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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차창룡 시인이 지나간 자리, 시인의 언어와 소설의 언어

by 아프로뒷태 2010. 10. 10.

차창룡 시인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문학과 사회》에 시로, 1994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미리 이별을 노래하다』,『나무 물고기』,『고시원은 괜찮아요』, 인도 기행 산문집 『이도 신화 기행』등이 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중앙대, 추계예대, 경기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님의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봄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선생님께서 교직을 놓으시고 출가하셨대."

 

                    짙은 어둠과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뭔가 무언의 신뢰와 믿음 그리고 의지를 잃어버린듯 했다. 나는 선생님과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선생님과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의 시로써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시인의 언어는 소설가의 언어와 달라서 그 정신이 소설가와 비교할 수 없이 고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소설가의 언어는 세태의 언어지만 시인의 언어는 이 세계에서 잃지 않아야할 정신을 가다듬어 주는 언어이다. 정돈된 말의 언어이다. 그 언어를 나는 선생님의 작품집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 선생님은 진정 시인이시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시집 중 가장 좋아했던 것은 《나무 물고기》이다. 그 시집에선 리얼리즘도 이상적인 이데아도 아닌 그 이상의 정신이 담겨있다. 그 시집을 읽고 나는 학부시절 하나의 단편소설을 썼으며 창작자가 또다른 창작자에게 감화를 주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항상 말을 아꼈다.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느꼈으므로.

 

                     올해의 봄, 소식을 접했을 때, 합천 해인사에 계신다고 하였다. 멀리 계셨기에 시인에게 향한 나의 발걸음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폭풍같은 날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나는 그것을 수습하기에 아직 어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올 가을, 서울에 계신다 하셨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시인에게 향했다. 시인이 계신 곳은 도심속의 절이었다. 시인은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승복을 입고 있었다. 배움의 길에 있노라고 하셨다. 신도 이전에 학생이라고 하셨다. 시인의 말씀 하나하나 새겨 들으며 나는 혹여 시인의 언어를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할까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이다. 시인의 말씀이 와 닿는다. 시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시인 이전에 승자로서 나타난 사람.

                    여느 사람에겐 승려이겠지만 나에겐 시인이다.

                    그가 종교인이 되었다 하여 20년의 문학적 결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이 세상의 던져버림으로써 인간의 탐구와 내면 연구를 위해

                    이번 선택을 하나의 무대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더 빛나는 글로써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시지. 남들처럼만 살라고."

                

                     시인이 말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말 그 차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말의 의미를 곱씹어서 어렵게 느껴진다.

                     남들처럼만 살기 힘든 인생이 문학을 선택한 댓가 아니었던가.

                     예술을 선택한 댓가 아니었던가.

                     남들처럼 살기 힘들었기에 모두들 떠나갔다.

                     빈 자리에 홀로 남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길에는 오직 글을 쓰는 일이 있다.

 

                     시인이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시집 한 권이 담긴 노란 봉투를 건넨다.

                     나는 시집을 마주하면서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나는 시집에 담긴 고독과 슬픔과 버림받음과 서러움을 읽기도 전에 알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와 타자의 유혹과 시선 속에서 시인의 이야기를 담고 돌아섰다.

                    

                     시인이 나에게 말을 한다.         

 

 

 

 

 

 

시인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가 가진 내공의 힘으로 다른 세계에 들러 다시 시인의 언어로 돌아올 것이다.

 

 

 

시인이 지나간 자리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poem/3745

 

 

 

 

 

 

 

 

 

 

 

《벼랑 위의 사랑》 중에서

 

  제1부

이제는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양

 

한 번도 가까워진 적 없는 사랑이 있다

매일 한 번씩 캄캄해지는 사랑이 있다

 

 

 

 

 

 

죽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내 손은 나도 몰래 죽은 나무를 만지고 있었다

죽은 나무는 여인의 몸처럼 부드러웟으나

내 손이 닿자마자 앗 소롯해지는 것이었다

그녀의 몸속에서는 예쁜 벌레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은밀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죽은 나무가 죽은 채로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이파리와 꽃과 열매와 헤어졌다 해도

 

죽은 나무는 온종일 서서 기다리다 죽은 나무는

기다림이 벌레로 태어나 나비가 될 때까지

내가 죽어도 당신을 잊을 수 없음을 알 때까지

 

