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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by 아프로뒷태 2013. 3. 26.

 

 

그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았다.

그들에게는 피가 있고 피에는 열기가 있다. 그의 모든 존경과 모든 사랑과 모든 취향은 뜨거운 심장을 향한 것이었고,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다. -13쪽


나는 절대 여자한테 놀아나지 않을 거야.

롤린스는 부츠 뒤꿈치에 대고 담뱃재를 털었다.

그는 아무 대꾸도 안 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꼭 그런 것은 아냐. -19쪽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에요. 아버진 여전히 아버지예요.

소년의 아버지가 기침을 쿨럭였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본성이라……-22쪽


난 무신론자가 아니야. 그저 종교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23쪽


그는 빈 앞자리 등받이에 팔꿈치를 얹고 손목에 턱을 괸 채 아주 진지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을 통해 현재 세상이나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불이 켜지자 박수가 터지고, 소년의 어머니가 여러 번 앞으로 나와 인사하고 나서 출연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와 손에 손을 잡고 인사한 다음에야 막이 완전히 내렸고, 관객들이 일어나 복도를 올라갔다. 그는 텅 빈 극장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 모자를 쓰고 추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34쪽


데스페라도-스페인어로 거침없는 무법자.


마음이 불안했던 적 없어? 롤린스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글쎄. 그냥 아무 일 때문이라도. 괜히 마음이 불안한 거 있잖아.

몇 번 있었지.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을 때면 불안해지지. 누구나 다 그렇잖아.

마음이 불안한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그건 자가기 있지 말아야 할 장소에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다는 뜻이야? -55쪽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말은 맞아.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 하지만 최고는 단 한 명뿐이라고. 그리고 바로 그 최고가 지금 네 앞에 앉아 있다 이 말이야. 롤린스가 말했다. -86쪽


그들은 저 아래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풀을 뜯던 말들도 고개를 들고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다 마신 롤린스는 컵을 흔들어 털고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을까?

그럼, 최후의 심판일이 있잖아.

진짜 그날이 올까?

하나님 마음이지

심판일이라……. 그걸 전부 믿는?

글쎄, 믿는 편이야. 너는?

롤린스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성냥을 휙 던졌다. 글쎄, 믿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형이 불신자인 건 일찌감치 알아봤어요. 블레빈스가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쓸데없이 나불거려서 사고나 치지 마. -88쪽


경멸하던 자에게 도움을 빌어야만 하는 날도 오는 법이죠.

그딴 말은 어디서 들었니?

몰라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어요. -103쪽


롤린스는 칼을 주머니에 넣고는 모자에서 노팔 가시를 뽑았다. 잘생긴 말은 예쁜 여자나 마찬가지지. 쓸데없이 문제만 일으키거든. 남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제대로 된 것 하나면 돼.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나도 몰라. -125쪽


블레어 씨네에서 일하던 바케로(카우보이)들이 한 살짜리 암소 고기를 써는데, 어찌나 얇게 저미는지 고기가 다 투명하더라니깐. 길기는 또 어찌나 긴지. 고기를 불가 나뭇가지에 늘어놓은 것이 꼭 무슨 빨랫감처럼 보였어. 밤에 보면 뭔지 절대 모를 걸. 꼭 배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야. 바케로들이 밤새 고기를 뒤집고 불이 안 꺼지게 살피는데, 너도 그 광경을 봤어야 했어. 밤중에 자다 깨서 봤더니 바람 부는 초원 같은가 하면 또 뜨겁게 타오르는 화덕 같기도 한 것 있지. 피처럼 시뻘갰어. -127쪽


빗물에 모닥불이 치익대고 어둠 속에서 말들이 붉은 눈을 껌뻑이는 검은 밤이 끝나고 차가운 회색빛 아침이 왔지만 해는 한참 후에야 떠올랐다. -131쪽


그는 멕시코의 여러 사막에서 벌였던 전투 이야기와 타고 있던 말이 죽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말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을 그대로 잘 드러내며, 말 역시 전쟁을 사랑한다고 했다. 말이 인간과 생활하며 배우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애초에 영혼을 이해할 마음이 없다면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 보지 않은 이들 말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자기 아버지의 말이 틀렸기를 바라야겠지만, 사실 맞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그는 말의 영혼을 본 적이 있는데 끔찍하더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말은 특정한 조건에서 죽을 때에만 영혼이 나타나는데, 모든 말은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기에 말 한 마리가 별도의 영혼을 갖게 되면 대단히 무시무시해진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렇게 떨어져 나온 영혼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도 하였다.

