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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이 풀리는 순간, 모두가...

by 아프로뒷태 2012. 3. 27.

 

 

전사자 호명 때마다 유가족 오열… 대전현충원서 추모식 열려

대전 | 윤희일 기자 yhi@kyunghyang.com

“고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장철희 일병…, 한주호 준위.”

26일 오전 10시 대전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 천안함 피격 2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식에서 천안함 전사자 46명과 한주호 준위의 추모
영상이 한 명씩 비춰졌다. 동시에 그들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됐다. 전사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추모식장은 그때마다 숙연해졌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하나둘 눈시울을 붉혔다.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로 번졌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 2주기 추모식이 열린 26일 한 어머니가 사건 당시 희생된 아들의 사진을 닦으며 오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추모식에는 정·관계 인사와 시민 등 3000여명이 참석해 가신 이들의 넋을 기렸다. 유족대표의 헌화·분향에 이어 추모공연이 끝나자 김황식 국무총리가 추모사를 읽었다. 그는 “역사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으며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잊혀지지 않고 놓아지지 않는 흔적 때문에 얼마나 힘드냐”며 유족들을 위로한 뒤 “바다를 사랑하다 간 46명의 용사와 한주호 준위의 안타까운 희생을 온 국민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리와 각 정당 대표 등은 추모식을 마친 뒤 유가족들과 함께 천안함 용사와 한 준위가
안장된 묘역을 찾았다. 김 총리 등은 46용사와 한 준위의 묘역을 일일이 돌아보며 이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묘역을 찾은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다시 오열했다. 유가족들은 용사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이름을 불렀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참석해 묘역을 참배했다. 박 위원장은 참배를 마친 뒤 “천안함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도 “평화라는 것이 굳건한 안보 위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정오부터 대전 유성의
계룡스파텔에서 유가족과 부상자, 승조원 등을 초청해 위로행사를 열었다.

이날 대전현충원에는 하루 종일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추모식이 끝난 뒤 열린 추모
걷기대회에 참가해 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대전현충원이 홈페이지에 개설한 ‘천안함 용사 사이버 참배’ 코너에도 참배의 글이 줄을 이었다. 양모씨는 이 코너의 글에서 “항상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천안함의 이름이 유래한 충남 천안에서도 추모행사가 열렸다. 천안시는 태조산에 조성한 천안함
추모공원에서 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고 한주호 준위 부인 김말순씨 “아직도 멍한 상태… 조용히 살고 싶어요”

창원 |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천안함 침몰 희생자 수색작업을 하다 순직한 해군 특수전여단 교관 한주호 준위(당시 53세)의 부인 김말순씨(56)는 “지금도 멍한 게 정신적으로 안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2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힘겹게 말을 뗐다.

김씨는 천안함이 침몰한 봄이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가까울 정도로
민감해진다. 그는 “우리가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우리 남편이 헛되이 살지도 않았는데…”는 말로 그동안 힘들었던 삶을 대변했다.

그는 “2년이 지난 지금 서서히 잊혀간다.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유가족
모임 등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한 준위가 돌아올 것만 같은 마음에서일까. 창원시로 새로 옮긴 김씨 집에는 여전히 한 준위의 방이 따로 있다. 그곳에는 한 준위의 훈장상패, 현역 때 활동했던 사진, 태극기 등 유품들이 있다. 김씨는 새 옷 사입는 것도 싫어한다. 한 준위가 검소하고 오래된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편의 방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들 한상기씨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문 밖에서 한참을 울기도 한다.

김씨는 틈만 나면 사찰을 찾아 남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함께 치유한다.

상기씨는
교사가 됐다. 학군장교(ROTC)였던 그는 천안함 사건 3개월 후 전역하고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 ‘생활의 길잡이’에 한 준위의 희생정신이 실려 있지만 학생들은 그가 한 준위의 아들이라는 걸 모른다고 한다.

 

 

고 방일민 중사 부친 방광혁씨 “일어나면 아내가 없어요… 죽은 아들한테 간 거죠”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정신차려보면 엉뚱한 곳… 생업 택시운전 포기 상태”

고 방일민 중사의
아버지 방광혁씨(60)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 낚시를 간다. 아들과 자주 갔던 강원도 소양호 상류의 한적한 낚시터에서 방씨는 아들을 생각하며 소리내 울곤 한다. 방씨는 아들과 유독 각별한 사이였다.

