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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포이동, 이제 제발 그만 하자.

by 아프로뒷태 2011. 10. 19.

이젠 제발, 멈추어 주세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는 기사입니다.

끔찍하군요.

왜 사람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가요? 잔인하게 괴롭히는 건가요?

그놈의 자본이 무엇이고 계발이 무엇이길래.

제발, 이젠 그만 멈추어 주세요.

 

 

 

 

심리적 내상 심각…용역 다시 올까 잠 못 이루는 밤

 

 지난 6월 화재로 재산을 잃은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이 철거용역들의 계속되는 폭력에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언제 용역들의 폭력이 재발할지 몰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재건마을을 돕고 있는 박정재 민중주거생활권쟁취를위한철거민연합 연대사업국장은 “주민들이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불안해한다. 무슨 소리만 나면 주저앉아서 울어버리는 주민도 있다”고 전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화재라는 충격적인 경험에다가 용역들의 폭력까지 경험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받은 심리적 내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인 것 같다. 외상후스트레스성 증후군 증세를 보이고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집이 불에 타고 용역들이 쳐들어와 집을 부수는 꿈을 꿔요.” 장아무개(51)씨는 화재 이후 받은 충격으로 신경 쇠약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조금만 놀라도 호흡이 가빠지는 증세를 보이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장씨는 의사로부터 “한달간 재건마을을 떠나 충격을 받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어 여전히 재건마을에 머물고 있다. 장씨는 “너무 힘들어서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며 “강남구청이 그냥 우리를 흙에 묻어버려 매장시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방송인 김미화씨가 배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출처. 미디어몽구

철거도 철거지만 왜 하필 새벽에 전쟁하듯 


 이상화(70) 할아버지의 오른 팔에는 지난달 29일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아 생긴 파란 멍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용역이 이 할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넘어뜨린 뒤 용역들이 빙 둘러싸고 할아버지의 온몸을 발로 찼다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30여년째 재건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런 폭행을 당해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달 용역들과의 충돌 직후 마을을 방문한 박재만 한의사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르신들 몸 곳곳에 타박상이 매우 심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한번 타박상을 입으면 회복이 더디다”며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은 현재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애쓰고 있다. 강남구청과 협의를 거쳐 화재로 소실된 집을 복구하고 있지만 구청이 고용한 용역들이 지난 8월 12일, 9월 29일 새벽 두 번에 걸쳐 새로 지은 집들을 부숴버렸다. 8월 12일에는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을 지었다는 이유로, 9월 29일에는 협의 되지 않은 곳에 너무 크게 건물을 지었다는 이유로 강제로 철거했다.

 주민들은 “강남구청의 기습철거도 문제지만 왜 새벽에 전쟁하듯 쳐들어와 주민들을 괴롭히느냐”며 원망하고 있다. 주민들은 어두운 곳에서 용역들에게 얻어맞으면 채증도 못해 경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김미화 “아직도 먹먹합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17일 포이동 재건마을을 방문한 방송인 김미화씨는 주민들을 만나본 뒤 자신의 트위터에 “용역에 맞서다 방패에 찍혀 피멍이. 우리 엄마라면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직도 먹먹합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은 새벽 건물 철거를 재고해보겠다고 밝혔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 새벽에 기습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철거시간을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을 계속 지으면 철거를 할 수밖에 없는 게 구청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포이동 재건마을은 1981년 12월 정부가 자활근로대 대원들과 동청사 부지 거주민, 상이용사, 공공주차장 부지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현재 8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주민 대다수는 50대 이상의 노령층이다.

