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향기

'Mom’ 이 위험하다. ‘영국’ 이 흔들린다. “007, Mom을 부탁해! 영국을 부탁해!”

by 아프로뒷태 2012. 10. 31.

스포일러 있습니다.

 

 

 

‘MOM’ 이 위험하다. ‘영국’ 이 흔들린다. “007, MOM을 부탁해! 영국을 부탁해!”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자 23번째 작품인 <007 스카이폴>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임스 본드가 영국 첩보단체 M16 국장인 M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가 본 <007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가 ‘엄마를 구해야 해’ 라는 작전명으로 봉건 중세시대로의 귀환을 통해서 엄마를 구하는 작전을 완수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클릭 한번으로 무궁무진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최첨단, 정보화시대에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 삶을 돌아보자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나는 본드의 M구출 작전을 ‘엄마를 구해야 해’ 라고 말하고 싶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드를 비롯해 모든 정보원은 영국이 자랑하는 첩보단체 M16의 국장을 'MOM' 이라고 불렀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지령을 받을 때, 그들은 말했다. “YES, MOM!" 하긴 그들을 첩보원으로 키워주거나 양육해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M이 아닌가. 그러니 M이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첩보원으로 양육시켜 주었으니 자식은 자식이다. 만약 M16의 국장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첩보원들은 모두 “YES, DAD!" 라고 말했을까? 아니, 그건 영국이 자랑하는 007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까지 영국의 국가수반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리더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므로 007 시리즈에서 국장은 여성이 적합했다. 또한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엄마’라는 테마는 중요했다.

 

 

 

 

 

왜 M을 ‘MOM’이라고 불러야 하는가의 두 번째 이유는 지금 현재 세계에서 영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기에 처한 M16은 곧 흔들리는 영국 경제이자 영국의 위상이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위기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은 과거와 달리 세계의 리더로서 건재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다. 영국은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오래간 모범적인 양당 정치를 구현해온 나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체제인 의원내각제를 발전시킨 나라이다. 또한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서 산업혁명을 성취하여 오랫동안 세계 경제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1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의 지위는 차차 저하했다.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입으로 경제의 안정을 꾀했으나 2차대전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도입으로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복지 국가의 실현을 꾀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높은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제 수지의 악화, 대내적으로는 코스트 인플레이션에 의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1961년부터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의 거부로 실현을 보지 못하다가 1971년 6월 마침내 수출입정책 및 파운드화(貨) 문제에 매듭을 짓고 영·불 양국간에 최종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1973년 1월부터 정식 가입(경과기간 5년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가입은 1978년부터가 됨)하게 되었다.-<위키피디아 인용>” 그러므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본드가 ‘엄마를 구하는’ 작전으로 보여지지만, 내면적으로는 영국을 구하는 작전인 것이다.

 

 

 

 

 

 

‘본드가 엄마를 구하는 작전’ 을 통해 영국의 부활 또는 영국경제 르네상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 샘 멘더스 감독은 아주 기막힌 연출 능력을 선보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영화 보는 내내 탄복과 전율을 느꼈다. 연출자 샘 멘더슨은 누구냐? 나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그를 기억한다. 이 영화는 비록 그의 처녀작은 아니었지만 2000년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문득 희곡 수업에서 희곡 교수가 한 말이 떠오른다.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린 <아메리칸 뷰티>를 보고 너희들은 무슨 생각을 했느냐? 당시 나는 샘 멘더스 감독이 보여준 ‘미국 중산층의 몰락’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무기력해진 미국, 경제적으로 무기력해진 미국을 감독이 토닥여주고 어루어주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샘 멘더스가 007 시리즈에 합류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007시리즈에서 잘 챙겨보지 않았던 내가 극장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샘 멘더스 때문었다. 그리고 극중 살바 역으로 나온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샘 멘더스 감독이 007 시리즈에 합류하게 된 것은 느닷없었던 일이 아니라,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뷰티>를 다시 꺼내어 보았을 때, 이런 대사가 있다. 어쩌면 감독은 이때에 이미 007에 열광했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되어 보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지도 모른다.

 

 

 

 

 

 

 

 자! 007 시리즈를 더 섬세하고 뜯어볼까 한다.

