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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어느날 누군가에게 소설 한 권을 선물 받았다.

by 아프로뒷태 2010. 8. 27.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일을 마치고 충무로 2번출구에 스타벅스로 발길을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책 한권을 건네 받았다. 잘 읽힌다는 말한마디에, 읽어보았다. 그야말로 잘 읽혔다. 잘 읽힌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새로움으로 마음의 영혼을 움직이거나 충동을 구할 수 없었다. 그저 잘 읽힐 뿐이고 삼각구도의 인물관계에서 여행구조를 통한 사랑이야기와 역사 이야기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 특징으로 남는다. 

 

                   " 내가 당신의 노래를 사랑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당신, 내 곁을 맴돌 수 있나요? 나를 배려할 생각이 있다면, 제발 다시는 찾지 말아줘요."

 

                   " 사람이란 말이야, 말로 납득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말은 그냥 입에서 발설되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불확실한 것 아니야? 나는 적어도 당신의 분빛과 살의 뜨거움과 표정만으로도, 당신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겠어. 정작 내가 궁금한 건 왜 당신이 마음에도 없는 그런 말들을 가끔씩 발작하듯 뱉어내느냐는 거야. 나에게 숨기는 거라도 있는 건가?"

 

                   " 사랑이 무엇이건, 마음이 무엇이건, 내가 당신을 파멸시킨다 해도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 있겠어요?"

 

                   달빛이 광활한 갯벌에 부딪히고 있었다. 갯벌에 반사된 달빛과 선화의 머리칼에 각광처럼 쏟아지는 하늘의 조명이 바위에 앉은 그녀를 검은 실루엣의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먼 갯벌 쪽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검은 조형물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 당신을 포함한 대다수 남자들이 착각하고 사는 게 뭔지 아세요? 당신네들은 사랑과 욕정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해요. 물론 서로 조금씩 섞여 있겠지요. 하지만 욕정이 앞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록처럼 스며 나오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고상한 분비물일 거예요. 내 어머니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여인일 겁니다. 불행한 일이죠. 차라리 바보 같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순정이 순정으로 대접받아서 그저 순하게 한 남자와 더불어 생을 마쳤더라면, 그까짓 사랑과 욕정 따위를 구별해 내재 않고서도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흥분했던 모양이다. 물론 내 욕망을 찬찬히 살펴보면 선화의 분석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어떻게 명백히 분리돼서 나타날 수 있는가. 선화가 거는 시비는 분명히 다른 어떤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테다. 내가 흥분하지 않았다면 그 까닭을 알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대화는 파국으로 이어져 갔다.

 

                  " 그래? 당신도 당신 어머니처럼 그 사랑이라는 것과 욕정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말이지? 나에게선 욕정이 더 도드라져 보인단 말이고? 그런데도 결국 나에게 다시 온 이유가 뭐지? 당신도 나를 원한 것 아니야? 설마 내 가슴에 이런 식으로 못을 박기 위해서 온 건가? 

 

 

                   노래 부르는 사람은 환상 속에서 일상을 보고, 일상 속에서 환상을 생각한다. 그는 그 경계에서 산다.

  

                   그 경계의 삶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때. 경계를 버틸 만한 에너지가 고갈됐을 때.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한다. 일상으로 내려설 것인가 아니면 환상으로 영원히 탈출할 것인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 한, 땅에서 발을 떼고 허공을 밟으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피하다. 노래를 잃어버린 사람이 일상을 선택하지 않는 한, 그는 탈출구는 없다. 만약 그 일상을 견디어 낼 수 없다면 남은 유일한 방법을사라지는 것뿐이다. p244

 

 

                     연우와 선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실패한 오디세우스와 세이런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선화가 스스로 태평양에 뛰어 들었다면 실패한 세이렌의 전철을 밟은 셈이고, 연우가 그날 그 해변에서 선화의 해긂 소리를 듣고도 살아남았다면 성공한 오디세우스였을 테지만, 소식이 끊어진 걸로 보아 세이렌의 목적은 성취된 것인지도 모른다.  p267

 

                     하나의 텍스트에서 여러 텍스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글쓴이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이다. 작가는 신화 <오딧세우스>를 연우로 비유한다. 그리하여 오딧세우스의 모험이야기를 연우의 인생에 에 비유하여 서사를 풀어나간다. 작품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이다.

 

                     승미와 연우는 부부이다. 부부가 처음부터 이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 전자의 의미에서는 그들이 늙어서도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이고, 후자의 의미에서는 자식이나 사회적 책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부라는 틀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다. 승미와 연우는 사랑했으나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래서 연우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를 찾아 떠난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오딧세우스처럼 말이다. 연우는 선화와 대학시절 노래패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해금을 곱게 켜는 선화를 연우는 늙어서도 잊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는 연우의 부인 승미와 승미를 사랑했던 나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어느날, 신문사 문화부 취재기자인 나를 승미가 찾아온다. 연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며 불안해하는 승미는 나에게 연우를 꼭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나는 며칠전 연우의 일기를 우편으로 받은 상태였다. 연우의 일기에 대해 승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승미와 함께 연우의 발자취를 쫓아간다.

 

                     그 발자취의 정점에 연우가 선화를 찾아 칠레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문화부 기자로서 특집취재를 핑계삼아 칠레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칠레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승미와 함께 연우와 선화를 찾는다. 나는 승미와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삶을 회고하며 민족음악가, 비올레타 파라의 행적과 그 역사를 돌아본다. 노래하는 이의 즉, 가객의 운명과 연우와 선화의 삶을 비유하며 우리네 인생을 음악에 비유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들은 없다. 고로 아무도 모른다. 연우와 승미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이 바다속으로 뛰어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들의 삶은 신화 <오딧세우스>의 모험처럼 아직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지도, 거친바다를 항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딧세우스의 모험이야기처럼, 반인반어의 세이렌의 운명처럼, 그들은 여전히 여행의 길목에서 떠돌고 있는지도.....

 

                      이 작품은 역순행구조와 현재 진행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신화의 요소를 가미하며 사랑과 역사의 이야기를 담아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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