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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기대어 앉은 오후-이신조 작가가 말하는 아픔을 극복하는 법

by 아프로뒷태 2011. 1. 25.

 

누구나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로 인해 인생이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인생은 오늘이 원인이 되어 내일이 결과가 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우리는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기대어 앉은 오후』는 신도시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살면서 20대 여성과 50대 여성의 소통과 교감을 거쳐 서로의 아픔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이야기이다. 20대 여성인 은해는 포르노 비디오의 더빙을 하는 성우이다. 50대 여성인 윤자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서른살의 딸을 잃은 가정주부이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들려주며 전개된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중반부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평행구조를 이루며 나란히 전개되다가 백화점의 휘트니 센터라는 교차점을 통해 서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수영기초반 강좌를 통해 서로 만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바로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입주자였고 엘리베이터에서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서로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슬픈 사연이 전개된다. 그리고 서로의 사연을 알면서도 굳이 아는 척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 명시할 뿐,

 

소설을 읽는 내내 현재와 과거의 시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소 어툴하기는 했지만 인물의 감정으로 들어가고 나오기,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충분히 소설적이다.

 

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은 말한다. 

 

세상을 향해 무언가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 무언가 새로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 없다면 소설이란 것은 씌어질 이유가 없다. 아무 할말도 없이 씌어지는 소설을 우리는 '대중소설'이라 부른다.

 

"대중소설 따로 없고 본격소설 따로없다" 라는 것은 얼치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진부한 사이비 진술이다. 세상을 향해 구태여 새로운 주제, 진술, 표현을 던질 필요가 없는 소비 품목으로서의 대중소설과 그런 수준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소설 사이의 품질 구분은 없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새로움'의 필요성 때문에, 혹은 '새로운 경험'이 요구하는 표현의 요청 때문에 생겨나고 그 요청에 응하기 위해 지금도 존재하는 서사 형식이다.

 

소설이 새로운 주제, 표현, 구성의 요청에 응하려 할 때 가장 긴요하게 작용하는 것의 하나가 '질문' 이다. 질문은 소설의 텍스트 표층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서사 구성을 안내하는 감추어진 구심력이고 이야기를 추진시키는 비밀스런 에너지원이다.

 

모든 소설은 질문을 갖고 있다. 질문 없이 소설은 씌어지지 않는다. 여타 전통 서사양식들과 소설을 갈라놓는 차이의 하나는 소설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중략)

 

탐구의 정신이 빠질 때 소설은 이미 소설이 아니다. 탐구를 추동하는 질문자체는 새로운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의미 있는 질문들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오래된 질문들, 낯익은 질문일 때가 더 많다. 오래된 질문들을 가지고 소설을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고 새로운 주제를 생산하는가?

 

그것이 바로 소설쓰기의 마술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제각각, 이론상 무한수의, 다른 대답을 내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 소설이다.

 

모종의 상실과 상처를 안고 사는 두 여자 이야기를 소재로 한 『기대어 앉은 오후』는 "사람들은 어떻게 상처를 처리하며 닫힌 마음들은 어떻게 다시 열리는가" 라는 질문을 내장하고 있다. 

 

소설가 임철우 선생은 말한다. 

 

어떠한 소재와 주제를 택하건 간에, 소설은 모름지기 인간의 보편적 삶과 인간성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통찰력, 그리고 그를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담아내기까지의 철저한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는 얘기이다.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세상에서, 소설 또한 그 가벼워진 현실의 삶을 얼마든지 가벼운 형식으로 담아낼 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를 읽어내고 증언해야 할 작가의 시선까지 함께 가벼워져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선생들의 말이 맞다. 자고로 소설이란 그런 맛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듣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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