 

 

 

 

 

007 시리즈 고유의 상징성을 지닌 주제곡과 오프닝 시퀀스의 유혹

 

 

 

007 시리즈 고유의 상징성을 지닌 주제곡과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래미의 여왕 ‘아델’이 선사한 주제곡 [스카이폴] 은 아주 매력적이며 몽환적었다. 그것은 <아메리칸 뷰티>에서 아버지 버냄이 딸이 친구 안젤라에게 홀딱 반해버린 시퀀스의 분위기를 떠올린다. 예를 들면, 버냄의 꿈에서 발가벗은 안젤라가 욕조에서 버냄을 유혹하고 버냄이 홀딱 반하는 몽환적 분위기와 유사하다.

 

 

지금까지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007 스카이폴>에서 제임스는 같은 요원에게 총격을 당하는 일종의 배신의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꽤 흥미롭다.

 

 

과거에는 007 시리즈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007 테마곡’이 연주되면 회오리 모양의 프레임 사이로 블랙 수트를 입은 ‘제임스 본드’가 걸어 나오다 갑자기 화면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007 시리즈의 오프닝 시퀀스는 그 독특함으로 매 시리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와 더불어 007 시리즈에서는 오프닝 시퀀스와 함께 항상 주제곡이 공개되었다. 역대 주제곡으로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의 ‘루이 암스트롱’, <007 죽느냐 사느냐>의 ‘폴 매카트니’, <007 뷰 투 어 킬>의 ‘듀란듀란’, <007 어나더데이>의 ‘마돈나’,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엘리샤 키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으며 영국의 전설적인 여가수 ‘셜리 바세이’는 <007 골드핑거>,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007 문레이커>까지 총 3편의 주제곡을 불렀다.

 

 

그렇다면 이번엔 누가 불렀나? 올해 그래미의 여왕인 ‘아델’이 [스카이폴]이란 주제곡을 불렀다. 참고로 아델은 영국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아델은 지난 2011년 [Rolling in the deep] 등이 수록된 2번째 앨범 [21]으로 2011년, 2012년 최고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며 201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최우수 팝 솔로 퍼포먼스’ 등 총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그래미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엄마가 아들을 버렸다! 모성의 거부

 

 

프로로그에서 제임스 본드는 M16 요원의 신상이 담긴 파일을 훔친 범인과 달리는 기차위에서 대적한다. 이 때 본드걸은 엉켜 붙은 제임스 본드와 적을 행해 총을 겨누며 맘(MOM=국장=일명M)의 명령을 기다린다. M은 제임스 본드와의 사적 관계를 위해선 총을 거둬들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나, M16조직을 위해선 총을 쏴야 하는 갈등에 서게 된다. 하지만 갈등은 오래 가지 않는다. M은 본드걸에게 “쏴 버려!” 라고 명령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M이 제임스 본드를 배신하는 것으로 그쳐보이지만 이면에는 엄마가 아들을 버리는 일, 즉 전통적 모성의 탈피를 의미한다. 아니 엄마가 배신했다는 것이 더 적합하려나? 배신은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다뤄온 테마이다. 하지만 이번의 배신은 남다르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 배신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식사이에는 거대한 모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신은 차라리 직장이나 친구 또는 사회에서 더 빈번히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로간의 배신, 친구간의 배신, 선후배간의 배신 등등 속고 속이는 구차한 행위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공공의 이익보단 개인의 이익을 더 챙기려는 현대사회에서. 그런데 M에 의해 버려진 요원은 제임스 본드만이 아니었다.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역시 M16의 첩보요원이었다. 실바는 첩보활동을 하다 M을 위해 중국에서 붙잡혀 5개월 동안 고문을 당했다. 실바는 고통을 참으며 M의 정체를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지만 M에게 결국 버림받았다. 그래서 살바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것이 미수로 끝나 일그러진 얼굴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M은 실바로부터 살해위협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모성은 경제 불황과 경제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가족과 사회의 결속력을 유지해주는 치유의 수단이 되어왔다. 그것은 모성이 가족 안에서 사랑, 안정감, 친밀성, 성애와 같은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모든 것을 감싸고 포용하는 안식처 역할을 하도록 기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성은 가정에서 사랑과 친밀성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해왔다. 그 결과 사회의 위기 때마다 모성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쏟아져 나왔고, 각각의 작품마다 맹목적인 배려와 사랑을 요구하는 모성을 재현했다. 하지만 이제 전통적 모성은 사라졌다. 모성은 배신이라는 행위를 통해 전통적 세습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본드, 엄마(M)를 부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을 거부한 엄마에게 버려진 아들, 본드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렇게 제임스 본드의 작전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이색적인 것은 본드가 살바로부터 M을 보호하기 위해 대적하는 방식이다. 본드는 21세기에 맞게 최첨단 무기와 보호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시대의 건축물에서 화약, 사냥총, 칼과 같은 구시대적인 무기들을 사용한다. 역대 본드들은 하나같이 최첨단 무기를 갖추고 적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이번 본드는 최첨단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선택했다.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앉아서 버튼 하나로 개인 신상은 물론, 기밀 정보 유출, 증권 조작 뿐만 아니라, 살상까지 일으킬 수 있는 정보사회, 최첨단 사회에 대한 감독의 경종일련지도 모른다.

