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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현대시의 구조 <폴 발레리>,<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by 아프로뒷태 2010. 11. 23.

 

                      

                 

<발걸음> 폴 발레리

 

나의 침묵의 아이들인 발걸음은,

고요함으로 얼어붙은

각성의 침실을 향하여

성스럽고도 느리게 나아간다.

그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은 신성한 그늘,

내 발걸음이 선택한 이곳은 부드럽다

벌거벗은 내 발걸음이 닿는 이 모든 곳은,

신들 그대들이 준 선물일지니

만일, 내 발걸음이 네 입술에 닿는다면,

너는 부드러운 입술을 열고 기다릴 것이니,

내 사유들의 짐승들은

입맞춤의 발걸음으로 네 입술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부드럽고 거칠게

상냥한 발걸음으로 서둘러 나아가노니,

나는 너를 기다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가슴은 오직 그 발걸음들이었다.

<플라타너스에게> 폴 발레리

몸을 숙이고 있구나, 키 큰 플라타너스여,

스키티아의 젊은이처럼 하얀, 벌거벗은 네 몸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지만 네 순결함은 사로잡혀 있으니

네 자리의 힘에 네 발은 붙잡혀 있구나.

우수수 소리내는 그림자여, 너를 휩쓸어간 바로 그 하늘이

네 안에 그윽히 가라앉아 있구나.

검은 어머니가 구속하고 있구나,

진흙이 내리누르는 이 갓난 순결한 발을.

떠도는 네 이마를 바람은 거부하고,

부드러운 어두운땅은,

오, 플라타너스여, 한 걸음도 네 그림자가

감탄하도록 놔두지 않는구나.

수액이 뿜어주는 빛나는 계단까지 밖에

네 이마는 다다를 수 없으니,

너는 자랄 수는 있지만, 순결한 나무여,

영원한 정지의 매듭을 끊을 수는 없으리라.

...

 

 

<해변의 묘지> 폴 발레리

 

비둘기들 노니는 저 고요한 지붕은

철썩인다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덤들 사이에서.

공정한 것 정오는 저기에서 화염으로 합성한다

바다를, 쉼없이 되살아나는 바다를!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 다음에 찾아드는 보답이로다!

섬세한 섬광은 얼마나 순수한 솜씨로 다듬어내는가

지각할 길 없는 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그리고 이 무슨 평화가 수태되려는 듯이 보이는가!

심연 위에서 태양이 쉴 때,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들,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이로다.

견실한 보고, 미네르바의 간소한 사원,

정적의 더미, 눈에 보이는 저장고,

솟구쳐오르는 물, 불꽃의 베일 아래

하많은 잠을 네 속에 간직한 <눈>,

오 나의 침묵이여! ……영혼 속의 신전,

허나 수천의 기와 물결치는 황금 꼭대기, <지붕>!

단 한 숨결 속에 요약되는 시간의 신전,

이 순수경에 올라 나는 내 바다의

시선에 온통 둘러싸여 익숙해진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내 지고의 제물인 양,

잔잔한 반짝임은 심연 위에

극도의 경멸을 뿌린다.

과일이 향락으로 용해되듯이,

과일의 형태가 사라지는 입 안에서

과일의 부재가 더없는 맛으로 바뀌듯이,

나는 여기 내 미래의 향연을 들이마시고,

천공은 노래한다, 소진한 영혼에게,

웅성거림 높아가는 기슭의 변모를.

아름다운 하늘, 참다운 하늘이여, 보라 변해 가는 나를!

그토록 큰 교만 뒤에, 그토록 기이한,

그러나 힘에 넘치는 무위의 나태 뒤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 가여린 움직임에 나를 순응시키며.

지일(至日)의 횃불에 노정된 영혼,

나는 너를 응시한다, 연민도 없이

화살을 퍼붓는 빛의 찬미할 정의여!

나는 순수한 너를 네 제일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스스로를 응시하라!……그러나 빛을 돌려주는 것은

그림자의 음울한 반면을 전제한다.

