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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속초 여행

by 아프로뒷태 2010. 12. 27.

 

 

    "동해 바다에 가고 싶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서울의 외로움을 품은 달을 마주하며 그녀는 동해바다의 밝은 달빛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물 한 살 때, 선배들을 따라 갔던 강원도 여행이 문뜩 떠올랐다. 부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강원도 삼척을 찾아갔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언제나 그녀의 머리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남아 있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녀는 짐을 챙겼다. 마땅히 기다려줄 사람도 없으면서 발걸음을 향했다. 그녀는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강변역에서 내려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해바다를 볼 수 있는 지방의 티켓을 끊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터미널 복도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여행가방을 들고 분주하게 오갔다.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가만히 앞만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게 보였다. 떠나는 자의 목적지가 뚜렷할수록 자신감은 강한 법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야할 곳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바다가 보고 싶다는 목적밖에 없었으므로.

 

 

  

 

 

   강추위가 몰려온 12월 24일 오전이었다. 버스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젊은 남녀였다. 드문드문 아이들과 함께 탄 중년의 부부, 휴가를 나왔다가 군대로 복귀하는 군인들, 그리고 백발의 노인이 버스의 좌석을 채웠다. 바람은 차가웠다. 버스의 창문에 뿌옇게 내린 서리는 칼바람에 살얼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구불구불 고비를 넘어 도착한 곳은 강원도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속초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거센 바람이 속초의 거리를 휘감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몸을 휘청거렸다. 그녀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처음입니까?"

 

   속초 관광안내소의 직원이 상담창고의 유리창을 열며 물었다. 그녀는 그렇노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속초 관광안내지도를 펼쳐보였다. 푸른 지도가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직원은 손에 쥔 모나미 볼펜으로 현재 위치를 가르켰다.

 

    "여기에서 십오분정도 걸어가면 속초등대전망대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속초가 훤히 내다 보입니다."

 

   그녀는 직원이 지도에 동그라미 친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현재위치에서 그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았다. 속초등대전망대는 바다와 근접하였고, 둥그런 탑으로 된 고층 건물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눈에 띄게 높은 건물이었다.

 

 

   그녀는 동명성당을 지나 동명동주민센터로 걸어갔다. 바람은 더 세게 불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로에 차가 많이 다닌 것도 아니었다. 거리의 건물들은 초라했다. 덕지덕지 옛간판이 걸려져 있었다. 심지어 폐업한 가게의 간판도 그대로 있었다. 거리를 지나면서 그녀는 속초가 예상과 달리 도시가 아니라 개발이 되지 않은 시골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속초해양경찰서를 지났다. 경찰서의 건물 역시 건축된지 오래된 듯 낡아 보였다. 조용한 동네라 경찰서의 사람들은 마을의 범죄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범죄란 은밀한 곳에서 모의가 시작되고 커지는 법이므로.

 

   그녀는 속초등대전망대앞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얼굴을 빳빳이 쳐들고 건물을 올려보았다. 건물은 내륙과 해안의 사이에 있는 언덕에 있었다. 건물로 이르는 길은 오직 철계단 뿐이었다. 그녀는 한 계단씩 올랐다. 불현듯 현기증이 일었다. 한순간 방심하거나 눈을 감고 걸으면 발을 헛드뎌 계단에서 구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한 계단씩 올랐다.

 

   드디어 눈앞에 푸른 바다가 들어왔다.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위협을 느꼈다. 스물 한 살의 기억에 남아있던 동해의 모습 보다 더 섬득한 광경이어서였다. 눈앞의 풍경은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서해바다와 달랐다. 수심이 얕은 남해바다와 달랐다. 동해는 수심이 깊어 물빛이 검었다. 마치 캄캄한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덥석 튀어나와 덥칠 것만 같았다. 뭐랄까? 그것은 아름다움을 압도하는 풍경이었다. 평소 그녀가 세계지도에서 보았던 북태평양의 중심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빼도 박지도 못하고 영락없이 바다 한 가운데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좌측의 등대해수욕장과 우측의 동명항을 바라보았다. 우측에는 영금정 해돋이정자가 해안가의 언덕에 넓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해안선의 최전선에 있는 영금정 해돋이정자에 모여 일출을 맞는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인기장소라고 했다. 영금정은 본래 정자가 아닌 돌로 된 산의 이름이라 했다. 바위에 부딪쳐서 나는 파도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영금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그녀는 그곳에서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칼바람은 쉬지 않고 불었다. 그 바람에 검푸른 바닷물이 해안선으로 밀려왔다. 바닷물이 해안선으로 밀려올수록 하얀 포말이 모래를 삼켰다. 그녀는 해안선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이 멈추는 곳, 동명활어어판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동명항활어판매장에는 어선이 칼바람과 거친 파도를 피해 선착장에 정박해있었다. 소리 없이 정박한 거대한 사냥꾼. 잠시 잠든 사냥꾼의 옆에서 그녀는 서성거렸다.

