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향기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by 아프로뒷태 2010. 9. 5.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양심, 인간에 대한 예의, 정열, 인간의 한계, 깊은 심연, 정의로움 등등 인간이 세계에서 활동한 이래 이루어온 거대한 역사를 생각했다. ‘조르바를 알고 나면 인간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인간은 살아있는 철학서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 곱씹을 수록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고려원

 

 

 

                    산다는 게 징역살이지. 카라기오지스 극장에서 개똥철학 나부랭이를 주워들은 텁석부리가 말했다. 암, 징역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나는 검은 배와 그림자와 비와 형상을 갖춘 내 슬픔을 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비와 우울증이 습기로 젖은 대기 위에서 내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화했다.

 

                   고독이야 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니깐. 그러나 그 비 오던 새벽에 나는 친구를 떠날 수 없었다. …둥글고 앳된 얼굴, 이지적이고 오만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가락이 가늘고 긴 귀족적인 그의 손

 

                   구해 주지 말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고 …그럼 구해야지. 자네는 설교에만 소질이 잇는 건가. 왜 나랑 같이 가지 않는거야?

 

                   고통은 꿈이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촌놈이나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올라가 연기에 가담하는 듯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친구가 일어섰다. 배가 세 번째로 고동을 울렸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고 헛소리로 감정을 가렸다. 오르브아-책벌레야.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게 창피한 노릇인 줄은 그 친구도 알았다. 눈물, 말, 막되어먹은 몸짓, 흔한 우정의 표현이 그에게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니었다. 서로를 좋아했던 우리들은 다정한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우리는 짐승처럼 놀며 서로를 할퀴었다. 친구는 이지적이고 냉소적인 문명인이었고 나는 야만이이었다. 그는 자기를 억제할 방법을 터득하여 감정을 미소로 산뜻하게 표현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수다와 야만인의 웃음을 내비칠 뿐이었지만. 나역시 거친 말로 내 감정을 감추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창피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창피했던 것은 아니지만 산뜻하게 해내지 못했다.

 

                   나는 긴 문장으로 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시 대답했다. 나는 내 목소리를 조절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그는 두세 번 눈을 깜빡거리다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내 불안과 우리가 흔히 쓰던 무기-폭소와 미소, 혹은 농담-를 망설이고 있는 내 태도를 이해했다.

 

                   놀이쯤으로 생각해 버리자는 거야 친구는 하려던 위험한 말에다 뚜껑을 뒤집어 씌었다.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음의 위기에 몰리거든 상대에게 생각을 집중시켜 어디에 있든지 서로 그 위험을 알게 하자는 …뭐 그런거야. 좋지? 그는 웃으려고 했지만 입술은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흡사 얼어붙은 듯이

좋아 내가 대답했다. 자기 감정을 너무 명백하게 노출시켜 버렸나 싶었던지 내 친구는 서둘러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란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던 내가 어쩌자고 책나부랑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잇게 해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속이 후련했다. 내 병통을 알았으니 이제는 쉽게 정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호한 것도 비물질적 대상도 아니게 된 셈이었다. 이름과 형태를 알게 되었으니 싸우기가 수월해진 셈이었다. 그의 표정이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 것이었다. 나는 내 우너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았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테다.

마침내 나는 준비를 끝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원고 나부랭이를 뒤지다 미완성 원고를 발견했다. 나는 그 원고를 집어 읽으며 망설였다.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로 느껴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여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놈을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원고 뭉치를 들고 망설이던 나는 문득 허공중에서 내 친구의 웃음을 의식했다. 냉소와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무슨 생각하십니까? 그가 큰 머리통을 내저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닙니까?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요. 자 젊은 친구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인데 대체 모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 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지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무엇이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돼 산투리를 켜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에요. 마누라가 한 마디로 될 것을 잔소리로 늘어놓는다면 무슨 기분으로 산투리를 켜겠소.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빽빽거리는데 산투리를 어떻게 켜? 산투리를 켜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리에 쏟아야 해. 알아듣겠소?

 

                       그렇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ㅎ산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짐승에게 자유가 있어야 해요.

