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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코맥 매카시, <더 로드>

by 아프로뒷태 2013. 3. 26.

요즘 매카시 아저씨가 쓴 소설로 만든 영화가 그립다. 이 맘때 항상 개봉했던 것 같은데.... '더 로드' 도 그렇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렇고...

보고 싶네.

<모두 다 예쁜 말들>을 영화화 해주었으면... 기다리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화 해주어도 괜찮겠다.

 

남자는 소년이 불을 지피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의 불을 뿜는 용, 불꽃들이 위로 솟구쳐올라 별이 없는 어둠 속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한 말이라고 모두 진실은 아니야. 이 행복은 그 터전이 사라졌다 해도 변함없이 진짜야. 38쪽


세상의 역사에는 죄보다 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는 거기에서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40쪽


남자는 전에 이런 강가에 서서 깊은 물에서 송어가 번쩍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물이 차 茶색깔이어서 먹이를 먹으려고 옆으로 몸을 돌리 때가 아니면 보이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칼이 번쩍이듯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햇빛을 반사할 때가 아니면. 50쪽


타오르던 작은 종이 뭉치는 가느다란 불길로 변하더니 순간적으로 어떤 꽃의, 녹은 장미의 형체 같은 희미한 무늬만 백열광으로 남긴 뒤 사라져버렸다. 다시 깜깜해졌다. 56쪽


네 마음에 드는 과거는 어떤 걸까?…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64쪽


옆에 아무도 없는 사람은 유령 같은 거라도 대충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 게 좋아. 거기 숨을 불어넣어 살려내서 사랑의 말로 다독이면서 끌고 다녀. 환상의 빵 부스러기라도 주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당신 몸으로 막아줘. 나한테 유일한 희망은 영원한 무 無야. 난 온 마음으로 그걸 바라. 68쪽


며칠 밤이 지난 뒤 여자는 침대에서 건전기 등의 불빛을 받으며 아이를 낳았다. 설거지용 장갑. 작은 정수리의 갑작스러운 출현. 길고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과 피가 엉켜 줄무늬를 그린 정수리, 악취가 나는 배내똥. 여자의 울음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창문 너머로 심해지는 추위, 지평선의 불들. 남자는 날것 그대로 벌거벗은 여위고 붉은 몸을 높이 들어올려 부엌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아들을 수건으로 샀다. 70쪽


남자는 뭔가 할 말을 생각해보려 했지만 마당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전에도 이런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마비 상태나 무지근한 절망마저 넘어선 어떤 느낌. 세상이 날 것 그대로의 핵심으로, 앙상한 문법적 뼈대로 쪼그라든 느낌. 망각으로 빠져든 사물들을 천천히 뒤따르는 그 사물의 이름. 색깔들. 새들의 이름. 먹을 것들. 마침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이름마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덧없었다. 이미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시대상을, 따라서 그 실체를 빼앗긴 신성한 관용구. 모든 것이 열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어떤 것처럼 스러져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깜빡 하고 영원히 꺼져버리는 어떤 것처럼. 103쪽


어쨌든 안 잡아먹을 거죠.

그래. 안 잡아먹어.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그래.

그리고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맞아.

알았어요. 148쪽


깨어있는 세계에서는 견딜 수 있는 것도 밤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남자는 다시 꿈이 찾아올까 두려워 잠을 자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는 회색 빛 속으로 걸어나가 우뚝 서서 순간적으로 세상의 절대적 진실을 보았다. 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 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시커먼 우주. 그리고 쫓겨다니며 몸을 숨긴 여우들처럼 어딘가에서 떨고 있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 그리고 그것과 애달파하는 비려온 눈目 149쪽


남자는 떠오르는 모든 기억이 그 기원에 어떤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다. 파티의 게임에서처럼. 말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에서처럼. 따라서 아껴야 한다. 기억하면서 바꾸어버리는 것에는 알든 모르든 아직 어떤 진실이 담겨 있으니까. (기억은 최초의 기억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꾸 살이 덧붙여진다) 151쪽


조심하면 되잖아요.

이미 조심하고 있어.

좋은 사람들이 오면 어떻게 되는 거요?

글쎄, 길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지는 않구나.

우리도 길에 나와 있잖아요.

알아.

늘 조심한다는 건 늘 무서워한다는 거 아닌가요?

글쎄. 처음에는 무서워야만 조심을 할 것 같은데. 신중하게 행봉하고. 지켜보고.

그럼 그다음부터는 무섭지 않아요?

그다음부터는?

모르겠구나. 어쨌든 조심은 늘 해야 하는 건지도 몰라.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 어쩌면 늘 그런 걸 예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바는 언제나 예상을 하세요?

