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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지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을 분노하게 만든다.

by 아프로뒷태 2012. 8. 23.

 

 

 

 

 

지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을 분노하게 만든다.

사진을 보니 멀쩡한 청년이다. 옆집 동생같다. 훨친한 키에 건장하기까지 하다. 지방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온 이 청년이 든 것은 설계도면이 아니라, 칼이었다. 직장에 대한 분노와 친구에 대한 분노, 사회에 대한 분노가 청년의 마음에 칼을 갈게 만들었다. 청년은 실제로 칼을 갈며 이를 물었을 것이다. '두고봐라...' 그리고는 그 칼을 직장 동료에게 휘두르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휘둘렀다. 인정사정 볼 것없이 마구 휘둘렀다. 그 순간 청년은 생각했을 것이다. ' 아, 지금부터 세상과 이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지금의 청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약에 청년이 지나쳐온 과거중에서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일이 잘 풀렸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청년은 분노했다.

 

강원도에서 꿈을 안고 상경한 청년이 분노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 청년인지도 모른다. 애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반지를 주며 결혼과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20대의 폭풍같은 시기가 지나고 여느 30대 남녀처럼 안정된 삶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아내를 닮은 아이를 기르며 '아빠' 소리를 듣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30대는 미끄러져버렸다. 왜? 그것은 청년의 미성숙에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가 청년을 모퉁이로 몰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아주 적절한 말을 해놓았다. 그의 말을 빌려본다.

http://ibio.tistory.com/636 cool한 무위도식

 

불편했다.

'여의도 칼부림' 이라는 타이틀로 떠도는 수많은 기사를 보고 불편했다. 이 청년에게 관심이 갔던 것은 청년의 칼부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론이 비춘 청년의 집 때문이었다. 개인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공간인 청년의 집이 만인이 들여다보는 범죄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청년의 집에서 범죄가 일어났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공간은 말이다. 청년이 여의도로 나오기전 쌀을 앉혀 김치와 밥을 먹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며 잘 살아보자' 라고 다짐을 했을지도 모르는 공간이었을 거란 말이다. 좁은 방이라 해도 청년에겐 서울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마치 범죄의 공간 또는 사회의 낙오자가 머무르는 방인양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불편했다.

 

죄와 벌을 떠날 수 없다. 잘못한 만큼 벌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부디 언젠가 세상으로 나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그때는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정말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청년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할 때, 청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년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여의도 칼부림’ 김씨 “잠 안오면 숫돌에 칼을 갈았다”

등록 : 2012.08.23 16:52 수정 : 2012.08.23 21:40

23일 찾아간 여의도 살인 미수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30)씨가 살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은 옷과 집기 등으로 비좁았다. 사진 박아름 기자 parkar@hani.co.kr

‘여의도 칼부림’ 김씨는
5개월간 실직·카드빚 4천만원…그의 주머니엔 200원뿐이었다
신용불량자에 고시원 월세도 밀려 노트북까지 팔아 생활비 충당
최근 몇달간 칼 5자루 사모아 “잠 안올땐 숫돌에 칼 갈았다”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씨의 집은 고시원 지하방이었다.

 

23일 찾아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 ㄱ고시원 지하방은 어둡고 눅눅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은 옷가지와 가구로 꽉 차 있었다. 방에서 가장 값비싸 보이는 것은 작은 냉장고였다. 안에는 먹을 만한 음식이 전혀 없었다. 고시원의 여주인은 “한달 25만원인 월세를 김씨가 몇달 동안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은 책장에는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이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어느 대학교 동창회 회원명부도 있었다. 그는 대출 영업도 잠깐 했는데, 대학 동창회 명부는 그런 일에 요긴하게 쓰인다.

 

경찰과 김씨 가족·지인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강원도 소도시에 있는 4년제 대학 건축학과를 중퇴했다. 가족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김씨는 혼자 서울에 머물면서 2007년부터 휴대전화 미납요금을 독촉해 받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유명 통신사에서, 2009년부터는 ㅎ신용평가정보회사에서 일했다. 모두 계약직 신분이었다.

 

ㅎ신용평가정보회사에선 부팀장을 맡았다. 실적이 좋아서 거느리는 팀원이 30명까지 늘었던 적도 있다. 기본급에 성과급을 더해 월 150만~200만원을 꾸준히 받았다. 그러나 신입사원 교육 등 업무가 늘어나면서 실적이 떨어졌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누굴 가르치느냐”, “팀장이라고 월급만 많이 받아 간다” 등 동료들의 험담도 들었다고 김씨는 경찰에서 주장했다.

