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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금력에 의한 표현 자유 침해다”

by 아프로뒷태 2012. 1. 15.

[문화]문화산업의 그늘, 작가 전속계약 2012 01/17주간경향 959호

ㆍ대형 출판사·화랑, 계약위반 압력 넣으며 작품 창작권 침해

지난 연말 출판사 ㈜대교가 작가 김진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8억원이라는 초유손해배상액도 화제이지만 언론 보도 이후 양측이 주장하는 내용에 몇 가지 흥미를 끌 만한 내용들이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밝힌 바에 따르면 소송은 “출판계약 체결과 함께 미리 지급한 인세 4억원과 전속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 등 모두 8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양측은 3권의 책을 내기로 하고 모두 6억원의 선인세를 주고받았다. 선인세란 출판사에서 향후 발생할 인세를 작가에게 미리 지급하는 일종의 계약금인 셈이다. 그러나 대교에서 출간한 김진명 작가의 책은 ‘나비야 청산가자’ 한 종뿐이고, 이 책의 인세로 약 2억원 정도를 상계했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진명 | 김세구 기자


출판계에서는 이 거액의 선인세 자체가 통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작가의 인세는 책 정가의 10%. 6억원의 인세라면 1만원짜리 책 60만권이 팔려야 가능한 액수다. 출판시장의 규모와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어지간한 확신과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계약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교측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 당시 출판사 상황이 의욕적이었다고 한다. 학습지와 아동도서류 시장의 강자였던 대교에서 독일 베텔스만과 합자하여 대교베텔스만을 만들었고 국내 출판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 일환으로 밀리언셀러 작가와 거액의 계약을 했다는 설명이다. 김진명 작가의 최근작인 역사소설 ‘고구려’ 1, 2, 3권이 약 50만부가 팔린 것을 감안하면 작가를 붙들기 위해 파격적으로 투자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명박 후보 비판 삭제 놓고 갈등
최초 계약이 제기된 2005년만 해도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는 그지없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진명 작가는 당시 취재차 미국에 체류하던 중 병으로 쓰러졌다. 극도로 나빠진
건강 때문에 집필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출판사에 계약금을 돌려받거나 기다려달라는 통보를 하였는데, 출판 실무자들의 배려로 완성된 원고가 ‘나비야 청산가자’였다. 여기까지는 양측의 주장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원고가 나온 시점이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07년이었고 내용 중 당시 유력했던 이명박 후보를 비판하는 문장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원고 내용은 이렇다. “부동산 투기는 아무 대항할 힘이 없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행위로 오히려 살인보다 나쁘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명박씨가 전 재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는 점, 십수 회나
이사를 다닌 점, 악질적 투기의 대표 사례인 서초동 꽃마을에 땅을 가지고 있었던 점, 도곡동 땅을 사고 판 행위는 문제가 많다.” 출판사에서는 대통령이 될 사람을 비난하는 원고를 그대로 내서는 곤란하다는 이유로 지울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열흘간 격렬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그 부분은 삭제됐다.

2008년 6월 김진명 작가는 ‘시경살인사건’이라는 가제의 소설 탈고를 앞두고 출판사에 한 통의 내용증명 서신을 보냈다. “작가가 동의하지 않음에도 원고의 수정을 강요하는 행위는 매우 위중한 파괴행위”이므로 또다시 그런 행위가 없기를 강하게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그후 출판사는 김진명 작가에게 계약 해제를 통보한다. 때문에 작가는 이 건을 양심과 집필권에 대한 침해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판사측이 단순한 전속계약 위반과
채무불이행에 대한 소송임을 주장하는 데 비해 양측의 시각 차이가 큰 부분이다.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파주 출판단지. | 연합뉴스


이 사안을 두고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은 출판사와 작가의 전속계약에 관한 건이다. 대교측에서는 작가가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낸 것이 계약위반임을 지적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계약한 3권의 책이 출판될 때까지 작가는 다른 출판사와 책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를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출판그룹 문학동네 국내부 조연주 편집부장은 전속계약은 출판계 관행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출판계약은 대부분 저작물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선인세도 상징적인 수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처럼 억대의 계약금을 지급하거나 출판사 전속으로 작품활동을 한다는 계약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금력에 의한 표현 자유 침해다”
문화예술계에서 전속계약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부문은 미술계이다. 일부 유명 화랑이 젊은 작가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여 작품생산을 강요하고, 작품세계까지 좌지우지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몇 년 전 전속계약의 압박 때문에 오승윤 화백이 자살한 사건은 화랑 대표의 구속까지 가져왔다. 연예계의
매니지먼트 사업처럼 작가를 선점하고 유명 작가로 키워 그 과실을 독점하며 미술계 전체를 왜곡한다는 점에서 문화마피아의 온상으로 지목된 바 있다.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인식된 채 거액을 호가하면서 발생된 일이다. 소설의 경우 독자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결정되는 면이 강해 아직까지 전속계약의 개념은 희박한 편이었다. 게다가 출판계의 오랜 관행이 작가와의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하기에 거액의 소송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교측에서는
민사소송이 제기된 이상 따로 언급할 내용은 없으며 소송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제천에서 차기 작품을 집필중인 김진명 작가는 “작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작품을 쓴다. 출판사는 작가와 함께 창작의 자유를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작품을 재단하려는 것은 금력에 의한 표현 자유의 침해이다. 이런 소송을 남발한다면 작가는 소신보다 출판사의 원고 강요와 출판 불가의 위협에 굴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화보다 대형로펌을 내세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출판사의 대응방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사건은 이제 당사자 간의 문제를 떠나 법정으로 넘어갔다. 단순한 채무불이행 사건으로 기억될지, 작가의 창작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될지를 가리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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