  

 

 

 

 

 

   바다로 항해하지 못하고 정박한 배들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대신 태양의 빛을 받으며 못다한 언어를 삼켰다. 그녀는 움직임을 멈춘 배들을 보며 어디엔가 떠나지 못하고 방안에 머믈러 있을 어부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택시를 탔다.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엔 떠나 정착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때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만든 동네, 아바이 마을로 그녀는 향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외지 사람들도 이곳에 터를 잡았지만 현재까지만해도 주민의 60%가 함경도 출신이었다.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이유로 함경도 말인 할아버지를 뜻하는 아버이를 붙여 아바이 마을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행정명칭이 바뀌어 '청호동' 이라 불리었다. 하지만 옛스런 말투가 좋아 여전히 아버이 마을이라고 불리었다.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갯배를 타야했다. 청호동 갯배의 운행간격은 짬이 없었다. 사람이 모이면 곧바로 출발했다. 배의 운전방식이 특이했다. 승선원이 아닌 손님들이 끝과 끝이 연결된 밧줄을 잡아당겨 배를 운전했다. 이곳의 갯배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무동력선이었다. 도로를 통해 움직이면 30분이지만 갯배를 이용하면 청호동에서 중앙동까지 5분만에 왕래했다. 운행요금은 성인 편도 200원이었다. 아무리 무동력선이라 할지라도 갯배를 이끌기 위해 승선원 한 명이 항상 배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배가 새벽 4시 30분부터 저녁 11시까지 운행한다고 했다. 그녀처럼 관광을 온 사람들은 멀뚱하니 배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는 마을 주민은 당연하다는 듯 노를 들어 배를 끌었다.

 

   아바이 마을은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은서가 살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은서를 추억케 하는 간판들이 눈에 띄게 걸려 있었다. 한류 드라마의 입지를 굳히는 데 돈독히 한 몫햇던 <가을동화>, 그 드라마의 촬영장소인 은서네 슈퍼는 일본인이나 대만인들의 지속적인 관광명소로써 외국인들을 맞고 있었다. 또한 인기예능프로인 1박 2일 촬영지로 붐을 일으키면서 국내 관광객들의 발길도 유혹하고 있었다.

 

 

   그녀는 갯배에 몸을 싣고 식당으로 향했다. 함경도식 오징어 순대를 꼭 먹어야겠다는 결심에서 였다. 함경도식 오징어순대는 오징어속에 각종 야채를 다져 넣은 순대로, 속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대량생산 되면서 전국의 대형 슈퍼에서도 오징어순대는 찾아볼 수 있었다.

 

 

 

   예능프로에서 촬영했던 장소여서 그런지,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여서 그런지 식당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녀는 칼바람을 이겨가며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를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의 문앞에는 고은 빛을 띤 열매들이 쌓여 있었다. 한해의 결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국과 모듬 순대를 주문했다. 주인은 그녀가 주문한 음식외에 가자미 식혜와 삭힌 깻잎을 내놓았다.

 

    "요고가 느끼하면 요고랑 같이 싸 잡수시라오"

 

 

 

 

 

 

 

 

   주인에게서 함경도 말씨가 뭍어났다. 얼핏 들으면 서울말씨 같기도 했다. 그녀는 주인이 과연 함경도 사람인지, 아니면 서울 사람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함경도 사람의 어투를 흉내내는 서울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앞에선 때론 거짓도 사실로 위장되어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식당에서 내놓느랴 여념이 없었다. 그녀의 바쁜 손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딸아이가 돕고 있었다. 딸아이는 가게문앞에서 손님들을 접수받고 있었다. 입에는 뭔가를 쪽쪽 빨면서.

 

   그녀는 아이가 물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앞에서 사먹었던 불량식품, 아폴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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