죽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었다

새가 나무를 잠시 떠났다 해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한

나무의 살 속에서 기다림이 낳은 벌레를 꺼내 먹는 한

 

 

 

 

 

 

부드러운 가시

 

 

미리 이별을 노래했지만

목이 쉬었을 뿐

 

그대와 왔던 길은 꿈이었고

우리 가는 길에는 꿈이 없네

 

건더기만 둥둥 떠 있는 하늘의 국물에

나는 눈물 한 방울 떨구어

하늘을 바다로 만든다

 

어디로 갈 줄 모르는 한 척의 배 위에

그대가 선물한 선인장 귀면각군생

 

제 몸을 뚫고 나온 여린 가시가

단단해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당신도 단단해질 거야

 

부드러운 솜털을 쓰다듬어도

내 손바닥에선 피가 난다.

 

 

 

 

 

벼랑 위의 사랑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주거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도 아름다워, 야윈 상록수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너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

으니,

 

일촉즉발의 사랑이어라, 세상은 온통 양귀비의 향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신과 나는 벼랑에서 떨어졌고,

세상은 우리를 받쳐 주지 않았다. 피가 튀는 사랑이여,

계곡은 태양이 끓는 용광로, 사랑은 그래도 녹지 않았구나.

 

버릇처럼 벼랑 위로 돌아왔지만, 벼랑이란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법,

평생 벼랑에서 살 수는 없어, 당신은 내 마음을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이의 힘은 붙잡을수록 세지는 법인지.

 

모든 사랑은 벼랑에서 끝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마음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는

것들아,

벼랑은 암시랑토 않다는 표정으로 다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비가 땅의 배를 줄기차게 두드리자

땅은 드디어 어여쁜 새끼를 낳았다

비야말로 신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어둠을 배경으로 낡은 그림을 그린 번개는

 

벼락으로 신의 힘을 보여 주었다

무섭고도 고마운 신이여 잘못했습니다

천둥의 꾸지람이 밤새 그치지 않았지만

지붕을 두들기는 당신의 노래가 얼마나 황홀했던지

 

한숨도 못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강물의 멱살을 붙잡고 당신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가 사실 피였음을 알

았으며

신이 곧 악마라는 슬픈 진실을 확인하고 말았다

 

신도 악마도 고맙고도 두려운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피는 세상을 물들이며 해독할 수 없는 괴성으로 말한다

신을 믿는 것은 곧 악마를 믿는 것

땅은 드디어 괴상한 새끼를 낳았다 신의 아이를

 

 

 

 

 

 

바다로 흘러가 버리던 당신의 사랑이

오늘 이렇게 소복히 쌓여 있으니

세상 곳곳이 당신의 몸이어서 황홀함 한량없지만

차마 당신의 몸 밟고 갈 수 없음이여

 

빗자루로 당신의 몸 쓸어 한쪽으로 치우며

사랑은 결국 아픔임을 확인하고야 뼈저리다

바다로 흘러가 버린 당신의 전생이

전생이 아니라 생생한 현생임을 알알이 만지면서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새하얗게 증명해야 했던가

미처 쓸지 못한 당신의 몸은 사람의 발에 밟혀

반들반들한 미끌미끌한 투명해지는 얼음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견고하게 증명해야 했던가

 

알 수 없다는 나의 표정이 당신의 얼굴에 비칠 때

당신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듯 땅 위에 쌓였지만 끝내는

눈물을 데불고 바다로 흘러가는 사랑이여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간다

 

간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커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

 

시간은

어린 짐승이 크는 것을 바라보는 것

다 큰 짐승이

작아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

 

시간만큼 무거운 것은 없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여서

시간을 들고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본이다

 

길 아닌 길을 지우며 우리는

오늘도 간다

 

 

 

 

 

바다는 피가 뼈다 살이다

 

우리는 모두 바다였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플랑크톤이었

을 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이었을 때 바다는 둥글고 끝이 없

었고 슬펐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았고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바

다였으나

나는 어느 날 어머니의 자궁에서 기어 나왔다 바다를

탈출한 것이었다

 

