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스팅

[한기호의 다독다독] 한마디 말이 압도하는 세상 2012/03/28 16:43

by 아프로뒷태 2012. 3. 29.

[한기호의 다독다독] 한마디 말이 압도하는 세상 2012/03/28 16:43

 

 

[한기호의 다독다독] 한마디 말이 압도하는 세상



어느 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 ‘강의형 책’이 왜 이렇게 범람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베스트셀러 상위 10위권은 강의형 책이 휩쓸고 있습니다. 혜민 스님이 마음과 인생, 사랑과 관계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협상에 대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전설적인 와튼스쿨의 명강의를 정리했다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삶의 의미를 열정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 등 영화화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러네요. 아, 한 권 더 있습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 경제전문가 세 사람의 좌담으로 한국경제의 실상을 파헤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눈에 띄네요.

2004년 4월15일의 제17대 총선 일주일 뒤에 한 학자가 어느 일간지에 발표한 ‘글쓰기의 몰락’이라는 칼럼이 생각나네요. 그 분은 작고한 <혼불>의 최명희처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쓰듯” 쓴 글이나 <칼의 노래>의 김훈처럼 “연필을 꾹꾹 눌러 원고지에 글을” 쓰는 ‘진지한 글쓰기 문화’가 우리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고 개탄하셨지요.

그 분의 우려처럼 글이 아닌 말이 이 시대의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압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말짱’과 ‘얼짱’이 마치 지성의 상징인 양 행세하는 세상이 되게 만든 주범으로 텔레비전을 꼽았습니다. “텔레비전이야말로 지식인들을 구어체 수사와 상황적 순발력으로 조련시키는 최적 무대”라는 것이었지요.

“속이 빈 사람이 말 잘하고 속이 허한 사람이 말 많다”고 판단하신 그 분은 “명문(名文)과 미문(美文)이 사라지는 현상, 그리고 글쟁이가 줄어드는 추세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말이 범람하는 대신 글이 몰락하고 타락하는 현실이야말로 문명과 역사에 연관된 일종의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결론내리셨습니다.

지금 소설이 위기인 것은 맞네요. 베스트셀러의 절반쯤은 늘 소설이 채우곤 했는데 영화 원작소설 한 권이 달랑 올라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은 더 이상 주류문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블, 캐릭터 소설 등 과거에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것들이 주류문화로 올라선 것처럼 여겨집니다. 소설은 소설 자체의 힘만으로는 팔리지도 않습니다. 소설이 팔리려면 적어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정도는 붙어 있어야 합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40개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는 ‘이야기’라도 있든가요.

영상이 세상을 압도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영상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잠드는 순간까지도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일상화하는 ‘호모스마트쿠스’가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검색’이나 ‘놀이’로 즉각 해결해버립니다.

문자 발명 이후 언문일치가 일반화되었던 시대의 표준어 개념이나 객관적 명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상시대의 구어가 갖는 생동감, 상황적응성, 주관적 표현이 지닌 친근감이나 대면(對面)성이 활개를 치는 세상입니다.

17대 총선 국면에서 구어가 갖는 장점을 최대로 보여준 것은 바로 ‘노회찬식 어법’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썩은 정치판을 이제 바꿔야 합니다.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서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립니다”는 등 풍자와 해학이 넘쳤던 노회찬 어법은 텔레비전 토론에서 유권자를 압도했습니다. 덕분에 사상 최초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민주노동당은 13.0%의 정당투표 득표율로 비례대표만 무려 8석을 얻었습니다. 지역구 2석까지 차지한 민주노동당은 새천년민주당까지 제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원내 제3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습니다. 새누리당은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를 하겠다는 27세 여성 손수조를 당의 참신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내세웠습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공동대표가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야권연대의 틀을 완전히 뒤바꾸었습니다. 이처럼 한마디 말에 죽고 사는 일이 앞으로 비일비재하게 등장할 것입니다.

2004년 즈음에는 문자시대에 억눌려 주변부에서 배회하던 구어체가 힘을 얻어 문어체와 동격의 수준으로 올라서고자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어체의 분출하는 에너지가 세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성’(유토피아, 시스템, 프로그램)이 아닌 ‘영상’(정서와 환상)이 매혹의 패러다임으로 올라선 세상입니다. ‘법’이 아닌 ‘의견’에 복종하고, ‘의식’(아니무스)이 아닌 ‘몸’(감각)이 주체성을 형성하는 시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머리’(이성)보다 ‘몸과 마음’(감성)을 움직여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트렌드)도 잘 타야 하겠지요. ‘읽을 수 있는 것’(근거, 논리적 진리)보다 ‘볼 수 있는 것’(사건, 그럴 듯한 것)이 상징적 권위를 갖는 세상이니까요. 어떻습니까? 대중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한마디 말이 품은 이야기로 천하를 움켜쥐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수십만 마리의 구제역 소가 땅에 파묻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워낭소리> 늙은 소 한 마리의 죽음에는 모두가 흐느끼는 세상에,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이(변별)를 드러내는 한마디 말로 말입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경향 / 2012-03-26 21:24:0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