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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왜 당신의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날까?

by 아프로뒷태 2011. 5. 2.

지금으로부터 5년전이었을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평상에 누워 봄볕을 쬐는 일처럼 간지럽다. 

 

내겐 일본문화에 매력을 느껴 내게 일본문화를 소개해준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내게 한국 속에 일본문화를 찾아 데려가 주었다.

낯선 곳에서도 흔들림없이 꿋꿋하게 지내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지금 일본에 가서 살고 있다.

친구가 일본으로 떠난 후, 연락이 쉽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무엇을 하든 믿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변심해도 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가 친구의 전부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아는 범위내에서

친구는 살아가는 느낌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일본 문화하면 음식이 떠오르고, 그 음식을 떠올리면 가수 임재범이 떠오른다.

2006년 홍대 주차장 골목길로 가는 길에 '쇼부' 라는 오코노미야끼 전문점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기억속에 남아 사라진 자리를떠돌며 나는 다시 그곳에서 오코모니야끼와 맥주를 마실 날을 학수고대했다.

당시에는 홍대의 거리를 외롭게 걷다 출출해지면 혼자라도 들어가 허기를 채우고 술을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푸른 빛의 가게 간판 아래에는 조리대를 둘러싼 사각 테이블이 있었다.

그 테이블에는 손님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단촐하고 모던한 가게의 구도는 음식을 주문한 손님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손님은 주문한 음식을 조리사가 조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좋아서 언젠가 혼자 와서 허기를 채우고 가도 좋으리라 생각했었다.

 

그 날 친구와 오코노미야끼를 주문하고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입 안에서 달콤 짭쪼름하게 녹는 오코노미야끼를 먹으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임재범씨가 가게로 들어왔다. 물론 일행이 두 명  더 있었다.

그는 비니를 쓰고 있었고 구릿빛의 그을린 얼굴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단한 얼굴은 한 눈에 봐도 눈에 띌 정도였다. 진정, 남자였다. 일행과 오모노미야끼를 먹는 임재범의 얼굴에는 "젊음"이란 단어와 "야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때의 인상이 그의 노래보다 더 깊이 남았었다.

 

 

 

 

 

그날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그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나역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연결되어 있나보다.

TV를 보지 않지만 우연히 임재범을 마주하게 되었다.

임재범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레임에 방송을 찾아 보았다.

 

어쩐지 그는 늙어 있었다.

아프리카를 5년 동안 뛰어다니다 지친 사자처럼...

5년 동안 광활한 초원을 뛰며 보았던 별의 별것을...

그 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을 가슴에 가득 품고 있는 사자처럼...

그가 노래를 부르며 뱉은 숨소리에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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