 

신용평가정보회사를 1년 만에 그만둔 김씨는 이후 5개월 동안 실직 상태였다. 힘들게 ㅇ은행의 대출상품을 위탁판매하는 ㅈ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기본급은 없었다. 실적이 없으면 한푼도 받을 수 없었다. 재취업 1년 만인 지난 4월 다시 퇴사했다.

 

실직자 처지가 되면서 카드빚은 4000만원까지 늘었다.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신용불량자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노트북까지 팔아 생활비로 썼다. “두달 전부터 강한 자살충동에 휩싸이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경찰에서 말했다. “혼자 죽기는 억울했다. 모든 일이 전 직장 동료들 때문이라는 증오심이 일었다”는 진술도 했다.

 

고시원의 퀴퀴한 지하방에서 김씨는 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숫돌에 칼을 갈았다”고 김씨는 경찰에서 말했다. 그가 최근 몇 달 동안 모은 칼은 5자루였다.

 

<한겨레>와 통화한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1년 넘게 연락이 안 돼 걱정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긴 했는데 뭐가 힘들었는지 자세히 말을 안 했다”고 말했다. 동생 김아무개씨는 “가끔 전화통화는 했으나 왕래는 없었다. 마지막 통화는 몇 달 전이었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5시께 김씨는 고시원을 나섰다. 4000원이 남아 있는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고 옛 직장이 있는 여의도로 갔다. ㅎ신용평가정보회사 앞에서 김씨는 2시간 동안 서서 전 직장 동료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저녁 7시15분께부터 15분 동안 김씨는 2명의 동료와 2명의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됐을 때 김씨의 주머니엔 현금 200원밖에 없었다.

 

김지훈 박아름 기자 watchdog@hani.co.kr

 

 

 

등록 : 2012.08.23 19:20 수정 : 2012.08.23 21:47

 

22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관들이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씨를 영등포구 여의도동 크레딧프라자 뒤편에서 제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느닷없이 칼 맞은 피해자들
직장상사 “평소 근태 안 좋았다”
4명 모두 생명에는 지장 없는 듯

사건 피해자들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이었다. 피해자들은 흉기에 찔려 장기가 손상되는 등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김아무개(30)씨의 직장 상사였던 김아무개(32)씨는 등 쪽을 찔려 폐와 간을 다쳤다. 병원 쪽은 “수술 경과는 괜찮은 편이고, 더 출혈이 없으면 내일 일반 병실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씨는 면회시간에 <한겨레>와 만나 ‘왕따 가해자’로 몰려 억울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피의자) 김씨가 평소 전날 술 마시고 근무시간에 조는 등 근태가 안 좋았다”며 “주변에서 평가가 안 좋았지만 오히려 나는 팀장이라서 감싸줬고, 김씨는 면담 때도 매번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씨가 술버릇이 나빠 동료들이 나무라곤 했지만, 특별히 왕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장 동료 조아무개(31)씨는 얼굴과 복부를 찔려 신장을 크게 다쳤다. 우선 얼굴 상처를 치료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경과에 따라 콩팥 제거 수술을 받을지 결정할 예정이다. 조씨의 어머니는 “딸이 병상에서 정신이 들자마자 ‘그 사람 왜 그랬대’라고 물었다”며 “내 딸이 (누구를 왕따시킬) 그럴 사람이 아니다. 정말 착한 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길을 지나다 공격당한 김아무개(31)씨는 흉기가 복막까지 들어와 소장의 일부를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의 직장 동료는 “지난해 결혼한 김씨는 지각 한번 안 할 정도로 성실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술도 잘 안 마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역시 지나던 길에 칼부림을 당한 안아무개(32)씨는 팔 힘줄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수술을 마치고 일반 병실로 옮긴 상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자포자기 부르는 사회, 불특정다수 향한 분노 촉발

 

 

등록 : 2012.08.23 19:25 수정 : 2012.08.23 21:52

22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관들이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씨를 영등포구 여의도동 크레딧프라자 뒤편에서 제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절망살인의 시대
여의도 등서 잇단 ‘무차별 범죄’
소외계층이 내면에 분노 축적
오랜기간 복수심 키우며 사전계획
전문가 “경제적 낙오자 한계상황”

지난 22일 김아무개(30)씨가 서울 여의도에서 벌인 칼부림 사건은 이제껏 국내에서 일어난 여느 범죄들과 다르다. 김씨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증오를 품고 미리 범행을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행인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경찰의 체포와 처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죽겠다며 자살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이는 미국 등 서구에서 종종 일어나는 ‘다중살인’(Mass Murder)과 꼭 닮았다.