 

                         시덥잖은 소리 하고 자빠졋네 그가 빈정거렸다. 자식들 창피한 줄도 모르는 모양이야

시덥잖은 소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조르바? 무슨뜻이냐 하니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타고 있는 여자들의 얼굴은 레몬보다 더 샛노래졌다. 그들은 이미 무기-화장, 보디스, 헤어핀, 빗-를 버린 지 오래였다. 입술은 파리하고 손톱은 퍼렇게 멍들고 있었다. 늙은 수다장이들은 빌어서 치장한 장신구-리본, 가짜 눈썹, 얼굴에다 찍어 붙인 점, 브래지어-를 모조리 포기한 셈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토하기 직전인 그들의 모습에서 역겨움과 함께 연민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았다.

 

                          조르바의 얼굴도 노래지고 있었다. 빛나던 눈빛도 흐리멍텅해졌다. 그의 눈빛이 다시 돌아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는 배를 따라오며 물 위로 떠오르는 돌고래 두 마리를 가리켰다.

돌고래요! 그가 기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왼손 집게 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나간 걸 알았다. 나는 그쪽으로 갔지만 속이 역겨웠다.

 

손가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조르바? 내가 소리쳤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가 대답했다. 돌고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기계 만지다 잘렸소? 그의 기분을 모른 체하며 내가 물었다.

뭘 안다고 기계 어쩌구 하시오? 내 손으로 잘랐소.

당신 손으로, 왜요?

당신은 모를 거외다. 두목. 그가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말했다.

안 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덩이가 동그렇게 되는 겁니다. 흡사 당신의 이런 말을 알아들을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랩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요

그는 바다를 잊은지 오래였다, 그는 더 이상 레몬을 깨물고 있지 않았다. 눈빛이 다시 빛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요? 내가 물었다. 손가락이 어떻게 되었느냐니까?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걸리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날 손도끼를 들어…

아프지 않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는 아니오. 나도 사람입니다. 물론 아팠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걸리적거리며 신경을 돋구었어요. 그래서 잘라 버렸지요.

해가 빠지며서 바다는 조용해졌다, 구름도 사라졌다. 밤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를 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를 들어 내려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내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건 좀 심한데요, 조르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성인전집의 금욕주의자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여자를 보고 육욕의 갈등이 견디기 어렵자 이 양반은 도끼를 들어…

참 병신 같은 친구도 다 있네 조르바는 나의 다음 말을 짐작하고 소리쳤다. 그걸 자르다니! 그런 병신은 지옥에나 가야지. 그것 참 순진하고도 깜깜한 친굴세. 그건 장애물이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우겼다, 아주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뭐하는데?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데 조르바가 곁눈질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답답한 양반아. 그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걸 왜 모르셔?

그는 고개를 들어 내세의 삶, 천구, 여자, 성직자 따위의 생각이 복잡하게 오고가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 심중을 별로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커다란 잿빛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병신은 천국에 못 들어가.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두목은 배고파 본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당신 머리는 순진하고 살갗은 햇빛에 타 보지 않았어요. 그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 나쁜 짓이라고 부르는 것도 세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세상은 수수께끼, 인간이란 야만스러운 짐승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수이면서도 신이기도 하지요.

 

                     자유라는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 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가?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만으로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 속으로 묻힐 수 있을꼬?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꼬. 언제면 오 언제면?

 

                        냄새가 나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냄새를 따라가 봤더니 두 사람이 꼭 부둥켜 안고 이 나무 밑에서 썪어가고 있었다지 않아요. 아셨죠. 냄새를 따라가서 찾았다지 뭐에요.

 

                          내 마음에 이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산문은 필요한 모든 것을 극히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여기엔 경박한 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었다. 표현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것이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잇엇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의 앞에 잇는 것은 쪼글쪼글하게 늙고 화장이 천박한 늙은 여자가 아니라 그가 입버릇처럼 여자를 부를 때 쓰는 <암컷>이엇다. 인격으로서의 여자는 사라지고 젊든 늙든 아름답든 추하든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불과했다. 용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빨래하느라 터져 버린 손

 

                            담배에 대한 자네 사랑은 고작 1분간이야. 창피한 노릇이지. 파이프로 피는 게 좋은 걸세. 충실한 마누라 같거든. 자네가 집에 가면 거기 조용히 자넬 기다리고 있네 거기 불을 붙이고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 내 생각이 날 걸세.