글·사진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방송인 김미화 씨가 17일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 폭발적인 반응을 낳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서울 강남구 포이동을 다녀왔다고 했다. 구룡마을과 함께 서울시 강남구에 마지막 남은 판자촌이다. 이곳은 지난 6월 12일 오후에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관련 기사 : 잿더미 된 '마지막 판자촌'…"이젠 눈물도 말랐다")

김 씨는 이날 트위터에서 "오늘 화재로 75가구가 불에 탄 포이동에 다녀왔습니다. 이 어머니를 보십시오. 강제 철거하는 용역에 맞서다 방패에 찍혀 피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손뿐이 아니라 팔까지 온통 피멍이 든 한 여성의 양 손이 보이게끔 촬영된 사진을 게재했다. (☞관련 기사 : 강남구, 용역깡패 앞세워 포이동 판자촌 기습철거)

이어 김미화 씨는 "우리 엄마라면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직도 먹먹합니다. 사람이 먼저 입니다"라고 적었다.(☞관련 기사 : '강제이주의 생존자' 조철순 씨가 살아온 이야기)

 


 

▲ 김미화 씨 트위터.

 

 

 

 

강남 무허가 마을인 포이동에 기습적 철거가 시도됐다.

12일 야당과 경찰, 주민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청은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을 동원해 이날 새벽 4시 30분경 개포동 1266번지(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재건마을의 임시 건물 일부를 기습 철거했다.

이로 인해 임시 건물 3개동이 허물어졌고 5개동은 파손됐다. 철거에 항의하던 주민 3명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또 주민 30여명은 강남구청사 정문에 모여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다.

포이동은 정부 정책으로 강제이주된 주민들이 일군 서울에 남은 대표적 무허가촌이다. 주민들은 적절한 이주대책과 복구지원을 서울시에 요구해 왔으나, 서울시는 주민들이 시의 토지를 불법 점유했다며 이들에게 토지점용료 수억 원을 납부할 것을 요구해 갈등이 빚어졌다.

지난 6월 발생한 화재와 이후 계속된 장마로 주민들이 임시 건물을 짓자, 서울시는 이들이 불법건축물을 지었다며 강제 철거에 나섰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지방행정기관이) 이토록 삶의 터전을 유린하는데 그냥 내몰릴 사람은 없다"며 "기습철거에 대해 강남구청장이 사과하고, 마을 재건을 위해 최대한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사회당도 "용역깡패를 앞세운 폭력과 강제철거로는 절대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주민의 공동체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6월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는 대표적 복지의 사각지대다. 부와 교육의 메카 강남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낯선 판자촌. 포이동 266번지는 주민들에겐 단지 주거지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가난을 벗어날 기회조차도 박탈해 온 우리 정부의 행정폭력과 말뿐인 복지정책, 그리고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30년 인권유린의 역사를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


 

- 슬픈 판자촌, 포이동
"'고춧가루 물고문'의 기억, 그보다 괴로운 '오세훈 표 복지'"

 

 

영화 <고지전>은 1951년부터 진행된 2년 여의 휴전회담 기간 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 주인이 바뀌는 고지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공포'를 그린 영화다. 오늘 무사해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전장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들을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으로 내몬다. 그들은 살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모두 죽는다. 3년 전쟁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들을 결국 죽게 만든 것은 전장의 죽음과 멀찍한 곳에서 손익을 따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있다. 포이동 266번지. 마을 주민들은 눈만 뜨면 날아드는 새로운 '철거계고장'으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집을 지어놓으면 바로 계고장이 날아든다. 그 계고장은 '1일 이내 전 동 모두 자진철거하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시작해, '그렇지 않을 시 행정대집행으로 강제철거하겠다'는 협박으로 끝난다. 그리고 지난 8월 12일 새벽 5시경 일어난 강제철거를 시작으로 9월 29일 새벽 4시 10분, 또 한 번의 강제철거가 집행되었다. 집은 다 타버렸고, 살 곳은 없는데 대책도 내놓지 않은 채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밥 지어먹고, 잠 잘 곳을 지으면 다 부수겠다는 협박은 갈 곳 없는 이들에겐 죽음을 통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 지난 6월 발생한 화재로 수십 가구가 불에 탄 포이동. ⓒ이상엽