 

미국 등에서 다중살인을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는 해고·실직 등 사회경제적 곤궁에 처한 경우가 많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을 비롯해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들은 피의자들이 모두 소외·빈곤 계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절망살인’ 또는 ‘절망범죄’가 본격화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급격히 진행된 사회 양극화의 결과, 한계상황에 빠진 이들이 절망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흉악범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계약직을 전전하다 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됐고, 재취업 길도 막혀버렸다. 자살을 고민하던 그는 ‘혼자 죽기 억울하다’는 생각에 전 직장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전 직장 동료 2명을 찌르고 길을 지나던 사람 2명도 찔렀다. 직접적인 증오의 대상인 전 직장 동료들뿐만 아니라 아무 관계 없는 행인들까지 해친 것이다.

 

김씨는 전과가 없는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이었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김씨는 2시간 전 미리 현장에 도착해 범행 대상을 기다리면서 옛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침착했다. 오랜 시간 복수심을 키우면서 범죄를 준비하고, 범행 직후 자살도 계획했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번 사건은 상당히 미국적”이라고 말했다. 총이 아닌 칼을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총기난사 사건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2010년 8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유통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흑인이 “날 괴롭히던 (직장 내) 인종주의자들을 죽이겠다”며 권총을 난사해 8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 4월 뉴욕주에선 진공청소기 공장에서 해고된 베트남계 미국인이 총기를 난사해 이민서비스센터 직원 등 13명이 숨졌다.

 

‘다중살인’에 대한 미국 국토안보부 비밀수사국의 분석자료를 보면, 범인들 대부분은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고, 오랫동안 좌절과 분노를 내면에 축적하면서, 자살을 시도하거나 고려하다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를 범죄로 표출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절망에 기초한 다중살인이 한국에서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용범 박사(심리학)는 “자살 원인의 70~80%가 실직과 빚 등 경제문제”라며 “지금까지는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자책하며 자살했다면, 최근에는 그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교수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성공 여부를 따지는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경제적 경쟁 과정에서 도태된 이들이 혼란에 빠지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절망과 증오를 드러내는 범죄가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신재 김지훈 엄지원 기자 ohora@hani.co.kr

 

 

등록 : 2012.08.23 19:18 수정 : 2012.08.23 21:49

 

지난 22일 저녁 퇴근길 서울 여의도에서 전 직장 동료와 행인 등을 상대로 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소방대원들이 정리하고 있다. YTN 화면 갈무리/뉴시스

절망살인의 시대
‘묻지마 칼부림’ 불안에 떠는 시민들
“출퇴근길 치안은 걱정 안했는데…이제는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아”
“이대로는 이런 끔찍한 범죄 반복”

22일 저녁 벌어진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으로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마음 놓고 길을 거닐 수도 없게 된 현실에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직장인 장대진(47)씨는 범행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다. “이제 불안해서 살겠느냐”고 장씨는 걱정했다. “고등학생 딸은 학원에 갔다가 밤 11시에 귀가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직장인 유아무개(33)씨도 당시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피의자 김아무개(30)씨가 체포된 뒤에도 유씨는 부들부들 떨며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전에 겪지 못한 충격이었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유씨는 “적어도 출퇴근길 치안 문제는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살인미수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전 직장동료와 행인을 흉기로 찌른 뒤 도망치는 모습이 폐회로 화면에 보이고 있다. YTN 화면 갈무리/뉴시스
시민 박아무개(24)씨는 여의도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며칠 전 경기도 의정부에서 있었던 칼부림 사건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눈앞에서 또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다. “길거리를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섭다”고 박씨는 말했다.

 

끔찍한 범행은 용서할 수 없지만 연이어 벌어지는 ‘무차별 칼부림’의 원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인 신동익(29)씨는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씨 수중에 200원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그런 극한상황에 몰리면 사회에서 격리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게 된다”고 신씨는 말했다. “실직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이와 비슷한 의견을 보이는 누리꾼도 많다. 한 트위터 이용자(@osjk765***)는 “여의도 칼부림.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가면 이런 범행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적었다. 다른 이용자(@soyan***)는 “여의도 광란의 칼부림 이유 알고보니, 공생발전이 곧 안전한 사회”라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경제난에 가족붕괴 가속…더 과격한 범죄 나타날수도

절망살인의 시대
실업 등 몰린 빈곤·소외층 처음엔 자기탓하다 주변·사회로
사전계획·자살예비 등 국외 다중살인과 유사한 현상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기던 ‘다중살인’(Mass Murder)의 조짐을 보이는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의정부역 흉기 난동 사건’ 등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극단적 분노를 표출한 범죄다. 사망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각 사건의 피의자들은 ‘주변 시민들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마구잡이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 사건의 피의자가 사회경제적 곤궁에 처한 빈곤·소외층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정상적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처지에 놓인 이들이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비관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절망살인’으로 부를 만하다.