 

                            그 여자는 어쨌든 여자 아닌가요? 연악하고 토라지길 잘하는 물건이에요. 내가 뒤에 남아 위로했기에 망정이지. … 내 경험에 의하면 여자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렷다시피 여자란 건강에 해롭고 토라지기 잘하는 동물입지요 누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하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자는 당신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신이 여자에게 입맛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싫다고 할 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해요.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깐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해요.

 

                              할마시..…자라처럼 식식거리면서 그 말라 비틀어진 손으로 나를 붙잡으려고 합니다.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은 책임감도 있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목 이빨간 물이 대체 뭐요? 말해 봐요 늙은 가지에 새 가지가 뻗으면 처음엔 아무것도 없지요 그리고 거기 처음에 달리는 건 쓰디쓴 열매뿐이지요.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이 열매를 익히면 마침내 꿀처럼 달콤한 물건이 되지요. 이게 포도라고 하는 겁니다.

 

                               두목 인부들 신상을 자꾸 캐묻지 말아요 조르바는 역정을 내곤했다, 곱상하게 굴다가 오히려 발목을 잡혀요. 두목이 그렇게 다독거리면 인부들 자신이나 우리 일에 해가 됩니다. 무슨 짓을 해도 당신은 핑계를 만들어 주는 꼴이에요. 그렇게 되면 하느님 맙소사. 인부들은 일을 제멋대로 하다 결국은 망쳐 버려요. 하느님은 인부들도 굽어살피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두목이 세게 나오면 인부들도 두목을 존경하고 일도 잘합니다. 두목이 물렁하게 나오면 인부들은 몽땅 두목에게 밀어 버리고 나 몰라라 한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어느날 일을 끝내고 온 조르바는 곡괭이를 오두막에다 집어던지며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조르바의 긴 팔은 이 친절한 여자의 젖가슴을 더듬어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밤이 되면 우리는 우리 해변의 생활 터전으로 되돌아왔다. 인생이란 오르땅스 부인처럼 단순하고 살아볼 만하 ㄴ것이며 진부하지만 느긋하고 너그러운 것인 듯 했다.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거요,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니깐.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인간이란 짐승입니다. 단장으로 자갈을 후려치며 그가 말했다.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입니다. 주인님은 이걸 알지 못합니다. 당신에겐 모든 게 너무 쉬웠던 모양인데, 내게 물어봐요! 짐승리고 대답할 게요. 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합니다.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겁니다.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 따위 소릴랑 하면 안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죽게 할 거요. 두목 좋은 걸 다 걸고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만일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그들 현재의 암흑보다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가를 알지 못햇다.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이다.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고 그 머리는 오염된 일이 없다. 그는 온각 것을 다 경험했다. 그의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잔뜩 부펄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도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음습한 땅 속의 두더리처럼 구형의 머릿속에 갇힌 채 내 두뇌는 쉬고 있었다. 나는 대지의 속삭임과 입놀림 그리고 미동까지 놓지지 않고 감청할 수 있었고 비가 내리면서 씨앗이 불어 터지는 소리도 들 을 수 있었다.

 

                                 조용히 일렁거리는 파도는 흡사 덜 익은 젖가슴 같았다. 저녁이 되면 바다는 한숨을 쉬며 장밋빛이 되었다가 자줒빛, 포도주빛, 그리고는 짙푸른 색깔로 변하는 것이엇다.

오후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손은, 우리의 인생이 새어나가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모래 시계였다. 손 그 자체도 사라져갔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르바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순간은 관자놀이가 뻐근하도록 행복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에요. 기껏해야 어기적 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이를 악문 그는 불가능을 성취하려고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조르바! 조르바!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하면 됐어요! 나는 그의 늙은 육신이 그 난폭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서 수천 조각으로 찢어져 바람에 사방으로 날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내 고함 소리가 무슨 소용 있으랴! 조르바에게 어떻게 지상에서 지르는 내 고함 소리가 들릴 수 있으랴! 그의 오장육부는 새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늙은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수작을 두어 가지 알고 있답니다. 눈을 감으면 스무 살짜리 계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말지요. 맹세코 말하지만 불 끄고 그짓 할 때 저 늙은 것은 영락없는 스무살이에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