서울시가 손익을 따지는 동안 계속된 전쟁

8월 12일 새벽 5시, 철거용역들과 강남구청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해머를 든 채 구둣발로 들어와 자고 있던 주민들을 끌어냈다. 와중에 많은 주민들이 용역들의 폭력에 몸을 다쳤다. 이가 부러지고, 멍들고, 인대가 늘어난 사람이 여럿이었다.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9월 29일 새벽에 있었던 강제철거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들은 망연자실했고, 아이들은 놀란 울음을 그치지 못해 학교를 못 갔다. 두 번의 철거 모두 사람들이 곤히 잠든 새벽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주민들은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꿈이 없어진 지 오래이고, 너무 늙어버린 부모들은 내일이 없어진 지 오래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손익을 따지는 동안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이 지어놓은 집은 반복해서 철거되고 있다. 주민들에겐 내일이라는 시간이 '공포'가 되어버렸다.

구청관계자들은 그것이 그저 '일'의 연장선상이고, 강남구청장과 서울시장에게는 그것이 '정치'의 연장선상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표를 줄 강남 부유층 유권자들을 무시할 수 없고, 그들의 미감에 맞지 않는 포이동은 '불난 김에' 강남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강남구청 도시계획팀장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불이 나가지고 주민들이 오갈 데가 없잖습니까. 그러면 좋다. '이 기회에' 아파트가 들어갈 수 있는 땅을 취하고 나머지 부분에 임시주거시설을 지어라. 그거예요."

주민들이 오갈 데가 없다는 것, 그리고 '불난 김에 철거하자'라는 것. 강남구청은 이 두 가지 의도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강남구청에서 제안한 '임시주거시설 건축'도 무산된 상태다. 포이동 주민들에게 임시주거시설을 지으라며 강남구청이 내놓았던 부지는 앞에 거주하고 있는 현대아파트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무산되었다. 사실상 강남구청에서 포이동 주민들에게 주거지에 대해 내놓은 대안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는 상태다.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모두 다름 아닌 한나라당 소속이다. 이런 맥락에서 MB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친서민 이미지'를 만들려 애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실속이 없는 '텅 빈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음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친서민 정부'는 말 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포이동. ⓒ이혜정

30년 전쟁,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영화 <고지전>에서 김수혁 중위는 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명령으로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중대장을 망설임 없이 쏴 죽인다. "네가 사람이냐?"라고 소리 지르는 친구 강은표 중위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진작에 죽었어. 3년 지랄(전쟁)에 사람이 살아남았겠어?"

생사가 걸린 지루한 전쟁. 포기할 수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다. 내가 살기 위해, 가족 같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포이동 사람들은 2005년부터 시작된, 아니 강제이주 되었던 79년부터 그 전쟁 같은 세월들을 살아냈다. 88년, 경찰과 공무원들의 폭력에서 벗어나자마자, 수억의 벌금이 다시 그들을 덮쳤다. 그도 모자라 지난 2005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드는 '철거계고장'에 가슴을 졸이며 살았다. 지난 6월 마을을 덮친 화마에도 그들은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지금 서울시는 그들을 다시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 사람들이 너무 드세어가지고……."

강남구청 강태근 도시계획팀장이 인터뷰 도중 한 이야기다. 2007년 방송된 <PD수첩>에서도 강남구청 공무원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처럼 포이동 266번지에 사는 사람들이 "드세다"라고 단정 짓는 공무원들은 점잖게 양복을 입고 들어와 철거계고장을 전달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이른바 '드센' 주민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에 경찰을 대동한다. 그리고 구청에 찾아와 '드세게' 항의하는 주민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또는 업무집행방해로 고소고발한다. 또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 주민들이 지어놓은 '불법 무허가 건축물'을 엄중 조치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의뢰한 용역업체 직원들로 하여금 잠든 주민들을 끌어내고 '불법 무허가 건축물'을 '적법'하게 철거하도록 한다.