그것은 숙명이었다 안에 있던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오

는 것

자갈을 주워 바다 가운데 던져도 해변에는 무수한 자갈

들이 밀려 나와

바닷물을 막고 있었다 안심이다 어느 선은 절대 넘지 않

는 바다가

보길도 예송리 해수욕장의 민박집으로 곧 뛰어들 것 같

았으나

 

그것은 사랑이었어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세상의 처

음인 바다처럼

당신은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쉬지 않고 그리움이

었어라

당신 가슴에서 젖이 흐르고 사타구니에선 끊임없이 꿀

이 솟아나는 건

 

당신 몸에서 신이 태어나고 사람이 태어나고 감로수가

태어나기 때문

산과 들이 있고 하늘이 있고 달이 있고 해가 있는 바다

에 입술을 대고

나는 당신의 피를 마신다 그것은 당신의 뼈요 살이다

 

 

 

 

 

야무나

 

신이 신을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개와 가마우지가 뒤지는 시체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아름다이 꿈을 꾸누나

풀과 나무와 더불어 인간의 운명을 토론하면서

바람은 몸 없는 신의 모습을 그리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은 이미 신들의 일이지만

신도 인간의 자식에게 아비를 죽일 권리를 부여하니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자한을 죽이고 천하를 얻은 후

신이 되려다 그만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아그라 성과 타지마할 사이에 화장터가 있다

 

그것은 어떤 비극도 괜찮다는 뜻이다

장례식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

연기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하늘로 오르지만

재는 한사코 검은 강물 속으로 파고드누나

붉은 아그라 성과 하얀 타지마할 사이에 나룻배 한 척

촛불을 싣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갈 때

 

신이 신을 버리니 슬픔의 강이 되었어라

신이 신을 버리니 비로소 신이 되었어라

신으로서는 용서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의 반란

바람은 모든 생명체가 추악한 꿈을 꾸는 동안

소와 돼지와 더불어 몸 없는 인간의 운명을 토론한다

 

 

 

 

 

나의 꿈

-또는 윌리엄 허셜*의 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머나먼 별에서 왔습니다

나의 꿈이 온 길을 거슬러

하늘의 강 하늘의 바다를

뗏목을 타고 건너갑니다

뱃사공은 묻습니다

당신의 목적지는 대체 어디오

나의 목적지는 나의 꿈

귀뚜라미 노래 들려오는 별

사공은 또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요

당신의 꿈을 향해 가면 되어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곳으로

나의 꿈은 가면 거기 있소

당신의 꿈이 간 바로 그곳이

나의 꿈이 온 바로 그곳

나의 쉼터 나의 음악 나의 일터

사공과 나는 망원경 노를 저어

하늘의 파도를 헤쳐 갑니다

망원경이여 조금만 더 오르자꾸나

저 하늘의 언억에 너의 꿈이 있으니

악마가 넌지시 바라보는 곳에서

나의 꿈은 망원경의 지휘에 따라

우주에서 가장 황홀한 춤을 춥니다

*1781년 천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많은 곡을 작곡한 음악가였으나 중년 이후 천문학에 뜻을 두고 은하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여 천문학 발달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온수시방 溫水詩房

 

오래된 동네가 좋아

흑석동에 정착하면서

내 방을 온수시방이라 이름 했다

 

온수는 나의 고향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이름은 온수

 

흑석동 나의 집은 언제나

따뜨소한 물이 나오니

그 이름 온수시방

 

시를 쓰면서 시방 나는

없는 고향을 찾았다

이름이라도 온수

 

 

 

 

 

이제는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비가 와도 우산 없다 걱정하지 말자

이 세상에 완벽한 준비란 없다

몇 줌 흙으로도 시퍼런 바위틈 소나무를 보라

아파트 장만할 때까지 혼인을 미루지 말자

 

바람이 아직도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간

영원히 촛불을 켤 수 없다

촛불을 켤 수 없다면 어둠 속에 몸을 섞자

 

바다에선 태풍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지만

하늘에선 벼락이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고 있지만

그래 봤자 인간에게 닥치는 최고 재난은 죽음

죽음 따위가 두려웠다면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리

 

불행의 칼날이여 내 창자를 끊어 보아라

인간의 갈망을 죽이는 데 성공한 자는 없다

창자를 꽃목걸이처럼 목에다 걸고도

이제는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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