“천안함 침몰 며칠 전에 일민이가 휴가를 나왔어요. 나와 둘이 술을 마시다 ‘아빠, 우리 마지막으로 뽀뽀한 게 언제지?’라고 묻더니 내
무릎에 앉아서 볼에 뽀뽀를 하더라고요. 아마 일민이는 무의식 중에 사고가 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봐요.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미칠 것 같아요.”

방씨는 지난달 큰아들 없이 환갑을 맞았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듬직하던 아들을 가슴에 묻은 지 2년이 지났다.

천안함 침몰 사고는 방씨와 가족들의 삶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방 중사는 “군에서 요리를 배워 부모와 함께 식당을 차리겠다”면서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고 한다. 2007년 3월 해군 조리하사로 임관한 방 중사는 2009년 7월부터 천안함에서 조리장으로 일했다. 방씨는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차리면 전국에 체인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돌아봤다. 아들이 숨진 후 가족은 식당을 하려던 꿈을 접었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방씨는 사고 후 거의 일을 하지 못했다. 목적지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들은 요금을 더 받기 위해 일부러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화를 냈다. 그때마다 방씨는 울음을 삼키며 사과했다. 지금도 예전처럼 오래 일을 하지는 못한다. 오전 9시에 나갔다가 오후 5~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불편하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천안함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다고 했다.

“인천 검단지역에서 택시운전을 오래 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만나는 사람들이 자꾸 그 얘기를 꺼내면 더 생각이 나서 힘들죠.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쳐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아는 사람이 많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방씨는 “나보다 아내가 더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방씨의 아내는 사고 이후 바다에 가는 걸 싫어한다.

“가끔씩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집에 없어요. 새벽에 혼자 아들을 보러 대전현충원에 간 거죠. 아내는 지금도 가끔 일민이에게 편지를 써요.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어요. 보면 눈물이 날 게 뻔하니까요.”

방씨는 아직도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은 아들이 언젠가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방씨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많이 노력을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느냐”며 “평생 마음속에 안고 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북한 김계관 부상 방미 추진중에 ‘사건’ 터져
한·미·일-북·중·러 갈등 불러 동북아 긴장 고조
최근 미국 대화재개 시도…MB정부, 선택 기로

천안함이 바꾼 정세

 

북한의 2009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에 2010년 해빙 분위기가 찾아들었다. 그해 3월 말, 북한과 미국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 디-데이는 4월 중순이었다. 북-미가 마지막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 3월26일 천안함이 침몰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한-중 사이 갈등이 깊어졌고, 미-중간 힘의 충돌이 빚어졌다. 지난해 11월엔 급기야 연평도가 전후 최초로 포격을 당했다. 남북 포격전을 부른 한반도 긴장 고조의 단초에 천안함 침몰이 있었다.

천안함 사건은 냉전시대의 진영 갈등을 동북아에 재현했다. 한-미-일과 북-중-러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둔 판단부터 갈렸다. 한국의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초기 침묵하던 미국은 4월 말부터 조사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한국 정부의 발표를 도왔다.

 

천안함을 북한이 공격한 증거라고 국방부가 발표했던 어뢰추진체가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보도진에 다시 공개됐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반면에 북한은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중국도 동조했다. 천안함 조사 과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중국 군부도 나름대로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이런 판단이 최상층 지도부에 전달됐다”고 전했다. 한국에 조사단을 직접 파견했던 러시아도 ‘1번 어뢰’는 “어뢰 잔해의 하나일 뿐이고 기뢰 폭발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 활용도 첨예하게 부딪혔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로 일본 하토야마 정부와 이상 기류에 휩싸였던 오바마 행정부에 천안함 사건은 돌파구가 됐다. 5월22일 일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맞닥뜨린 위협은 일본에도 위협”이라며 천안함을 상기시켰다. 다음날 하토야마 일본 총리는 주일미군 기지를 이전하려던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한-미-일 ‘남방 3각 축’의 복원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중국은 반발했다. 특히 한-미 연합훈련 때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서해 진입 시도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중국은 미국이 유사시 대만해협을 차단하려는 훈련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표출했다. 미-중, 한-중 사이엔 불신과 갈등의 앙금이 쌓였다.