살고 죽는 문제가 걸린 주민들은 '드세게' 항의하지만 좌절당하고, 이른바 행정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구청 공무원들은 점잖게 죽음에 준하는 폭력을 그들에게 행사한다. 이는 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에서 나라의 수장들이 쾌적한 회담장에 점잖게 앉아 뜸들이며 펜대를 굴리는 동안, 50만이 넘는 병사들이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터져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과 정확하게 닮아 있다.



 

ⓒ이혜정

 

정말 사람이 죽었다

서만수(가명)라는 사람이 살았다. 자활근로대로 끌려와 30여 년 간 이 곳에서 늙어갔다. 마누라도 얻고 아이도 낳았다. 그렇게 얻은 가족을 지키려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병명이 너무 복잡해서 마을사람들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병을 얻은 것이다. 산소호흡기를 꽂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한번 꽂는데 60만 원. 그것도 며칠을 못 갔다.

"다 썩은 차를 덜덜덜덜 끌고 다녔어요. 아는 사람이 타던 차를 명의 이전만 해가지고 '니가 타라' 그랬던 차였는데, 명의이전을 하자마자 (토지 변상금 때문에) 압류당한 거죠. 그래서 타지도 못하고 저 구석쟁이에 한참 썩혀있었어요. 그런데 그 차가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안되고, 도움도 못 준다는 거예요."

주민들은 동사무소에 몰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청은 '행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그러면 치료만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답은 같았다. 국가는 '행정'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만수씨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고물상에서 목을 맸다. 한 달 뒤, 부인은 장롱에서 뒤따라 목을 맸다. 생떼 같은 자식을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두 부부가 목을 매 죽었다. 그렇게 남겨진 아들은 아버지의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유산 상속도 포기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부부가 한 달 사이에 목숨을 끊고, 그 부인은 옷장에서…. 그렇게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어요. 장롱, 아휴…. 장롱 안에서 돌아가셨어요. 장롱 안에 옷 거는 거 있잖아요. 거기에 줄을 매서…. 다리를 뻗으면 닿잖아요. 어휴. 다리를 이렇게 오므리고 돌아가셨어요. 인간이 본능적으로라도 (다리를) 뻗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본인이 다리를 이렇게 오므리고 돌아가셨다니까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은 목이 턱, 멘다. 먼 산을 보고 눈물을 가라앉힐래도 서러운 세월이 자꾸만 덮쳐온다. 다리를 제 스스로 곱아 죽은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계획과 담당 공무원은 "형편이 안 좋으신 분들에 대해서는 (토지변상금으로) 임대주택 보증금뿐 만이 아니라 그 외에 월급이나 예금에 대해서 전혀 압류를 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죽어나갔다.

 

 

"우리도 남들처럼"

ⓒ이혜정

"이제 그만 거기서 나와서 우리도 남들처럼 사람답게 살아봅시다."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부과된 100억 원의 빚 탕감 전쟁을 벌이고 있는 포이동의 부모 세대들은 이제 자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말문을 트자마자 무릎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던 포이동 할머니의 말처럼 "하늘같이 채워놓은" 토지변상금이라는 이름의 빚 때문에 평생 발목이 묶인 부모들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자고 남은 생이라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자고 말한다, 그저 남들처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부모들은 그럴 수 없다. 그 빚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되물림 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삶은 포이동 주민들에겐 아직, 너무 멀다.

강남구청의 꼼수, 담당과 바꿔 책임 떠넘기기?

