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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김밥을 먹었던 그때,

by 아프로뒷태 2011. 6. 15.

기억나? 이 맘때쯤이었을까? 아니, 6월의 중순이었을지도 몰라. 당신은 늦은 저녁, 11시에 퇴근하고 전화해주었지.

"어디야?"

"광화문이야"

당신은 진료를 보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땀으로 얼룩진 몸을 나에게 향했어. 그래, 믿기지 않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오고 있었어. 그곳에서 나는 촛불을 들었어. 그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어. 착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뒤늦게 도착한 당신도 촛불을 들었지.

 

광화문의 도로에 차들 발길이 끊겼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엉덩이를 고스란히 아스팔트위에 내려놓았어.

아스팔트에 앉은 사람들 속에 우리는 앉아서 촛불을 들고 있었지.

은은하고 조명이 깊은 커피가게의 커피보다 편의점의 커피로 충분했고,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먹는 저녁보다 은박지에 둘둘 말린 김밥 한 줄로도 배가 불렀어. 푹신한 소파나 침대가 있는 곳이 아니어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한 많은 수식어를 입밖으로 흘리지 않아도, 촛불을 들고 함께 있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고 소중했어.

 

당신은 내가 왜 그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냐고 묻지 않았지. 당신에게 그 일이 의미 있었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때 그랬어. 나는 꼭 시대의식때문에 그곳에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어. 내가 촛불을 들었던 건, 착한 사람들을 위해서였어. 절제된 이성을 갖추진 못했지만, 지식인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뭔가 순수한 것을 안고 나온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그때 말이야. 나는 순수한 것의 원인을 찾아가게 되었어. 그것은 신세였고,마음의 빚이었어. 세상을 살다보면 돈 없고, 몰라서 당하는 억척스런 일들이 많은데...그 중에서도 이 사회의 노동자인 부모들이 너무 기가 막히고 어려워할 때, 법을 몰라 어려워하던 그 때,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살 수 없었던 그때, 부산의 법조타운에서 그들을 만났어. 노무현과 문재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 그들은 힘없고, 어려운 노동자의 자식들을 위해 온 마음으로 대해주었지. 그리고 법을 통해 싸워주었지. 잠깐이었지만, 그때에 스친 인연이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어. 이 세상이 아무리 돈쓰레기로 넘쳐나도, 절대적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 판을 쳐도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 그 때의 인연이 수년이 지난 후, 나에게 촛불을 들게 만들었던 거야. 그 일을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침묵을 사랑했던 나만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어.

 

그때 마웠어.

계산적인 당신이 내곁에서 함께 있어줘서. 그래서 따뜻했어. 매일 눈을 뜨면 자신감이 생겼어.

 

나를 바라봐준 당신이 있었기에.

 

그런데, 있잖아.

나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가 두려워.

 

 

  

 

 

 

 

 

"노무현의 친구이자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4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문재인의 운명>을 펴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참여정부 비사 등을 털어 놓았다.

문 이사장은 특히 참여정부가 역점을 뒀던 개혁이 좌초된데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 등 권력 기관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의 배경에 국세청, 검찰 등 권력 기관의 무리한
수사조사가 있었다는데 대한 분노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의구심도 거두지 않았다.

"중수부·국세청, MB 정부 들어 '정권 유지 수단' 되더라"

참여정부 민정
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낸 문 이사장은 "중수부 폐지를 검찰 개혁의 매우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검중수부 폐지는 탈정치, 정치 중립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잡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지켜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며 독립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한꺼번에 퇴행해 버린 것이 어이없고 안타깝다. 안타깝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싶다.

관련해 문 이사장은 "민정수석 두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도 그렇다"고 밝혔다.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프레시안(김하영)


문 이사장은 국세청 개혁과 관련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토로했다. 그는 "국세청 개혁의 핵심은 국세청을 보복성 세무조사, 표적성 세무조사나 하는 정권 운용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국세청을 그런 일에 동원한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과거 행태로 국세청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돌린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배경으로 지목받는 사건이 국세청 조사4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였다. 재개 서열 300위 권의 태광실업에 '국세청의 중수부'라는 조사 4국이 나선 것 자체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의문점이다. 이 조사를 주도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후 이른바 '박연차 사건'이 시작됐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박연차 사건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다.

문 이사장은 박연차 사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기업이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그 시기 대통령은 좀 이상했다. 당시 대통령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모르다가 우리가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권(양숙) 여사님에게 따져 묻고 권 여사님이 점차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와 같이 사실 관계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평소 같으면 야단을 치고 화를 내실만도 한데 단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노 전 대통령은) "결국은 다 내 책임이다. 내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해 아무런 믿음을 못 주니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정치를 해서 단련이 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를 회상하며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며 "기사는 보수 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며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당시 상황과 관련해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 이사장은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박연차 회장에 대해 원망이나 서운한 말씀을 한 번도 안하셨다. 박 회장도 버티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빠진 것으로 이해를 했다"고도 말했다.

"촛불 집회 배후로 우릴 의심하더니 치졸한 뒷조사 시작"

이 외에도 문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
인사들에 대해 노골적인 '정치 보복'을 했다고 썼다.

문 이사장은 "
촛불시위의 배후로 우리를 의심했다는 얘기 역시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고 피해의식이었다"며 "정치보복의 시작은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였다.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아예 주변 인물들을 대놓고 잡아들이며 약점을 캐고 있다는 얘기도 속속 들려왔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이어 "칼끝은 슬슬 대통령에게 겨눠지기 시작했다. 먼저 대통령 기록물을 두고 망신주기가 시작됐다. 기록물 사건이 마무리되니까 이번엔 쌀 직불금
문제를 갖고 망신을 줬다"며 "그 무렵이 돼서야 '아, 이명박 정부가 노 대통령과 봉하마을을 상대로 정치적 대립국면을 형성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통합된 틀 안에서 정파간 연립 정부 구성해야"

문 이사장은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라고 물음을 던진 후 "그(노 전 대통령)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라며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길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야권
통합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그는 "통합된 정당의 틀 안에서 정파간 연립 정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성근 씨 등이 밝히는 야권 통합정당론에 가깝게 들린다. 그는 "통합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집권 후를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단일화만으로는 집권 후의 분열을 막기 어렵다"며 "집권 후에도 함께 힘을 모아 개혁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려면 더 높은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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