이 과정에서 남북이 정세를 끌고가는 힘은 뚝 떨어졌다. 한국은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간 교역과 교류를 중단시킨 ‘5·24 천안함 대응 조처’를 발표했다. 미국과 함께 대규모 해상 무력시위도 벌였다.

그로부터 1년, 한반도 정세는 갈림길에 섰다. 1년여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던 미-중은 지난 1월19일 정상회담에서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미국은 조심스럽게 대북 식량 지원을 재개하는 방법으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탐색에 나섰다.

협상 국면으로 다시 방향을 틀 듯한 한반도 주변정세 앞에 이명박 정부도 선택의 기로를 맞고 있다. 국내 대북 강경파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천안함 사건을 우회해서라도 정세의 흐름에 동참할 것인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버티기로 일관할 것인가다. 그 선택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평화와 충돌, 안정과 갈등 사이를 오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용인 손원제 기자 yyi@hani.co.kr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한겨레출판·1만2천원
20개의 키워드로 천안함 사건 파헤쳐
21일부터 매일 키워드 하나씩 소개

‘천안함 의혹’을 총정리한 서적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이 출간됐다. 한겨레 기자들과 시민단체·군사전문지·언론전문지 기자와 활동가들이 ‘가려져 있는 천안함의 진실’을 찾기 위해 천안함 최종보고서 발표 뒤에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혹들을 정리했다.

국방부가 지난 9월13일 펴낸 최종보고서는 2010년 3월26일 밤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형잠수정이 발사한 중어뢰가 수중폭발을 일으켜 천안함을 격침시킨 사건”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최종보고서엔 국방부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최종보고서는 중어뢰를 쐈다는 ‘북한의 소형잠수정’이 어떤 것인지 특정하지 못했으며, 그 중어뢰의 폭발력(티엔티 환산 때 350~500kg)과 사건 당일 발생한 지진파의 폭발력(리히터 규모 1.5로 티엔티 환산 때 140~260kg)의 모순도 해명하지 못했다. 더욱이 수중폭발 때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높이 100m 이상의 물기둥과 관련한 증언에서는 ‘조작’ 냄새마저 풍긴다. 물기둥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증언을 마치 물기둥을 본 것처럼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최종보고서는 이밖에도 갖가지 모순으로 가득하다. 천안함을 두쪽 낼 정도의 어뢰가 터졌다면, 승조원들이 “총알처럼 튕겨나간다”는 민군 합동조사단 자문위원의 증언이 있는데도 최종보고서는 ‘뫼르쇠’다. 폭발은 천안함의 왼쪽에서 일어났는데, 스크루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 휜 데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선체에 붙은 흡착물은 폭발물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은 국방부가 주장하는 사고시각보다 짧게는 4분 가까이 일찍 끊겼다.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북한 어뢰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은 녹슨 어뢰추진체는 더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합조단이 이 어뢰 추진체의 것이라며 5월20일 발표한 실물 설계도가 가짜임이 밝혀져 국민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겨레>가 특종보도한 러시아 천안함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단은 이 추진체가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2개월 물속에 있었다고 판단한 국방부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다시 살펴봐도 국방부가 펴낸 천안함 최종보고서엔 “북한이 했다”는 주장은 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은 지극히 빈약하다. 달리 표현하면, 국방부는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공격당해 침몰했다는 가설을 내놓았으나 최종보고서에서도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셈이다. 한마디로 천안함과 관련한 진실은 여전히 ‘봉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가설 단계의 ‘북한 어뢰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대내외 정책들을 펴나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북풍몰이’를 해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이외의 경협을 전면 중단시켰다. 또 미국과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는 등 확연한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펴나간다. 이런 모습에 중국은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산둥반도에서 대규모 맞대응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남한 대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각종 인허가를 늦추고 있는 현상이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 정부의 이런 편향된 외교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천안함이 한반도의 안정을 급격하게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놓고 한반도 주변국들이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탓이 크다. 심지어 지난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한 국민들도 32.5%만이 정부의 ‘북한 어뢰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다.