강남구청은 올 10월 1일자로 포이동 담당을 도시계획과에서 주택과로 넘겼다. 부서가 바뀐 이유에 대해 "원래 무허가 건물 정비는 주택과 소관"이라고 밝힌 김모 주택과 팀장은 10월 1일부터 업무를 정상적으로 인수를 받는데 아직 업무파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할 말이 없다 했다. 그런데 9월 29일 새벽 강제철거가 있고 나서, 주민들이 강남구청을 찾아 항의하자 해명을 하러 마을로 온 사람은 바로 김모 팀장이었다. 업무도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고 9월 29일 당시로서는 아직 업무가 주택과로 넘어온 것도 아니었고 본인 말대로 "업무파악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할 말이 없다"던 그가 해명을 위해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주택과를 도시계획과와 연결을 시키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9월 29일 있었던 철거는 도시계획과에서 주관한 사안이라 주택과에서는 들은 바 없다 했다. 그렇다면 도시계획과에서 해명을 해야하는데 이제 그쪽 소관도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9월 29일 새벽 있었던 철거에 대한 해명과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주민 4명이 실신했고, 놀란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김모 팀장이 마을을 방문한 것은 단지 "업무파악"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모 팀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구청에서 저희가 책임이다, 통감한다.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수습을 하러 간 상황은 아니예요."

김모 팀장은 당일 주민들과 간담회를 통해 10월 6일 구청장과 면담을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라 했다.

"구청장님과의 약속은 어제 강남경찰서 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은 꼭 누구라고 지칭한 것은 아니예요. 구청장도 계시지만 부구청장님, 국장님도 계시잖아요. 지금 상태로는 구청장과의 면담을 확실하게 답변드릴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거 같은데요."

"아침에 한 말을 점심때 와서 번복하는 사람들"이라며 주민들이 관청을 불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에게 구청장과의 면담을 약속해두고서도 확답은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꾸는 관청. 주민들의 항의에 대해 일련의 상황들을 잘 알지 못하는 담당자가 와서 해명을 하는 상황. 이 일련의 장면들은 웃지 못 할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했다.

ⓒ이혜정

박원순이 이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나?

박정희 정권 때 거리미화 명목 하에 강제이주 된 이들은 지금 오세훈 전 시장의 전시행정으로 다시한번 쫓겨가게 된 셈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내세운 '디자인 서울'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세련된 디자인 아래 감춘다. 노점상도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건물들도 모두 철거당했고, 말끔한 대리석과 값비싼 가로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속에는 포이동 266번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화 장기임대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판자촌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의 섬세한 미감에 포이동 판자촌은 영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0월 1일부터 포이동 담당을 맡게 되었다는 김모 강남구청 주택과 팀장은 "강남구 브랜드에 맞지 않게" 존재하는 집단 판자촌을 철거, 이주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강남구의 세련된 풍광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순순히 나가주면 강남 브랜드에 걸맞는 풍광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미감에 따라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쫓겨도 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그저 행정절차에 따라 '행정업무'를 할 뿐이고, 그 행정 속에 빈민을 위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이혜정

이런 포이동 266번지에 대한 답 없는 서울시의 행정에 대해 MB정부 심판자로 나서는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박원순 후보에게 물었다. "아쉽게도 포이동을 찾아간 적은 없지만 이제라도 찾아뵐 수 있는 기회를 갖겠다"고 운을 뗀 박 후보는 "문제는 집이다. 공공임대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것에 역점을 두겠다. 한편으로 주민들이 현자리에서 좋은 주거환경을 갖추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박영선 후보는 포이동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인터뷰는 야권후보단일화 이후로 미루겠다고 답해 왔다.

박원순 후보가 시장이 된다면 포이동의 상황이 변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현재로서 적어도 MB정부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겠다는 그의 의지는 내비친 셈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참,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 하면 뭐 합니까.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에요."

삶이 고통 그 자체인 사람들. 과연 박원순이 시장이 되면 정말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지옥같은 전쟁은 끝나게 될까? 주민들은 서울시장 선거가 빨기 끝나길, 새로운 시장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겨레 신문 기사 중에서

대추리·강정·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폭력대집행 [2012.08.13 제923호]
[특집] ‘제3자’ 용역업체 등이 철거 등 행정 대신하고 비용은 ‘원인 제공자’ 철거민 등에게 징수하는 행정대집행… 철거지역 경비, 이주 업무까지 맡는 용역업체들은 강제 철거 전에도 세입자 등에게 폭행·협박 자행

 

‘22 30만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청이 판자촌인 일명 ‘포이동 재건마을’(현 개포동 1266번지) 주민대표 조철순씨에게 이런 비용을 청구했다. 그해 6월 화마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주민들이 직접 설치한 임시주택 세 채를 강제 철거하는 데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른바 ‘행정대집행’ 비용이다. 행정대집행이란, 행정상 의무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청이나 제3자가 이를 대행한 뒤 소요 비용을 의무자에게 징수하는 강제집행 제도다.