그들은 모닥불 깊숙이에서 붉게 갈라지며 빛을 발하는 장작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이 데 로스 옴브레스? (사람의 영혼은요?)존 그래디가 물었다.

노인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했다. 마침내 대답하기를, 말과는 달리 사람은 결코 영혼을 공유하지 않으며,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롤린스가 서툰 스페인어로 말도 천국에 가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은 천국 같은 것이 필요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존 그래디가 지상에서 말이 모두 사라진다면 말의 공동 영혼도 새로 영혼을 나눠 줄 말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노인은 신이 그런 것을 허락할 리도 없는데 말이 사라지는 일 따위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고 대답했다. -158쪽


그녀는 그를 유심히 뜯어보았지만, 그 눈길에서 다정함이 묻어났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흉터를 얻게 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189쪽


그 애를 보면 그 나이 때의 내가 생각나. 때로는 나 자신의 과거와 싸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지. 어릴 적 난 참 불행해했어.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사소한 일을 가지고 불행해했구나 싶다네. (중략) 나한테는 조언을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네, 하긴 누가 조언을 한다 해도 내가 듣지도 않았을 테지만, 난 남자들의 세계에서 자랐네. 그래서 그 세계에서 잘 살 수 있으리라 착각했지. 그래도 그때 반항적으로 살았던 덕분에 다른 사람의 반항심을 아주 잘 알아볼 수 있게 되었네. 하지만 전통을 무너트려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설령 있었다 해도 날 무너뜨리려는 전통에만 한정되어 있었지. 우리를 구속하는 힘의 존재는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네. 전통과 권위는 이제 결점으로 전락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어. 조금도 말일세.(중략) 이상적인 세계에서야 게으름뱅이들의 수다가 아무런 영향도 미지지 못하겠지.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달라. 그것도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소문 때문에 피를 흘리는 일까지 일어난다네. 심지어 죽기도 하지. -191쪽

여자는 평판 하나에 죽고 살지.

알겠습니다.

용서라는 건 있을 수 없어.

네?

용서라는 건 있을 수 없네. 여자에겐 말이야. 남자야 명예를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지. -191쪽


시간과 육체를 훔치는 것이기에 더욱 달콤하였으며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기에 더욱 감미로웠다. -198쪽


우리 세대는 그들보다 훨씬 신중하다네. 우리들은 사람이 이성만으로 품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아.

그건 아주 프랑스적인 생각이지.

(중략)

온화한 기사를 조심하게, 이성보다 더한 괴물은 없거든.

그는 존 그래디에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당구대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이것은 스페인적인 생각이지. 자네도 알 걸세. 돈키호테답지 않은가. 하지만 세르반테스조차도 멕시코와 같은 나라는 상상도 못했을 걸세. -204쪽


상업 사회에서 존재하는 재정적 지위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물물교환을 밑받침하고 있는 것은 부패와 폭력이었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도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받았다. 그것은 바로 언제든지 기꺼이 누군가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252쪽

 

싸움은 어디서 배웠나?

존 그래디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고는 도로 의자에 기댔다.

뭐가 알고 싶으신 거죠?

세상이 알고 싶어 하는 것.

세상이야 내가 코호네(용기)가 있는지만 알면 그만이죠. 용감한지 말입니다.

페레스는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라이터를 탁자 위 담뱃갑에 포개 얹었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가느다랗게 내뿜었다.

그래야 네 가격을 정할 수 있으니까.

가격이 없는 사람도 있죠.

그래, 그렇지.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죠?

죽지.

죽는 것쯤은 두렵지 않아요.