오 나 하나만을 위하여, 나 홀로, 내 자신 속에,

마음 곁에, 시의 원천에서,

허공과 순수한 도래 사이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재하는 내 위대함의 반향을,

항상 미래에 오는 공허함 영혼 속에 울리는

가혹하고 음울하며 반향도 드높은 저수조를!

그대는 아는가, 녹음의 가짜 포로여,

이 여윈 철책을 먹어드는 만(灣)이여,

내 감겨진 눈 위에 반짝이는 눈부신 비밀이여,

어떤 육체가 그 나태한 종말로 나를 끌어넣으며

무슨 이마가 이 백골의 땅에 육체를 끌어당기는가를?

여기서 하나의 번득임이 나의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닫히고, 신성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찬,

빛에 바쳐진 대지의 단편,

불꽃들에 지배되고, 황금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곳, 이토록 많은

대리석이 망령들 위에서 떠는 이곳이 나는 좋아.

여기선 충실한 바다가 나의 무덤들 위를 잠잔다!

찬란한 암케여, 우상숭배의 무리를 내쫓으라!

내가 목자의 미소를 띄우고 외로이

고요한 무덤의 하얀 양떼를,

신비로운 양들을 오래도록 방목할 때,

그들에게서 멀리하라 사려 깊은 비둘기들을,

여기에 이르면, 미래는 나태이다.

정결한 곤충은 건조함을 긁어대고,

만상은 불타고 해체되어, 대기 속

그 어떤 알지 못할 엄숙한 정기에 흡수된다……

삶은 부재에 취해있어 가이없고,

고초는 감미로우며, 정신은 맑도다.

감춰진 사자(死者)들은 바야흐로 이 대지 속에 있고,

대지는 사자들을 덥혀주며 그들의 신비를 말리운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정오, 적연부동의 정오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사유하고 스스로에 합치한다……

완벽한 두뇌여, 완전한 왕관이여,

나는 네 속의 은밀한 변화이다.

너의 공포를 저지하는 것은 오직 나뿐!

이 내 뉘우침도, 내 의혹도, 속박도

모두가 네 거대한 금강석의 결함이어라……

허나 대리석으로 무겁게 짓눌린 사자들의 밤에,

나무뿌리에 감긴 몽롱한 사람들은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어버렸다

사자들은 두터운 부재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하얀 종족을 삼켜버렸으며,

살아가는 천부의 힘은 꽃 속으로 옮겨갔도다!

어디있는가 사자들의 그 친밀한 언어들은,

고유한 기술은, 특이한 혼은?

눈물이 솟아나던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간다.

간지 소녀들의 날카로운 외침,

눈, 이빨, 눈물 접은 눈시울,

불과 희롱하는 어여뿐 젖가슴,

굴복하는 입술에 반작이듯 빛나는 피,

마지막 선물, 그것을 지키려는 손가락들,

이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고 작용에 회귀한다.

또한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바라는가

육체의 눈에 파도와 황금이 만들어내는,

이 거짓의 색체도 없을 덧없는 꿈을?

그대 노려하려나 그대 한줄기 연기로 화할 때에도

가려므나!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 나고,

성스런 초조도 역시 사라진다!

깡마르고 금빛 도금한 검푸른 불멸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만드는,

끔찍하게 월계관 쓴 위안부여,

아름다운 거짓말 겸 경건한 책략이여!

뉘라서 모르리, 어느 누가 부인하지 않으리,

이 텅빈 두 대골과 이 영원한 홍소(哄笑)를

땅밑에 누워 있는 조상들이여, 주민 없는 머리들이여,

가래삽으로 퍼올린 하많은 흙의 무게 아래

흙이 되어 우리네 발걸음을 혼동하는구나.

참으로 갉아먹는 자, 부인할 길 없는 구더기는

묘지의 석판 아래 잠자는 당신들을 위해 있지 않도다

생명을 먹고 살며, 나를 떠나지 않도다.

자기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미움일까?

구더기의 감춰진 이빨은 나에게 바짝 가까워서

그 무슨 이름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리!

무슨 상관이랴! 구더기는 보고 원하고 꿈꾸고 만진다!