 

명도 소송 통한 철거, 계고장도 필요 없어

강제 철거가 있던 지난해 8월12일 새벽 6시, 강남구청 직원 60명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80명이 포이동 재건마을로 들이닥쳤다. 주거 대책을 놓고 주민과 구청이 두 달째 갈등을 빚던 중이었다. 주민과 용역 간 충돌은 불 보듯 뻔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주민 3명이 다쳤다. 앞서 구청은 이재민들에게 서울시 7개 구에 위치한 임대주택 50가구를 마련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료와 보증금조차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어르신이 많았다. 더구나 구청이 1991년부터 ‘시유지 무단 점유’를 이유로 집집마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부과한 토지변상금을 떠안은 상태에서 섣불리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재건마을은 1981년 도시빈민·부랑인 등으로 구성된 자활근로대 일부가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돼 형성된 가난한 동네다. 주민들은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대집행 비용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며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철거 현장에 집행 책임자가 나오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고,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라는 행정대집행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청은 절차상 하자가 없었으며, 공익을 해할 위험이 있는 ‘불법 건축물’을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맞섰다.

취약 주거계층, 미군기지 건설 등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 재개발 지역의 영세 세입자, 노점상 등의 집이나 가게를 합법적으로 철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954년 제정된 뒤 거의 바뀐 부분이 없는 행정대집행 절차를 따르거나, 민사집행상 명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공공의 이익, 또는 사적 재산권을 수호한다며 이뤄진 법 집행 과정에서 늘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이 방조돼왔다. 적절한 보상 대책이나 제대로 된 이주 합의가 없었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강제 철거는 효율적인 집행을 내세워 불시에 일어난다. 특히 명도 소송을 통한 강제 철거의 경우, 거주민에 계고장을 발부하는 등의 고지 의무조차 없다.

과거엔 하루라도 빨리 개발 이익을 보려는 시행사가 인력을 고용해 구청과 짜고 공권력인 양 위장해 현장에 투입시켰다. 지금은 철거용역업체라는 허울 좋은 외피를 쓴 외주화된 폭력이 그 자리를 꿰찮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시의 한 구청 공무원은 “정비 업무 때 대개 용역업체 인력을 쓰는데, 이 업계엔 조직폭력배 출신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이런 업체들 중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주차장 경비 업무 등을 위탁받아 돈만 받은 뒤 사업장을 폐쇄하는 ‘먹튀’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래 성장가도 달리는 철거용역회사

최근 물의를 일으킨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정관을 보면 사업 목적에 ‘행정대집행업’이나 ‘가로정비업’ 등이 명시돼 있다. 물리력을 필요로 하는 행정대집행 역시 이런 업체들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행정대집행을 수행한 용역업체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비용을 청구하고, 지자체가 이를 집행해왔다. 이런 이유로 국가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행정대집행 비용 산정 기준 개선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금액을 행정청이 별다른 검증 없이 부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정재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연합’(민철연) 연대사업국장은 이런 문제를 두고 “나라가 노점상에게서 돈을 걷어 용역업체에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합법적 강제 철거 및 퇴거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나 세입자 등은 퇴거를 종용하는 폭력과 공포에 시달린다. 재개발조합 등과 계약을 맺은 철거용역업체들은 이주 업무까지 함께 수행한다. 이런 철거용역회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업체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자로 규정되는데 동시에 경비업 허가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 2009년 1월20일 참사가 벌어진 서울 용산 남일당이 포함된 용산 4구역에도 시공사 및 조합과 ‘건설물 해체 및 잔재처리공사 도급계약’을 맺은 호람건설과 현암건설산업이라는 철거용역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약정 기간 내에 철거를 끝내지 않으면 지체 1일에 대해 공사 금액의 1천분의 1을 보상금으로 배상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2008년 2월께부터 철거용역업체는 강제 철거를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폭행·협박·영업방해 등을 통해 퇴거를 압박했다. 상가 세입자들은 철거용역업체의 폭력과 압박에 맞서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랐다 참변을 당했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의 폭력과 충돌은 거주민뿐 아니라 용역들의 목숨도 위협한다. 2005년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 현장에서 주민들과 대치하던 20대 용역 직원이 숨진 경우가 그렇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철거 현장에 거의 무방비로 투입된 용역 직원 43명 대부분이 단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이들은 경찰과 대한주택공사 직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을 통제하기는커녕 수수방관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권위 개선 권고에도 변함없는 현실