그거 잘됐군 죽을 때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살 때는 별 도움이 안 되지. -267쪽


이 차는 녹색이군. 안에는 모터가 달려 있고, 하지만 타락할 수는 없어. 심지어 사람도 마찬가지야. 사람 안에 악한 면이 있을 수는 있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악이 아니야. 어디서 악을 구하겠나? 대체 무슨 수로 그게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나? 말도 안 되지. 멕시코에서 악은 실재하는 존재야. 제 발로 걸어다니지. 언젠가는 자네한테도 찾아올 거야. 아니 벌써 찾아왔는지도 모르지.

어쩌면요.

페레스는 미소 지었다. 가도 좋네. 내 말을 안 믿는군, 돈도 마찬가지지. 미국인들은 이게 항상 문제야. 그네들은 더러운 돈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지. 하지만 돈에는 더럽고 깨끗하고가 없어. 멕시코인들은 결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돈에 뭐 하러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겠나? 돈이 좋은 것이라면 그건 무조건 좋은 것이야. 나쁜 돈은 없어. 멕시코인들은 돈이 더러운지 깨끗한지 따위로 고민하지 않아. 그런 건 아주 비정상적인 생각이지.-269쪽


죄수들은 죽음이 다가오는지를 보기 위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에 죽음을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죽음이 어떤 빛깔로 오는지, 마침내 도달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277쪽


푸른 작업복의 왼쪽 주머니에 피어오른 붉은 꽃 위로 동맥의 시뻘건 피가 부채를 펼치듯 뿜어져 나왔다. -277쪽


난 평생 위험이 바로 코앞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위험에 빠질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위험이 항상 거기 있다는 느낌 말이야-287쪽


롤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들이 내 몸에 멕시코인 피를 넣었어.

그는 고개를 들었다. 존 그래디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성냥을 흔들어 꺼 재떨이에 던지고 롤린스를 바라보았다.

그랬군.

그게 무슨 의미겠니? 롤린스가 말했다.

의미라니?

내가 일부는 멕시코인이라는 거잖아?

존 그래디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담배 연기를 공기 중에 내뿜었다. 일부는 멕시코인이라고?

그래. 피를 얼마나 넣었는데?

1리터 좀 넘게 넣었대.

좀이 얼마야?

나도 몰라.

1리터 정도면 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롤린스가 그를 쳐다보았다. 말도 안 돼.

물론 말도 안 되지. 피는 그냥 피일 뿐이야. 어디서 온 피든 상관없어.(중략)

이제 어떡할래?

집에 가야지.

좋았어.


그는 그들과 함께 앉아 담배를 피우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존 그래디보다는 롤린스와 훨씬 가깝게 지냈던 만큼 롤린스에 대해 많이 염려하였다. 롤린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슬퍼하면서도, 조국을 떠나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라고 했다. 사람이 다른 나라가 아닌 그 나라에 태어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날씨와 계절이 땅을 형성하는 만큼이나 사람의 내적인 운명 역시도 형성하여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하기 때문에 그 운명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314쪽


스페인 사람의 심장에는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열망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유만을 향하고 있네. 온갖 진실과 명예를 한없이 사랑하지만 그 본질은 사랑하지 않아. 피를 뿌리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증명될 수 없다고 강하게 확신하지. 여자의 순결, 투우, 대장부, 심지어 신마저도 마찬가지네. -318쪽


난 그 애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결코 모를 거네. 운명이 있다 해도 우리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지. 운명이 처음부터 결정되는 것인지, 혹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을 짜 맞추어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우리는 모르잖나. 사실 우리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는 운명을 믿나?

네 믿습니다.

내 부친께서는 행위나 사건들을 연결하는 감각이 아주 뛰어나셨지. 나도 그 점을 닮았는지는 모르겠네. 자신이 내린 결정을 알 수 없는 힘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지만, 어떤 결정을 만들어 낸 것과는 아주 동떨어져 보이는 다른 이들의 결정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그 예로 동전 던지기를 드셨어. 애초에 동전은 그저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조폐국의 화폐 주조자가 쟁반에서 그 금속 덩어리를 집어 둘 중 하나의 방법을 택해 형틀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작업을 가하여 카라 이 크루스(앞면과 뒷면)를 만들어 낸 거야. 동전이 얼마나 여러 번, 이떻게 빙글빙들 돌더라도 앞면과 뒷면은 바뀌지 않아. 그러다 우리 차례가 오고, 그 차례가 지나가지.