내 육체가 그의 마음에 들어, 나는 침상에서까지

이 생물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어라

진동하며 나르고 또 날지 않는 화살로!

화살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는도다!

아! 태양이여…… 이 무슨 거북이의 그림자인가

영혼에게는, 큰 걸음으로 달리면서 꼼짝도 않는 아킬레스여

아니, 아니야!……일어서라! 이어지는 시대 속에!

부셔버려라,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마셔라,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신선한 기운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나에게 내 혼을 되돌려 준다……오 엄청난 힘이여!

파도 속에 달려가 싱그럽게 용솟음치세!

그래! 일렁이는 헛소리를 부여받은 대해(大海)여,

아롱진 표범의 가죽이여, 태양이 비추이는

천만가지 환영으로 구멍 뚫린 외투여,

짙푸른 너의 살에 취해,

정적과 닮은 법석 속에서

너의 번뜩이는 꼬리를 물고 사납게 몰아치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몽유의 발라드>, <몽유의 민요시>

 

 

녹색 나 그대 사랑하네 녹색으로

녹색 바람, 녹색 가지를

바다엔 배

산에는 말

허리에 그림자를 감고

난간에서 꿈구는 그녀

녹색 몸, 녹색 머리카락,

싸늘한 은빛 눈

녹색 나 그대 사랑하네 녹색으로.

집시의 달 아래,

세상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네.

녹색 나 그대 사랑하네 녹색으로.

새벽길을 여는

그늘 물고기와 함께

거대한 서리별이 다가오네.

무화가 가지는

바람을 문지르고.

도둑고양이인 저 산은

사나온 용설란 털을 세우네,

그러나 누가 올 것인가? 어디로 해서…

그녀는 난간에 서 있네

녹색 몸 녹색 머리카락

쓰디쓴 바다가 꿈꾸면서

전 바꾸고 싶어요, 대부님.

제 말과 당신의 짐을

제 안장과 당신의 거울을

제 칼과 당신의 모포를

대부님, 카부라의 재를 넘어

피 흘리며 저 여기에 왔어요

이보게나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말고

하지만 난 이미 내가 아니고

내 짐은 이미 내 짐이 아닐세

대부님, 전 제 침대에서

품위 있게 죽고 싶어요.

이왕이면 네덜란드산 시트가 덮인

철제 침대에서 말예요.

가슴에서 목까지 난

제 상처가 보이지 않나요?

삼백 송이의 검붉은 장미가

네 하얀 셔츠에 피어 있구나

그대의 허리께에서

피가 스며 나와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난 이미 내가 아니고

내 집은 이니 내 집이 아닐세

오르게 해줘요!

저 높은 난간까지 만이라도

올라가게 내버려둬요.

녹색 난간까지만 놔둬요.

물소리가 울려 퍼지는

달의 난간들.

두 명의 대부가 이미

가파른 난간을 오르고 있네.

핏자국을 남기면서

눈물 자국을 남기면서

지붕에는 작은

양철 등(燈)이 떨고 있었네.

천 개의 수정 탬버린이 새벽을 깨우네.

녹색 나 그대 사랑하네 녹색으로,

녹색 바람, 녹색 가지들.

두 명의 대부가 올라갔네.

간 바람이 입 속에

쓸개, 박하, 알바아카의

묘한 냄새를 남겨놓네.

대부여! 말씀해주세요. 어디에 있나요?

그녀가 얼마나 그대를 기다렸는지!

그녀가 얼마나 그대를 기다릴 것인지!

싱싱한 얼굴 검은 머리칼이

이 녹색 난간에서!

저수지 표면에

집시 처녀가 서성거렸네.

녹색 몸, 녹색 머리칼

싸늘한 은빛 눈

달의 고드름은

그녀를 수면 위에 떠받들고 있네.

밤이 조그마한 광장처럼

가까이 다가왔네.

술 취한 민병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네.

녹색 나 그대 사랑하네 녹색으로.

녹색 바람, 녹색 가지들.

바다엔 배.

산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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