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전에, 사랑한 후에]
페터 라우스터 지은이
겨울이다. 그러나 지독한 겨울이다. 지독한 추위를 맞아보기 위해 언젠가 남극에 발을 딪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대로라면 한반도에서도 지독한 겨울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날 사랑은 더 달콤하게 다가온다.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랑에 대한 책을 책장에서 꺼내 읽는다.
인간의 문화에 대해서라면 이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애정은 일종의 순수한 기적이라고 - 수잔느 브뢰거
사랑은 순간의 충족을 구하며 그 이후를 묻지 않는다. 계획적인 사고를 통해 이성은 순간을 붙들어 두려고 하며 미래를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 사고는 감정에 개입하여 감정을 지휘하려 하고, 순간이 달아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한다. "제발 머물러다오,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이렇게 우리에게 깊은 내적 만족과 충만감을 선사한 순간이 머물러 있기를 기대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며,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이 세상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기분을 갖게 하며, 다른 모든 문제들은 의미를 잃는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더욱 빛나고 긍정적인 새로운 빛으로 바라보며, 더욱 자유롭고 마음이 트이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 희열감을 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온 세상을 포용하고 싶을 만큼 행복하다고".
사랑의 감정과 의식, 행복감을 붙들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넘치는 기쁨의 상태는 그것을 갈망하거나 포만감을 느끼고 잠들 때쯤이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우리가 체험한 행복감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냉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다시 새롭게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기대한다. 이성은 질문과 회의, 의지 그리고 야심으로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감정을 이성이 그의 의지로 강제로 불러줄 수 없다. 그것은 이성이 휴식하고 고요할 때, 겸손하게 뒤로 물러나 참견하지 않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터질 듯한 행복감이 사라졌다 하여도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순간과 민감한 감수성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사랑은 다시 새롭게 되돌아온다. 나의 사랑에 불을 지필 파트너를 다시 만난다면 감정의 불꽃이 다시 타오를 수 있을지 아닐지 증명될 것이다.
이성이 "충분한 이유와 논리"로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했음에도 감수성을 통해 사랑을 되불러오지 못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실망은 모든 것을 좋게만 생각하고 반복하고자 했던 이성의 실망이다. 이성은 사랑의 반복을 믿었기 때문이다. 생각으로는 모든 것을 반복할 수 있고, 며칠이고 몇 년이고 동일한 원리를 재연할 수 있다. …사랑은 자유롭고, 사고의 규칙과 법칙이 아닌 자기 고유의 법칙에 따라 생성되는 것이다.
사랑은 자유 속에서 일어난다. 이 자유가 침해당하면, 사랑을 소유하려 하고 파트너와 영원한 사랑을 나누겠다고 믿으면, 곧바로 사랑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은 자유롭고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고 아무도 가르쳐 준 바 없는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오고 또 간다. 사고는 감정의 영역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사고는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조할 수는 있지만 내 안의 사랑을 타오르게 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고나 의지를 통해 만들어질 수 없으며, 나의 의식적 노력과도 무관하게 생겨난다. 사랑은 내가 완전한 신뢰감으로 순간에 몰입하는 그 순간에 일어난다. 물론 그때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이 오지 않음을 환멸 없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크나큰 정신적 성숙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거나 파는 물건처럼 아름다운 사건을 반복하려는 욕망과 공명심, 야심 그리고 의지로 가득하다. 내가 나 자신에 가까워지고 아무런 강요 없이 실망하지 않고 사랑이 오지 않음까지도 겪어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욕망과 야심, 의지가 잠재워져야 한다. 사랑의 부재도 출현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가치 있는 순간이다. 이러한 인식 안에 아름다움과 평온이 높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이성은 이런 반론을 내밀 것이다. "오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가치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내게 행복과 보호와 의미를 가져다주는 사랑에 관한 문제인데 말이다. 나는 오지 않는 사랑을 인정할 수 없어. 그것은 분명 상실이고, 상실은 실망을 낳는 것 아닌가. "
상실감을 불러오는 실망은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거나 순간에 전념하지 않을 때에 찾아온다. 상실은 사고의 결과물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은 불안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의 정신적 삶에 대한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상실은 숨겨야 할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과정이 된다. 사랑의 소멸이 환멸을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을 위한 자유와 근심 없음, 기쁨 그리고 열린 가능성을 품고 있다.
도덕의 설교자들은 영원한 사랑 이나 순결 그리고 불멸의 사랑 과 같은 규범을 강조한다. 그러한 도덕률은 모두 이성에서 나온 것이다. 사랑의 생명력에 관한 문제라면 사고는 침묵해야 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순간의 생명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사랑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묶여 있기 때문에 도덕을 내세운다. …사고가 사랑을 억누를 수 없고 사랑은 자유로우며 오직 자유 안에서만 다시 시작될 수 있고 또한 떠나갈 자유도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이 오지 않음 속에도 많은 아름다움과 이미가 있으며 어떤 도덕적 체계도 그 점을 바꾸지는 못한다. …영혼은 그 고유의 법칙을 따라 전개되면 자신만의 성숙을 추구한다. 정신적 활력이 전체적으로 펼쳐질 때 사고는 영혼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창조력은 영혼으로부터 나온다. 이 보물창고를 열고, 영혼의 심연을 차지한 공포의 방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따위는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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