커플>이나 박미선과 이성미가 진행하는 스토리온 <친절한 미선씨> 등이 그렇다. 지난해 시즌2를 방영한 QTV <더 모먼트 오브 트루스 코리아>는 일반인 출연자가 자신과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고, 그 대답이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면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형식을 수입한 이 프로그램의 홍보 문구는 이렇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손가락질받는 이상한 세상. 당신의 진실은 얼마입니까?”

 

 

폭로의 ‘진정성’과 ‘드라마’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왜 이런 프로그램에 집중할까? <강심장>의 박상혁 PD와 <화성인 바이러스>의 이근찬 PD는 ‘진정성’과 ‘드라마’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의 시청자는 카메라 앞이기 때문에 꾸미거나 감추는 것보다 오히려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진정성에 반응한다. 설령 그 진정성이 어느 정도의 기획이나 연출이라고 해도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며 진정성이 드러나는 순간만큼은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진정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다.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가 있어야 시청자는 채널을 고정한다.

 

이렇듯 고백과 폭로가 사회·문화적 흐름이자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는 데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건 미디어의 상업주의다. 신정아의 학력 위조 의혹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불륜 의혹이 불거져나온 2007년 7월,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언론은 ‘옐로 저널리즘’의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줬다. 신정아를 향해 들이댄 카메라는 의혹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의 모든 사생활을 파헤쳤다. 신정아를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또 ‘추락한 신데렐라’로 만든 것은 모두 언론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신정아의 책에 관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쏟아내는 기사들 역시 2007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기사가 쏟아질수록 신정아의 책은 홍보 기회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출판사와 지은이가 ‘노이즈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고 지적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에 연료를 공급하는 핵심 주체는 오히려 언론이다.

 

TV 토크쇼는 방영 다음날이 되면 인터넷 뉴스나 검색어로 포털 사이트 등에 다시 한번 ‘도배’된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수십 개 나오고, 기사는 방송 내용 중 가장 자극적인 문구를 제목으로 뽑는다. 뉴스로 퍼져나가는 내용이 실제 방송에서 언급된 맥락과 다른 경우도 숱하다. 이럴 때마다 출연자나 제작진은 “난감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인터넷 뉴스는 궁극적으로 해당 프로그램과 연예인의 이름을 하루이틀 정도는 누리꾼의 머리에 각인시키고, 일부는 그 과정에서 ‘대세’나 ‘스타’가 된다. 이 과정은 단지 TV 토크쇼뿐만이 아니라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이름이 알려진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고백의 행위는 ‘나를 정립하는 것’이고 신정아 등 자기고백서의 저자는 책을 통해 ‘나는 이런 존재다’라고 말한다”며 “문제는 고백에 과거의 사건에 관한 폭로가 들어 있다는 것인데, 이 경우 자본주의 미디어는 폭로를 상품화하고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미디어 상업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보가 끝없이 복제되는 방식으로 확산되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는 다른 요소가 첨가되기도 하고 왜곡되며 무차별적으로 확대된다. 상업언론은 이윤을 올리려고 이 상황을 이용한다. 고백하고 폭로하는 개인과 고백의 장으로 활용되는 매체, 또 이를 이용하는 미디어의 손발이 맞아야 돌아가는 게 고백산업이다. 고백서 등의 단행본이 이야기를 팔고 저작권으로 수익을 얻는 직거래 상품이라면,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토크쇼는 이야기를 팔아 유명세를 얻고 그로 인해 제3의 수익을 올리는 간접거래 상품이다. 언론 등 미디어는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일종의 중계자다.

 

 

‘권력’의 이면 겨누며 긍정적 효과도

 

고백산업에는 뜻하지 않은 긍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사람들이 이들의 고백과 폭로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접근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그 세계는 주로 권력과 관련돼 있다.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고백과 폭로는 주로 파워엘리트층을 겨냥한다. 신정아의 책 속에 등장한 언론권력의 이중성과 미술계의 천박함, 또 김용철 변호사가 전해준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의 실체뿐 아니라 이제 하나의 대중권력으로 자리잡은 연예계의 뒷모습까지 모두 고백과 폭로에 생생하게 들어 있다. 고백과 폭로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과녁은 권력층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 이면이라는 의미다. 이택광 교수는 “이제는 누가 튀어나와서 책을 쓸지 모르는, 통제가 곤란해지는 시대”라며 “선정적인 상업주의와 자본주의가 일정한 민주주의를 조장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겨레 신문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고백, 위험한 투자

초장부터 파지 신세 혹은 거액의 손해배상 각오해야

 

고백과 폭로는 ‘리스키’(risky)한 투자다. 고수익이 보장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 <4001>류의 책은 우선 형법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때로는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이 들어와, 책도 못 내보고 초장부터 파지 신세가 될 수 있다. 민사적으로는 거액의 손해배상도 따라붙는다. 사실 저자나 출판사로서는 이게 가장 무섭다.

한국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이런 류의 책은 대박만이 아니라 쪽박을 안겨줄 수 있다. 출판사나 언론사가 수백만~수천만달러를 물어주라는 법원 판단을 받아들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은 그 액수가 잔잔한 편이다. 청구하는 쪽도 ‘많아야’ 10억원 정도를 요구하는데 법원에서 깎이기 마련이다.

언론·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실명을 공개하든 이니셜로 처리하든 책임 인정과 관련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주로 정치인이 대상이 된다”고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숱하게 당한 정치인이다. 김 전 대통령 경호원 출신인 함윤식씨가 쓴 <속 동교동 24시> 등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폭로나 평가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한국도 미국처럼 명예훼손을 헐겁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설 등은 평가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조금만 다르게 묘사해도 해당 문중에서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무려 2500년 전 인물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1999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수필집이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유림 쪽에서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공자와 유림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해당 책의 서평을 쓴 <조선일보>가 유림 쪽에 사과문을 보내는 홍역을 치렀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