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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보고 듣다(문장배달)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by 아프로뒷태 2014. 11. 8.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했다.

 

-개자식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녀의 새끼들! 망할 자식들!

 

또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멍청이들! 부랑배들! 조무래기들! 고집불통들! 더러운 놈들! 돼지새끼들! 깡패! 썩어문들어질 놈들! 고얀 놈들! 악독한 놈들! 살인자의 종자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눈이 따갑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붉히거나 떨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런 말들을 되는 대로 지껄여댔다. 점점 심한 말을.

 

하나가 말한다.

 

-더러운 놈! 똥 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나서 거리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떡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 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훈련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영원히.……너희가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 출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상)』, 까치 1993 (23-25)
 

 

 

● 아고타 크리스토프: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반체제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조국을 탈출. 스위스에 정착해 망명 문인들의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함. 소설 『아무튼』『어제』, 3부작 소설『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등이 있음.

● 낭독- 김세동 : 배우. 연극『비닐하우스』『날 보러와요』『자객열전』 등에 출연.
이지현 : 배우. 연극『춘천거기』『임대아파트』『금녀와 정희』 등에 출연.
윤태보 : 배우, CF모델. 연극 『이』 『그때』 등에 출연.
장희재 : 배우. 연극『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드림스튜디오』『아홉개의 모래시계』 등에 출연.

 

● 음악 : 한창욱



원칙적으로 고통은 기억되지 않죠. 그래서 인생은 계속 이어지니까요. 엄마들은 둘째를 낳고, 저는 다음 소설을 쓰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흔히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 순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에요. 우린 다 존엄하게 태어났으니 그런 고통 따위는 가볍게 웃으며 견디기로 해요. 우리 인생보다 더 오래 가는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사랑했던 순간, 우리가 행복했던 기억은 영원히 우리 안에 남는다는 점이죠. 그런 까닭에 그게 훨씬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제가 좀 슬프겠죠. 그건 당신에게 사랑의 경험이 없다는 소리일 테니.

 

2008. 11. 27. 문학집배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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