그녀는 미소 지었다. 희미하게, 그리고 짧게.

어리석은 주장이야. 하지만 작업장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하찮은 일꾼은 계속해서 내 마음에 남아 있다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 집안을 지배하고 있다면 아첨을 하든 합리적으로 설득을 하든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동전 주조자는 그럴 수 없지. 얼룩진 안경을 쓴 침침한 눈으로 운명이 정해지지 않은 금속 덩어리들을 바라보겠지. 그리고 하나를 골라. 어쩌면 잠시 주저할 수도 있어. 그동안 알 수 없는 어느 세계의 운명은 어느 쪽으로도 결정되지 않은 채 유보되는 거지. 아버지는 이런 비유를 이용해 행위나 사건의 기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게 분명해. 하지만 나에게 세계는 언제나 꼭두각시 인형극에 다름없었어. 커튼 뒤로 고개를 들이밀어 줄을 올려다보면 또 다른 꼭두각시의 손을 발견하게 돼. 그 꼭두각시 역시 줄에 묶여 움직이지. 그렇게 계속 올라가 봐도 언제나 마찬가지야. 위대한 사람들의 폭력과 광기 어린 죽음을 연출한 꼭두각시의 줄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지. 그 줄은 자연의 파괴도 연출했다네. 멕시코가 예전에 어땠는지 아나? 멕시코의 과거 모습과 미래 모습을 말해주지. 자네의 장점으로 여겼던 것들이 마지막 순간 자네의 단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네도 깨닫게 될 걸세.-320쪽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순식간에 눈을 뜬다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그들이 대체 무엇을 깨닫는지는 전혀 모르겠네.- 321쪽


불운을 견뎌 낸 이들은 특출해지는 법이니 불운을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힘으로 여겨야지, 불운 때문에 움츠러들었다가는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쓰라림 속에 묻혀 버리게 되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모험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어.(중략)

나는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불구나 불행을 견딜 만한 영혼이 없다면 어덯게 가치 잇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자문했지.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가치가 불확실한 운에 좌우될 리가 없다고,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야. 오래지 않아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네. 용기는 언제나 지속되는 법이며. 겁쟁이가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야. 자기 자신을 버리게 되면 남들을 배신하는 것도 쉬워지지. -325쪽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용기를 발휘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어. 하지만 열망한다면 누구나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야. 열망 그 자체가 바로 용기이거든. 열망 그 자체가 말이야.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했어.

그래, 운도 영향을 미치지. -326쪽


우리는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 증오의 망령을 이겨 내느라 한평생을 불행하게 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

저는 결코 마님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증오하게 될 걸세

두고 보죠.

그래, 우리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 두고 보세.

운명을 안 믿으시는 줄 알았는데요.

그녀는 손을 저었다.

안 믿는다는 건 아니네. 운명에게 지배받기를 거부했을 뿐이지. 운명이 법이라면 운명 역시 그 법에 종속되어 있는 것 아니겠나? 인간은 어디에라도 책임을 지우기 마련이야. 그것이 본성이지. 우리는 작업대 쟁반에서 금속 덩어리를 하나씩 집어드는 안경 낀 동전 주조자와 같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어. 작업대 밖에는 어떤 혼돈도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서 빈틈없이 일에 몰두하지.-333쪽


겁에 질려서는 돈을 벌 수 없고, 적정에 눌려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341쪽


이 세계를 사랑함에도 이 세계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세계의 아름다움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심장은 끔찍한 희생을 바탕으로 뛰는 것이며 세계의 고통과 아름다움은 각자 지분을 나눠 가지는데, 끔찍한 적자로 허덕이는 와중에 단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피를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386쪽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388쪽


무엇인가를 너무 되씹다 보면 그것이 너를 먹어 버릴 수도 있다고- 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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