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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속초 여행 2

by 아프로뒷태 2010. 12. 28.

 

 

   강원도의 바람은 살을 찢는 듯 했다. 무엇보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긴 바람이라 방망이질보다 따갑고 고드름보다 시렸다. 그녀는 얼어버린 몸을 녹힐 곳이 필요했다. 더욱이 날은 어두워져 숙소를 찾아야했다. 그녀는 낯선 땅에서 어느 곳에 숙소를 잡아야 할 지 길 잃은 아이마냥 머뭇거렸다. 지도를 살피는 동안 피부의 감각이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습관처럼 그를 떠올렸다. 불현듯 그의 전화번호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기억은 몸의 습관과 비례했던 것일까? 오랫동안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이후로 거짓말처럼 그의 핸드폰 번호를 잊어버렸다.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어땠는지, 그의 얼굴에 쌍꺼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어두운 밤, 그녀는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에게 속초의 중앙시장에서 엑스포타워로 가자고 말했다. 속초 관광안내소에서 직원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엑스포 타워 부근이나 청초호 부근에 모텔이 많이 있습니다.”

 

   그녀는 엑스포타워 앞에서 내렸다. 택시는 어둠속에서 사라졌고 그녀는 편의점 앞에 홀로 남았다. 사방이 캄캄했고 엑스포타워의 불빛만이 반짝 거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 와중에 칼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칠 뿐이었다.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모텔들이 보였다. 그녀는 모텔들 중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갔다. 대부분이 러브모텔인 듯 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그녀는 그가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콘도로 향했다.

 

 

   “침대가 있는 방 말고, 온돌방을 주세요.”

 

 

    그녀는 방을 들어갔다. 503호.

 

 

    그녀는 방문을 열었다. 방안의 큼큼한 냄새가 화들짝 그녀에게 달려드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삼십대 또는 사십대의 이름 모를 남자가 며칠 동안 씻지 않고 머물렀으리라. 남자의 페로몬과 담배 그리고 술 냄새로 방안은 찌들었으리라. 그녀는 문을 열어놓은채 방에서 나왔다. 환기를 시키는 사이 편의점에서 맥주와 생수 한 병을 샀다. 그녀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몸을 녹인 후 맥주를 마셨다. 칼바람에 허벅지가 팽팽하게 붓고 파랗게 얼었다. 서서히 몸을 녹이면서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해돋이를 보아야해.'

 

 

   몸이 채 녹지 않은 것일까. 눈을 떠보니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해돋이를 보는 일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녀는 부스스한 얼굴로 베란다에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햇볕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다. 그녀는 숙소를 나가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이 여행의 본질은 무엇인가? 단지 바다를 보는 일인가? 아니다. 이 여행은 나른함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그러므로 안일함을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한다.

 

 

   그녀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씻었다. 그리고 속초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곳에서 감자옹심이로 유명한 ‘감나무 집’을 찾아갔다. 이미 방송을 타서인지 아니면 맛이 좋아서인지 중앙시장의 상인들에게 ‘감나무 집’의 위치를 물을 때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감나무 집의 감자옹심이는 칼국수 면과 감자전분으로 만든 수제비로 끓인 별미였다. 감자옹심이를 한 입 씹을 때마다 찰지고 고소한 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행복했다. 더욱이 온돌방이 따뜻해서 음식을 먹고나자 나른했다.

 

 

   그녀는 가게 이름이 참 정겹다고 생각했다. 사장의 고향 마당에 감나무가 있지 않았을까. 그 감나무를 보고 자란 사장은 자신의 안식처를 떠올리며 가게 명을 짓지 않았을까.

 

 

   그녀는 가게를 나와 커피가게를 찾아보았다. 서울시내에서는 버스정류장마다 커피 가게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속초의 시내에는 커피 가게를 찾아보기 드물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이디아, 탐앤탐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간판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그녀는 두 정거장을 걸어가서야 커피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도너츠 가게였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커피맛이 밋밋하다고 생각했고, 다시 칼바람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그녀는 9번 버스를 탔다. 속초버스는 서울버스나 광역시 버스와 달리 몹시 낡고 옛스러웠다. 교통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현금을 내고 타야했다.

 

 

   “낙산사를 가려는데, 낙산 해수욕장에서 내려야 합니까?”

 

 

 

 

 

   그녀는 버스 운전사에게 물었다. 운전사는 낙산 해수욕장 정류소 전에 내리면 낙산사 입구로 향하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운전사는 안내방송을 하지 않으니 내릴 때쯤 안내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해안도로는 여러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속초 해수욕장을 지나면 외옹치 해수욕장이 나왔다. 그 다음엔 속초에서 항구 중 가장 크고 유명한 항구인 대포항이 나왔다. 그곳은 입구부터 난전횟집이 밀집해 있어 싱싱한 수산물이 시시때때마다 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심심한 입을 달래줄 건어물 상회까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고 아담하게 운영되었던 대포항은 거대한 주차장과 주변시설을 갖출만큼 명실공히 속초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대포항에서 훌륭한 경치를 보며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으로는 마레몬스 호텔이 적합했다.