 

 

혹, 이번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떠오르는가? 제3의 물결 정보화시대에서 농경 봉건시대로 돌아간다. 인류의 역사가 농경에서 산업혁명, 정보혁명의 시대로 진화하는 과정을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하여 세계인에게 보여주었던 바가 있다.

 

 

과거 산업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뒤에,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였다. 대영 제국이 전성기일 때 영국의 영토는 지구의 약 4분의 1(1/4)까지 커졌었고, 인구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1/4)이었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와 영토였다. 당시 대영 제국은 그 영토가 지구 널리 퍼져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졌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까지 점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세계의 권력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 중세봉건의 르네상스인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르네상스의 미국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정보화 사회의 중국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그래서 샘 멘더스 감독은 본드가 악과 맞서는 배경으로 최고급 무기나 시설이 있는 도시보단 종교 개혁시대, 영국의 전성기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잠옷을 입고도 버튼 하나로 세상을 지배한는 세상에서 “이제 어디로 가지? 시간을 거슬러 가야지요.”

 

 

살바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드가 M을 데리고 떠난 곳은 본드의 고향집, 스코틀랜드의 어느 깊은 시골에 자리한 저택이다. 그 저택은 중세시대 만들어진 건물로 폭탄 몇 방이면 한줌의 재로 날아갈 남루한 곳이다. 그곳에서 살바와 최후의 대적을 하려는 제임스 본드의 의도는 불 보듯 뻔하다. 살바의 허점을 누린 것이다. 본드는 최첨단 무기와 시설 그리고 인터넷에서 버튼 하나로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살바가 도시의 문명적 혜택에 최대한 벗어나고 인터넷이 없는 구시대로 회귀하게 만들어 승부사를 던지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아무리 최첨단 무기와 정보화시대라 할 지어도 인간은 직접 피부로 부딪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일까? 악과 만나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순간에도 최첨단 무기보단 사냥하던 총이나 칼 또는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는 점은 한마디로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낫다는 것이다. 아니 때론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의 삶을 향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본드가 살바를 살인할 때, 사용한 살인 병기는 최첨단 총이 아니라 칼이었다. 이러한 본드의 의도에 방점을 찍는 이가 있다. 바로 M이 교회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죽어가는 장면인데, M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M16 팀을 이끄는 방식이 구시대적이어도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내가 맞았어” 라고 말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본드가 악과 대적하는 방식이 중세로의 귀환이라는 점을 더 강조한다. 더욱이 영화의 엔딩씬에서 새로운 국장과 본드가 만나는 장소도 영화 초반과 달리, 엔티크한 배경이었다.

 

 

반면 철저하게 디지털적인 삶을 선택한 살바의 운명은 어떠했나? 첩보원이었던 살바는 아날로그적 삶에서 디지털적 삶을 선택함으로써 죽음이라는 최악의 운명을 맞이한다. 21세기에서 정보란 놀랍다. 아는 것은 힘이 되지만 때론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컴퓨터 자판 몇 개로 M16비밀 요원의 개인 신상이 유튜브에 공개되거나 무지한 대중을 감정적으로 휩쓰는 데 약용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괴소문이란 사람들을 순식간에 흥분시킨다. 그 예로 살바가 자신의 아지트를 마련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섬에 괴소문만 내면 되었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그리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모두 섬을 떠났다.

 

 

여담이지만 샘 멘더스의 연출력에 감탄하는 씬들이 몇 있다. 소소한 사건이긴 한데, 살바는 M을 살해하려고 청문회에 찾아가고 이를 본드는 막기위해 고군분투한다. 살바의 뒤를 쫓는 본드의 발에 불이 났다. 불이 났을 땐 소화기가 불을 끄는 데 소화기가 최고인데, 마침 감독은 소화기를 터뜨려 연막작전을 펼쳐주신다. 영화 곳곳에서 이러한 센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터넷, 사적 공간이 사라지고, 공적 공간의 확대를 유도한다.

 

 

그렇다면 고민할 게 생겼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르네상스시대처럼 편안함을 주지만 그 이면에는 암흑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어째?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누리되,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행복한 일만 올 순 없지 않은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