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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기

버틀러, 이 영화가 궁금하다.

by 아프로뒷태 2013. 11. 21.

 

 

 

인디언의 땅에서 벌어지는 흑인과 백인의 역사

그게 말이다. 유럽에서 신대륙을 찾아 떠나지 않았다면, 마젤란과 콜롬버스가 새로운 대륙을 찾지 않고 유럽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은 욕망 덩어리, 쫀득쫀득 욕망을 머리에 품고 살다 언제 화산 폭발하듯 뿜어낼 지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항상 그래 왔고. 그러다 보니 똑똑한 유럽인들이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리가 없다. 금을 캐자! 땅을 갖자!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 라고 외치며 금과 욕망, 자원 또는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 떠난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리하여 유럽인들의 새로운 삶터, 아메리카 대륙이 되었는데...만약 유럽인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백인도 흑인도 살지 않는 인디언의 나라로 지금도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넓은 땅에 인디언은 어디로 갔는지 없다. 도대체 그곳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인 인디언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미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흑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디언의 역사도 당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넓은 땅에서 살고 있던 인디언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늑대와 춤을> 캐빈 코스터너 주연의 영화가 있기 하다. 그 영화로 인해 백인의 침략으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어 관심사를 북돋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현실을 과장, 왜곡했다. 백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디언의 모습일 뿐이다. <포카혼타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디언의 역사를 제대로 그려낸 사람은 누구인가? 왜 할리우드는 인디언의 역사에 대해 진정성있게 다루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젠 인디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아야 한다.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유럽인들에게 끊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고 저항한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흑인이다. 아메리카에 흑인들은 대다수 세계 식민주의가 팽배할 때, 면직물 생산을 위한 노동력을 끌어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대거로 데려온 노예들이다. 세계적으로 식민주의가 식어갈즈음, 노예로 살아갔던 흑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점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노력의 결과,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 지금의 위치라 함은 미국역사에서 노예해방 운동이라는 평화주의적 상징을 만들어낸 일이다. 어찌보면 백인이 만든 공보다 흑인이 만든 공을 더 의미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여 21세기의 미국을 보면 백인보다 흑인의 위치가 급 상승하고 있다. 아니 그동안 폄하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흑인의 인권과 존재성이 백인과 동급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백인 대통령에서 흑인 대통령으로, 백인 영웅에서 흑인 영웅으로...그렇게 흑인은 이제야 백인과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백인이 바라보는 흑인에 대한 선입견, 흑인이 바라보는 백인에 대한 선입견이 잔재하고 있다. 역사는 그리 쉽게 청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하여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이 흑인으로 등장하면, 인종문제에 대한 역사의식을 배제할 수 없는데....가장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허심탄하게 본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이다. 정말 끝내주게, 매끄럽게 잘 만든 영화이다. 주인공이 흑인이라 더 좋았던 영화였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떨까? 어떤 시선과 사고로 관객들을 파고들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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