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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밤이 기우다.

by 아프로뒷태 2011. 12. 23.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한달이 지나서부터는 잠을 도통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니터를 보고 있다. 그의 옆에는 제자로 보이는 인턴의사가 앉아 있다. 마치 그와 나의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처럼.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이 오지 않아요. 눈을 감고 세 시, 네 시를 넘길 때가 많아요."

 

나는 그를 쳐다본다.

 

"수면제를 처방해줄테니 먹어보도록 해요."

 

그는 대뜸 한달 분량의 수면제를 처방한다. 부작용이 있을 리 없다. 무슨 고민이 있냐? 아니면 일을 많이 하는 것 아니냐? 라는 말로 환자의 심적 상황이나 처한 환경에 대해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하지않고 처방만 내린다. 나는 묵묵이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불과 세 달전 우리는 서로 분노했다. 나는 눈을 부릎 뜨고 그를 쏘아보았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수술결과가 아니었다. 수술의 결과에 이르기위한 과정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유난히 그 쯤에 나는 사람들이 흘린 말들로 인해 가슴에 생채기 투성이었다.

 

그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수술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의아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았어야 했다. 나의 보호자는  나이므로. 나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나이므로. 그는 수술전까지 만약의 상황에 대해 나에게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그의 고의적인 침묵을 나는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통상 권위에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대우하면서 친절하게 몸상태를 설명해주기는 드물다. 그래서 환자들은 그저 아프지 않게 치료해주길 전적으로 믿고 바랄 뿐이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그랬다. 들 것에 실려 수술실로 옮겨지면서 나는 아,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참았고 믿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의 무책임한 태도와 안일주의한 치료과정에 정확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그때서야 나는 분노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관리하는 환자가 70명이라고 했다. 수술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내가 분노했을 때,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환자가 7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은 유추를 해보면, 결국 자신도 사람이고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관객처럼 지켜보는 제자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그래, 교수들의 습성을 안다. 교수들은 권위의식에 젖어 석,박사들로부터 대우받기를 원한다.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진정한 학자의 태도를 갖고 있거나 교수법이 탁월하지도 않으면서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로 서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의사이자, 교수라는 점을 인지시키려는 듯 나에게 단호한 어투로  "당신이 설명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고 반박했다.

 

 

당신이라.

 

언제부터, 누가, 나에게 당신이라고 불렀던가? 2인칭의 호칭이 갑자기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그와 나 사이에는 손가락 다섯 뼘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몇 백미터,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멀어져가는 가속도가 너무 빨라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의 권위에 짖눌리지 않겠다. 그가 어떤 명성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해야 할 때는 권위나 명성 따위는 필요없다. 권위나 명성, 능력, 힘, 이런 것들을 가진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에게 누르는 힘을 느껴본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은 아주 고약한 성격을 갖고 있다. 간사하고 얍삽하다. 또한 가진 것이 없는 인간을 아주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애초에 없이 태어났고 자라, 무능한 인간으로밖에 살 수 없는 현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만든다. 그런 것들은 아주 독한 냄새를 풍긴다. 참고 참고 또 참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더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설명을 자분자분하게 하되,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분노와 억울함은 매서운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말을 끝마쳤을 때, 눈이 몹시도 매웠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그는 말했다.

 

미안해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바늘을 껴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가슴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억들을 기우며 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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