 

절망적 심정에서 비롯한 다중살인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2일 발생한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피해자 4명 가운데 2명은 피의자 김아무개(30)씨와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었다.

 

이런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은 자포자기의 심리상태여서, 범죄 현장에서 벗어나 도망가려는 뜻이나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대신 체포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시도한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김씨는 범행 직후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이를 위해 다른 건물로 달려가던 와중에도 행인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02년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비밀수사국이 26년간 발생한 교내 총기난사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범죄자 전원이 남성이었고 △98%는 범행 직전 중대한 실패나 상실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범죄자의 93%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중살인이 그저 우발적인 ‘묻지마 범죄’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실패와 그로 인한 분노가 누적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이번 사건에 대해 “불합리한 상황을 해소할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라고 설명했다. 다중을 표적으로 삼는 절망살인의 범인들은 처음엔 자신을 탓하다가 점차 비난의 대상을 주변 동료나 친구들로 바꾸고, 나중에는 자신을 절망의 상태로 밀어뜨린 사람이 한두명의 주변인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절망살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회적 양극화 및 소외 등이 한국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상심리학자 조용범 박사는 “실업이나 경제적 문제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내 잘못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지금의 한국은 폭력적인 분노 수준이 상당히 높은 사회”라고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들과 비교해 불공정·불평등하다는 분노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산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분노를 남들에게 돌리는 것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이번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본질적으로 보아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최승원 교수는 “한국에선 경제적 혼란으로 인한 가족 붕괴 등이 매우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에 따른 범죄 등 악영향이 서구보다 더 과격한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철 엄지원 진명선 기자 fkcool@hani.co.kr  

 

 

범인 잡은 용감한 시민들
김씨 골목 몰아넣어 피해확산 막아
새누리 당직자, 옷 벗어 피해자 지혈

22일 저녁 7시15분께 김정기(57)씨는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여성이 “악” 하며 쓰러졌다. 뒤이어 피 묻은 흉기를 들고 뛰어오는 남성이 보였다.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을 일으킨 김아무개(30)씨였다.

 

김정기씨는 저도 모르게 범인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범인은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김정기씨는 우산으로 맞섰다. 막다른 골목으로 범인 김씨를 몰아넣은 시민 김씨는 우산 하나를 들고 경찰이 올 때까지 5분여간 대치했다. “제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범인을 막았을 겁니다.” <한겨레>와 만난 김씨는 겸손하게 말했다. 경호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청와대 경호실 수행부장으로 일했다.

 

‘용감한 시민’은 또 있었다. 렉싱턴호텔 앞을 지나던 이각수(51) 명지대 무예과 교수는 범인 김씨가 전 직장동료 조아무개(31·여)씨를 흉기로 찌르는 모습을 봤다. 이 교수는 즉각 뛰어나가 김씨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이 교수는 김정기씨 등과 함께 범인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이 교수는 맨손이었다. 이어 몇몇 시민들이 쓰레기통, 대걸레 등을 닥치는 대로 들고 따라와 범인 김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들을 도우며 응급처치를 한 ‘의로운 시민들’도 있었다. 계진성(41)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피 흘리는 여성을 보자마자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 상의를 벗어 지혈을 했다. 인근 새누리당사 앞에서 오랫동안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남섭(41)씨 등 다른 시민들도 응급처치를 도왔다.

 

경찰은 범인을 붙잡는 데 공을 세운 시민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사례할 예정이다.

 

김지훈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물론 여러분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해서 자식도 낳아야겠지요.
부자가 되어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 규정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할 겁니다.
재산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와 권위도 쌓아갈 겁니다.
하지만 ‘좋은 삶(good life)’은 그런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든,
교사가 되든, 사회운동가가 되든
사업가, 변호사, 시인, 과학자 등 무엇이 되든,
여러분의 자식, 아니 모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여러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투자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세대는 전쟁 종식을 강력히 요구하고,
여러분의 세대는 역사에서 아직 이뤄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 짓는 국경을 지워버리길 바랍니다.”
- 하워드 진, 스펠만 대학교 연설 <절망에 맞서서Against Discouragemen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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