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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체의 역사> 인류, 때문에 벗었다

by 아프로뒷태 2012. 3. 12.

 

 

[책] <나체의 역사> 인류,  때문에 벗었다

  • 허윤희 기자

 

종교 - 금욕·해탈의 표현
정치 - 저항·결백의 수단
대중문화 - 사회적 금기에 도전

<나체의 역사>
필립 카곰 지음|정주연 옮김|학고재|344쪽|2만5000원



2005년 8월의 어느 날, 뉴욕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 시리아의 여성 미술가 할라 파이살이 벌거벗고 분수대 주위를 돌았다. 등과 다리, 엉덩이에는 붉은 글씨로 "전쟁을 중지하라"고 쓰여 있었다. 아랍 여성 최초의 나체 시위였다. 그녀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체포됐지만, 다음 날 거의 모든 언론 뉴스에 보도됐다.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전달한 셈이다.

공공을 향한, 공공장소에서의 노출은 언제나 뜨거운 이슈. 개인 블로그에 성기 이미지를 올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클릭 한 번으로 포르노를 다운받을 수 있는 21세기에도 인간의 벗은 몸은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삽시간에 화제가 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2000여년에 걸친 나체의 역사를 살핀 이 책은 인간이 도대체 왜, 어떤 순간에 나체가 됐는지 종교와 정치, 대중문화 세 영역으로 나눠 훑는다. 영국의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면서 나체주의자인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집착을 버리고'(종교) '뜻을 관철하고'(정치) '금기에 도전하기 위해'(대중문화) 옷을 공개적으로 벗었다.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목적 때문에 공개적으로 벗었다. 왼쪽부터 힌두교 축제 쿰브멜라에서 갠지스 강에 몸을 씻는 수행자들(종교적)과‘최초의 나체 시위’격인 영국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을 그린 그림(정치적),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축구팀이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한 달력을 제작하며 찍은 사진(대중문화적)이다. /학고재 제공

◇집착을 훌훌 버리려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은 신성하다. 나체는 마음의 상태. 나는 머리를 맑게 하고 내가 말한 적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루시어스 잭슨의 '네이키드 아이(Naked Eye)' 노랫말처럼 일부 종교인은 육체적 집착과 쾌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벗었다. 인도 자이나교 공의파에선 승려들이 옷을 벗는 행위를 '하늘을 입는' 완전한 금욕 상태로 본다. 일부 힌두교 성자들도 '무소유'를 통해 해탈이라는 궁극의 자유에 이르기 위해 나체로 생활한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신 앞에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 위해' 옷(가림막)을 벗고 세례식을 진행했다.

영국과 유럽의 민간 주술에선 나체가 땅의 생산력을 높이고 말라붙은 밭에 비를 내린다고 믿었다. 18세기까지 독일 지방에서는 "여자가 치마를 높이 올릴수록 아마가 높이 자란다"는 노래가 유행했다.

/corbis·토픽이미지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종교에선 남성을 중심으로 나체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정치에선 반대로 여성이 더 자주 옷을 벗었다. 자기가 벗느냐, 남이 벗기느냐, 맥락이 중요하다. 여성은 성적인 대상이 되는 데 남성보다 더 익숙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여성은 알몸이 되는 것을 꺼리고, 그런 만큼 벗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004년 7월 15일 여성 40명이 "인도 군대가 우리를 강간한다"고 쓴 현수막을 들고 인도 임팔의 병영을 나체로 행진했다. 아삼 소총 부대 군인들이 자행한 강간과 살인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한 식당에서는 경비원이 수유 중인 여성을 내쫓았다가 50명의 엄마로부터 '역공 시위'를 당했다. 식당에 몰려온 엄마들은 당당하게 한쪽 가슴을 꺼내 아기들에게 젖을 물리며 "수유는 신체의 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항의했다.

'정치적 나체'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 악습에 저항하고 변화를 유발하는 '시위'의 수단으로도 쓰이지만, 정치인들은 결함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종종 나체를 활용한다. 멕시코 시장 후보 윌프리도 살라사르 룰레는 선거 포스터로 플레이보이 모델처럼 엎드린 사진을 썼다. 사진 옆에는 '완전히 투명하다'는 제목이 달렸다. 저자는 "나체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노출이 허용되지 않는 한 정치적 무기로서 계속 힘을 지닐 것"이라고 말한다.

◇금기에 도전하려고

예술무대에서 나체는 금기에의 도전, 해방과 성적 자부심이다. 20세기 초부터 전통적 성 관습과 노출 금기에 대한 대중문화의 도전이 계속됐다. 히피들의 반전 운동을 다룬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Hair)'는 1968년 첫 무대에서 배우들이 나체로 무대에 섬으로써 나체 공연의 촉매제 역할을 했고, 1997년 실직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트립쇼에 나서는 얘기를 그린 영화 '풀 몬티'는 나체가 그저 자극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가 있다는 걸 대중적으로 알렸다.

"번역 작업을 하는 동안 책을 떳떳하게 들고 다니지도,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꺼내놓지도 못했다"고 번역자가 토로할 정도로 '생생한' 사진 143장이 실렸다. 방대한 인류 나체의 역사를 묵직하게 분석한 책이라 제목만 보고 '덥석' 덤볐다간 후회할지 모른다. 관념적 문장이 많은데, 이걸 그대로 번역으로 옮긴 탓인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조선 / 2012.03.0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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