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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벽 넘는 ‘하이브리드 문학’ 물길 트이다

by 아프로뒷태 2011. 6. 25.

 

정유정·장강명·윤이형·이재익·배명훈 등 소설가 SF·추리물 등 문법 활용 인간과 현실 문제 발언해 “새 가치 창조할 것” 전망에 “단기적 유행” 의견도

한겨레 최재봉 기자  

 

 

한국 소설의 오랜 불문율인 ‘본격’과 ‘장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추리와 에스에프(SF), 판타지, 로맨스, 무협 같은 장르소설들이 본격문학의 영역 안으로 대거 밀고 들어오는 한편, 이른바 본격문학 또는 순문학 작가들은 장르소설적 틀과 장치를 적극 활용한 작품들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일종의 세를 형성하면서 문단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7년의 밤>은 7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관련해 살인자의 아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려는 인물과 그에 맞서는 이들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다. 시종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사건의 진상과 결과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백>은 수수께끼 같은 연쇄 자살 사건의 배후를 캐 가는 가운데, 혁명마저 불가능해진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살인과 복수와 자살, 그리고 그 배후에 대한 추적 등은 전통적으로 추리소설에서 즐겨 동원하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7년의 밤>과 <표백>은 그런 추리적 장치에 크게 의지하면서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어서 단순히 장르소설 범주에 국한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작가와 작품들만이 아니다. 에스에프 작가로 출발한 배명훈은 역시 에스에프 단편인 <안녕, 인공존재>로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함께 수상한 김중혁, 편혜영, 이장욱, 김미월 등은 이른바 본격문학 쪽의 기대주들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본격문학 작가로 분류되는 윤이형이 올 초 내놓은 소설집 <큰 늑대 파랑>은 거의 일관되게 에스에프적 문법을 차용하면서 인간과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에스에프라는 장르와 본격문학의 교류와 습합이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말고도 2009년 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주원규의 <열외인종잔혹사>와 그의 후속작인 <무력소년생존기>, 손아람의 <소수의견>, 강지영의 <신문물검역소>와 <심여사는 킬러>, 그리고 이재익의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과 <심야버스괴담> 등의 작품들이 판타지와 역사물, 법정 스릴러, 로맨스 같은 장르를 적극 끌어들여 본격문학 쪽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다 박민규와 김중혁, 편혜영, 최제훈처럼 에스에프와 판타지, 추리 같은 장르 문법을 적극 차용한 작품들로 뚜렷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도 있다.

다음달 초 창간되는 소설 전문 월간지 <네오픽션>의 출현은 이런 흐름의 한 정점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내는 <네오픽션>의 가장 큰 발간 취지는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또는 대중문학의 경계를 허물자는 것이다. ‘경계 없는 문학’이라는 창간 특집에 그런 취지가 담겼다면, 강지영의 장편 연재와 구병모, 서미애의 단편 등은 작품으로써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이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기존의 한국 소설은 과도한 자기애와 자의식, 그리고 미학적 측면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독자들한테 외면받았다”며 “이야기성을 강화함으로써 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독자와 정면승부하자는 게 <네오픽션>의 발간 취지”라고 설명했다.

본격소설과 장르소설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오래전부터 양자가 수렴되는 ‘중간문학’론을 주창해온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그것이 “세계적 현상이며, 한국은 오히려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대학의 영문과에서 톨킨은 물론 댄 브라운과 마이클 크라이턴 같은 장르 작가들을 진지한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라며 “모든 것이 뒤섞이는 하이브리드의 시대 정신에 맞게 문학 역시 경계를 허물고 서로 만날 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이야기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장에서 어필하려는 작품들은 독자의 요구와 작가 및 출판사의 욕망이 결합해서 나타난 기획물의 혐의가 짙다”며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했던 칙릿이 시들해진 것처럼 이런 현상 역시 단기적 유행일 뿐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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