이런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지난 9월29일 유엔 총회에 참석중인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을 이용한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부상은 또 “남조선 당국은 사건 진상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을 위하여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제기한 검열단의 현지 파견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검열단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 등 정책 변화를 ‘북한의 천안함 공격 사과’와 연계시키고 있다. 천안함과 관련해서 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갈등이 심화됐을 때 중재에 이르기가 어렵다. 한반도 정세가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구도로 짜이고 있는 속에서 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천안함 해석에 빚대어 정당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천안함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의 행보를 이런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이익을 바라는 마음들을 천안함의 봉인에 기대어 숨기는 이런 구조에서 분쟁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이 책의 기획의도 중 하나는 천안함의 ‘진실’을 확인하는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천안함과 관련한 인식의 간극을 줄이고 그것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제거·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우선 1부에서는 지난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의 국내외 흐름을 <한겨레> 기사를 토대로 쭉 살펴보았다. 1부 기사를 통해,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 그리고 남한 내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천안함과 관련한 활동주체들이 어떻게 움직여왔고, 또 어떤 입장 변화가 있었는지 큰 틀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에서는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최종보고서의 모순들을 본격적으로 집중 해부한다. 남한 정부가 ‘북한 어뢰설’ 등 아직까지 가설에 불과한 주장을 진실로 통용시키고자 하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짚어보았다. 제3부에서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큰 의혹의 중심에서 취재활동을 해온 필자들의 취재기를 담았다.

한겨레 e-뉴스부에서는 앞으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에서 다루고 있는 20개의 키워드를 하나씩 요약 소개할 예정이다. 갖가지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하나의 길잡이가 될 것을 기대한다. /한겨레출판·1만2천원.

 

김보근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장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목차

 

책을 펴내며: 냄새가 난다, 봉인을 풀자

 

1부 사건의 개요

근거가 실종된 시간들 2010. 3. 26 - 10. 12

 

2부 20개의 키워드로 읽는 천안함 사건

 

폭발 논란

01. 충격파 100G: 어뢰 파격이면 승조원 총알처럼 날아가

02. 스크루 휨 현상: 폭발은 왼쪽인데 왜 오른쪽이 엿가락?

03. 흡착물: 그 모래와 소금, 폭발과 무관

 

시간, 장소 논란

04. 시시티브이: 카메라는 왜 9시17분에 멈추었나

05. 엇갈리는 장소: 지진파, 초병 진술, KNTDS 항적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북한 관련

06. 연어급 잠수정: ‘깜짝’ 등장했다 ‘슬그머니’ 사라지다

07. CHT-02D: 정보기관의 무능력, 북한의 ‘유령 군사력’ 만들다

08. ‘1번’ 글씨: 유성펜의 미스터리, 과학자여 논쟁하자

09. 지진파: ‘폭발력 260kg‘은 수심과 ‘따로’ 놀아

 

보고서 왜곡

10. 왜곡된 보고서: 설계도 실수 숨기고 충격파는 교묘히 속이고

 

여러 가지 가설들

11. 어뢰설: 007 같은 인간 어뢰설까지 보수 언론, 청와대, 경호처 공명

12. 좌초설: “난 좌파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좌초다”

13. 기뢰설: 136개의 ‘서해 크라이시스’는 어디에

 

천안함과 한반도

14. 국제사회: 한발 빼는 스웨덴, 미국 빼곤 구색 맞추기

15. 미국: 최대의 수혜자 또 어떤 청구서를?

16. 동북아: 신냉전 구도 ‘한·미·일’ 대 ‘북·중·러’

17. 남북 경제관계: 정권 이익을 위해 바친 민족 미래의 비전

 

천안함과 한국사회

18. 정치: 정보 접근도, 과학자 조직도 못한 국회

19. 사회: “한 방에 갈 수 있어” 공포체제의 부활

20. 언론: 인터뷰 논객과 누리꾼에게 부끄럽다

 

3부 천안함 취재기 및 사건 일지

○ 한겨레21 취재기: 승조원들 표정이 단서, “혹시 사고가 아닐까?”

○ 백령도 ‘침선’ 취재기: 정체불명의 침몰 선박, 왜 군은 끝까지 은폐했나

○ 하니TV 다큐 제작기: 팩트 찾아 60일, 25분 영상에 담다

○ 러시아 천안함 보고서 요약본

○ 천안함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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