 

 

   대포항을 지나면 설악항의 설악해맞이 공원이 나왔다. 양양에서 속초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었다. 해마다 새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지라 공원시설이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양한 기념조각과 기념탑, 관광안내소와 야외공연장등 해안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산책을 위한 장소로 적절했다. 아름다운 파도의 포말이 항구에 부딪치며 코끝을 자극하는 해초 내음이 남다른 곳이었다.

 

 

   속초시를 벗어나면 강원도 양양이었다. 물치항의 물치해수욕장을 지나 정암해수욕장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작은 산의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해수관음상이 보였다. 버스 운전기사가 그녀에게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가 내린 4차선 도로의 맞은편에 낙산사가 있었다. 그녀는 길을 건너 양양종합관광안내소에 들렀다. 그곳에는 양양곤충생태관이 함께 운영되었다. 그녀는 안내지도를 찾아들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낙산사로 향했다. 평지에서 낙산사까지는 보도 15분 거리였다.

 

 

 

 

   여전히 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그녀는 추위와 상관없이 가슴이 설레었다. 한 번쯤 가고 싶었던 낙산사를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흥분되었다. 낙산사는 일출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지난밤 그녀는 낙산사에서 반드시 해돋이를 보리라 마음 먹었던 각오가 문뜩 떠올랐다.

 

 

   낙산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일주문과 마주했다. 그곳에서 낙산사의 안내도를 살펴보았다. 낙산사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국에서 바다에 절이 있는 곳은 세 곳으로 유명했다. 부산의 용궁사, 김제의 망해사, 그리고 강원도 낙산사 였다.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항상 머무르며 설법을 한다는 보타낙가산의 ‘낙산’에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 13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려는 수많은 기도불자들과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동해에서 해돋이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일찍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005년 4월 5일 양양군 일대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와 발굴조사를 근거로 조선전기 가람배치의 형태대로 전각 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천년 고찰의 면모를 다시 찾아 2009년 10월 12일에 회향을 하였다.

 

 

 

   홍예문을 지나면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선열당과 취숙헌으로 가는 길, 그리고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는 길에는 종각이 기세당당하게 세워져 있었다. 제 시각에 맞추어 울리는 종소리를 상상하니 머리에서 묵직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려했지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사천왕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사천왕문은 어느 절이나 있다. 사천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행자가 문을 지나야 속세의 나쁜 기운이나 죄가 씻겨진다고 그녀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천왕문을 지나 빈일루, 응향각을 지났다. 절은 하늘과 맞닿아 있어 소담하고 평화로웠다.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에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녀는 꿈이 이루어지는 길 앞에서 잠시 생각했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그녀는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지나가며 눈앞에 펼쳐진 해수관음상과 동해바다를 보았다. 하늘을 향한 해수관음상의 손, 넓은 바다의 기운이 길을 걷는 동안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산의 꼭대기에 위치한 해수관음상은 아름다웠다. 관음상의 왼손에 쥐어진 작은 항아리와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바다를 품은 대지의 여신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해수관음상과 마주하며 합장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자란 사람의 마음은 넓다고 했다. 동해바다를 보고 자란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해수관음상의 시선이 머문 동해바다를 보면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질 것 같았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원통보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7층 석탑이 부식과 손실의 아픔을 딛고 오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역사를 느끼는 일은 기록이나 책으로도 가능하지만 때론 실체와 대면하면 피부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그녀는 보타전으로 향했다. 보타전의 불상은 지금까지 그녀가 본 그 어느 불상보다 아름다웠다. 금동불상의 팔은 스물이었다.

 

 

 

    낙산사의 절을 돌아본 뒤, 그녀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향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는 일에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는 낙산사 내부에서 가장 파도를 가까이 볼 수 있는 홍련암으로 향했다. 그녀는 다시 의상대로 향했다. 의상대에선 낙산사의 산꼭대기에 있는 해수관음상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해수관음상을 바라보는 것인지, 해수관음상이 그녀를 지켜보는 것인지 살짝 혼동됐다.

 

 

 

 

 

 

 

 

 

 

 

 

   그녀는 낙산사의 후문으로 나와 등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홍련암이나 의상대와 비교할 수 없이 파도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방파제가 있는 바다로 향하는 길. 그녀가 유일하게 깊은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물결치는 파도를 지켜보며 그녀는 마치 통통배 위에 오른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땅이 흔들리는지 그녀가 흔들리는지 헷갈렸다. 바다로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까닥하다간 바다에 빠질 것 같았다. 익사사고가 많이 일어날 법도 하였다.

 

 

 

 

 

 

 

   몸을 휘청거릴 바람이 불어오는 동해바다를 향해 그녀는 소리쳤다.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말들. 속안에 담아두었던 언어들을 풀었다. 그와의 삶을 이제 놓아야 한다고 목이 메도록 외쳤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래서 잊지 못하는, 하지만 잊어야 하는, 기억의 상자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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