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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박스 줍는 노인, 도시의 노인

by 아프로뒷태 2012. 7. 8.

 

 

 

동네 야채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불편한 장면을 목격한다.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면전에 거칠게 상자를 내던지는 가게 점원들. 정신없이 바쁜 건 알지만, 적어도 좀 ‘인간적으로’ 던질 수 있잖아? 맘 같아서는 저 무례한 녀석을 붙잡고 혼이라도 내주고 싶다. “박스 함부로 던지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저걸로 입에 풀칠해본 적 있느냐?”

 

 

김한민 작가 -한겨레 신문에서

 

 

나는 노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특히 여름날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나는 잠들지 못했다. 써야하므로, 그것은 의무와 책임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야기의 개연성과 참신함을 두고 고민했다. 바로 그때, 노인이 다가오는 소리는 시작되었다.

 

나에게 다가오기전, 그날 저녁 노인은 물에 말은 밥에 시어빠진 김치를 얹어 먹었다. 설겆이를 마치고, 텔레비전이 없는 쪽방에서 불을 끄고 초저녁잠을 잤다. 일찍 자두어야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정, 12시에 노인은 눈을 부비고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바로 여미고 바지를 툴툴 털며 일어났다. 드르륵드르륵, 노인은 폐지를 담을 손수레를 끌고 집앞을 나섰다.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폐지를 많이 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커서가 깜박이는 컴퓨터 앞에서 무엇을 더 써야할지 고민했다. 이것이 글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였다.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창밖에서 소리가 났다. 집앞 전봇대앞에 쓰레기종량제 봉지가 쌓여 있는 곳에서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뒤척거리나? 늦은 밤, 먹이를 찾아 나선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리는 제법 컸다. 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플라스틱을 밟는 소리는 고양이가 아닌 인간의 손이 빚어낸 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슬며시 창밖을 내려봤다.

 

여자다. 여자가 보고 있다. 등이 굽은 노인은 5층 건물의 창문에서 한 여자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닐을 열었고, 플라스틱과 깡통을 모았다. 박스나 폐지는 차곡차곡 개어서 수레에 담았다. 노인은 해가 뜨기전에 동네 구석구석 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낮은 몹시 더우므로 짐을 이끌고 골목길을 누비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혹 폐지를 줍다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밤에 폐지를 줍는 일은 적합했다. 걸어도 걸어도 덥지 않으므로. 그렇게 여름날의 밤을 유령처럼 떠돌며 흘러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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