하지. 하지만 가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잊을 수도 있어. 172쪽


다시 잠이 깼을 때는 비가 멈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잠을 깬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꿈에서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물의 방문을 받았다. 그 생물들은 말이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자는 동안 그 생물들이 침대 옆을 기어다니다가 자신이 깨자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보았다. 어쩌면 남자는 그 자신이 소년에게는 외계인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사라진 행성 출신의 존재. 그 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수상쩍었다.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를 구축할 때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소년이 자신보다 이 점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꿈을 기억하려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은 것은 꿈의 느낌뿐이었다. 어쩌면 그 생물들이 그에게 경고를 하러 온 것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경고하러?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미 재가 된 것을 아이의 마음속에서 불로 피워올릴 수는 없다는 것. 지금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들이 이 피난처를 찾아내지 못했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어서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175쪽


남자는 노인을 굽어보았다. 어쩌면 노인은 신으로 변하고 그들은 나무로 변할지도 몰랐다. 알았다. 남자가 말했다. 185쪽


사람들은 늘 내일을 준비했지. 하지만 난 그런 건 안 믿었소. 내일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 192쪽


신은 알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은 없소.

없다고요?

신은 없고 우리는 신의 예언자들이요. 193쪽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그런 건 다 넘어섰소. 오래 있었거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당신도 알게 될 거요. 혼자인 게 낫소.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요. 마지막 신과 함께 길을 떠돈다는 건 끔찍한 일일테니까. 그래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

사라질까요?

틀림없이 사라질 거요.

그럼 누구에게 나아진다는 겁니까?

모두에게.

모두에게.

그럼. 우리 모두가 나아질 거요. 모두 더 편하게 숨을 쉬겠지.

그걸 알게 되니 좋군요.

그렇고말고. 마침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여기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고 죽음도 얼마 가지는 못할 거요. 죽음이 길에 나서도 할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은 이럴거요. 다들 어디로 갔지? 그렇게 될 거요. 그게 뭐가 문제요? 197쪽


겨울 들판 가장자리에, 거친 사내들 사이에 서 있었다. 소년의 나이였다. 아니 약간 더 많았다. 그들은 바위가 많은 비탈땅을 곡괭이로 파고 있었다. 백 마리는 돼 보이는 거대한 배들의 덩어리가 빛에 드러났다. 함께 온기를 유지하려고 거기 모여 있었다. 차갑고 강한 빛 속에서 칙칙한 관 같은 몸들이 굼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빛에 드러난 큰 짐승의 내장 같았다. 사내들은 그 위에 휘발유를 붓고 산 채로 태웠다. 악의 치유법은 없었다. 악의 이미지에 대한, 그들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치유법만 있을 뿐이었다. 불타는 뱀들은 무시무시하게 꿈틀거렸다. 몇 마리는 불이 붙은 채 동굴 바닥을 가로질러 더 어둡고 후미진 곳을 밝혔다. 벙어리였기 때문에 고통의 비명은 없었다, 사내들은 뱀이 불에 타고 몸부림치고 시커메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들은 겨울 어스름 속에서 말없이 흩어졌다. 각자 생각에 잠겨 집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다. 215쪽


머리에 한번 집어넣은 것은 영원히 그대로 있나요?

그럼 상관없어요. 아빠

상관없다고?

이미 머릿속에 있는 걸요. 217쪽


괜찮다니까. 오래전부터 이렇게 될 거였어. 지금 이렇게 된 것뿐이야. 남쪽으로 계속 가. 다 우리가 했던 대로 하면 돼.

괜찮아질 거에요. 아빠. 그래야 돼요.

아냐, 그렇지 않아. 항상 총을 갖고 다녀. 좋은 사람들을 찾아야 하지만 모험은 하지마. 절대 하면 안돼. 듣고 있니?

함께 있고 싶어요.

안 돼

제발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요.

모르긴 왜 몰라.

그게 진짠가요. 불이?

그럼 진짜지.

어디 있죠? 어디 잇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네 눈에는 보이는데.

그냥 함께 데려가주세요. 제발.

못해

제발, 아빠

못한다니까. 난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을 수가 없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어. 314쪽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아떻게 알 수 있죠?

알 수 없지. 그냥 운에 맡겨야지 뭐.

아저씨는 불을 운반하세요?

뭐라고?

불을 운반하냐고요.

너 좀 불안한 거 아니냐?

아니에요

조금은 그런 것 같은데

맞아요

뭐 괜찮아

그래서 운반하세요?

뭐, 불을 운반하냐고?

네.

그래 운반하지

아이들은 있나요?

있지

작은 남자애가 있나요?

작은 남자애도 있고 작은 여자애도 있어.

남자애가 몇 살이죠?

네 나이쯤인데, 어쩌면 조금 많을까?

그 아이들을 잡아먹진 않죠.

안 잡아먹어.

사람을 잡아먹진 않죠.

안 먹어. 우린 사람 안 먹는다.

내가 함께 가도 되나요?

그래. 가도 돼.

그럼 좋아요

그래320쪽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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