용사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2009년 2월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강제 철거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해왔는데도 이를 최소화하려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충분한 사전고지·협상 및 적절한 보상 없는 강제 철거,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에 대한 강제 철거 등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 정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예방·금지 규정 및 불이행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 마련 △경찰청장에게 강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하는 철거 및 경비업체 직원에 의한 폭력 문제, 법적 자격 없이 경비업체 업무를 수행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감독 강화 등을 권고했다. 2012년 8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들어온 공권력 및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서울국토관리청은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농지를 비우지 않으면 8월6일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법이라는 방패막 뒤로 난무하는 폭력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슈퍼부자’ 근로소득보다 배당·부동산 비중 커
대기업에 경제력 집중…CEO 성과급 등 늘어
한국 분배개선율 OECD 꼴찌…조세정비 필요

 

 

우리나라 전체 소득자 가운데 상위 1%로 소득이 빠르게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큰 변화가 없던 상위 1%의 소득은 한국 경제가 커다란 충격을 겪은 1998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1998년 6.97%이던 상위 1%의 소득 집중도는 2010년 11.50%로 크게 늘었다. 상위 1%의 소득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 의사·변호사·변리사·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의 ‘한국의 소득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 자료를 보면, 상위 1%의 연평균 소득이 1억9500만원이나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상위 1%는 일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와는 거리가 다소 먼 이들이다. ‘슈퍼 부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근로소득보다 배당소득과 사업 및 부동산 소득의 비중이 큰 특징을 나타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여경훈 연구원은 “2009년도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봤을 때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2000만원쯤 되는데, 이 가운데 의료·보건 쪽의 평균 소득이 1억1000만원으로 나타났다”며 “의사나 약사가 상위 1%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부’가 상위 1%로 빠르게 집중되기 시작한 시점은 외환위기 이후란 사실엔 이견이 거의 없지만, 그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김낙년 교수는 “고도성장기 때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은 빠른 고용확대를 통해서 성장의 성과가 저변으로 잘 확산됐기 때문”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이 확대되면서 소득집중도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수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장인성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수출 대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골고루 퍼지지 않고 대부분 기업 소유자나 최고경영자 등에게 주가상승이나 배당 등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 전체 ‘파이’가 커져도 노동자의 임금으로 돌아가는 몫은 갈수록 줄고 있다.

여기에 고소득 전문직 등 숙련노동자의 빠른 소득 증가,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에 대한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성과급 확대 등의 요인도 작용했다. 반대로 비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하위층의 소득은 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상위 1%의 소득 비중을 더욱 키우는 쪽으로 작용한 요인도 크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이 완화된다’는 성장지상주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국가의 역할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은 최근 ‘초고소득층의 특성에 관한 국제비교’에서 “상위계층 소득 비중의 증가는 불평등도의 확대를 의미하므로, 소득 재분배를 위한 조세정책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조세 및 공적연금 등 사회지출을 통한 ‘소득분배 개선율’이 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8분의 1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소득 분배 개선에 국가의 역할이 아주 작다는 뜻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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