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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기

영화 글쟁이 -김영진 평론가

by 아프로뒷태 2011. 4. 29.

 

나는 어떻게 쓰는가④  영화평론가 김영진

 

솔직하게 영화의 껍질 벗기기

 

   당신은 어떻게 쓰는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마감 때문에 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하게는,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의 건조한 목소리, 혹은 이제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고 하는 절박한 호소가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에 다급한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공식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거의 언제나 나의 글은 주문 생산형이었다. 대학 강사로서 평론가란 직함을 달고 글을 쓰던 1993년과 1994년에는 잘리면 안 된다는 생계형 글쟁이의 성실성으로 청탁이 온다는 그 사실에 행복해하며 썼다. 1995년 영화잡지 <씨네 21>에 기자로 취직한 이후에는 마감을 은근히 압박하는 편집장의 굳은 얼굴, 기사들이 제대로 송고되지 않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잡지 편집국의 열기에 묻혀 글을 썼다. 탱자탱자 하며 이따 밤새우며 쓰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편집장이 심야에 퇴근하면서 “김영진씨, 그 기사는 오늘 꼭 되는 거지?”라고 물을 때 온 몸이 오그라들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신기한 것은 머리가 그렇게 텅 비어 있어도 뭔가 글줄은 나온다는 것이다. 실마리가 풀리면 20매, 30매의 글은 금방 나온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위하기를, 슬로우 스타터지만 한 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고 연타를 퍼붓는 인파이터 복서처럼 눈 깜빡 할 사이에 원고를 마치는 속기사의 자질을 타고 났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때로 글이 써지지 않으면 심야에 회사 앞으로 나가 술을 마셨다. 시간은 더욱 줄어는데 술은 맛있다. 에라, 모르겠다 계속 마시게 된다. 새벽에 회사에 들어와 어렴풋이 잠들었다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부산한 소리에 깨어난다. 그러고는 쓰린 속과 아픈 머리를 붙잡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루이스 부뉘엘의 <욕망이라는 모호한 대상>의 리뷰를 쓸 때가 기억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나이든 남자와 그의 젊은 아내가 길거리를 걷다가 쇼윈도를 통해 뜨개질하는 여인을 바라본다. 갑자기 그 여인의 이미지가 쪼개지더니 폭발음과 함께 사라진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관객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영화는 끝이 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자에게 집착하는 남자의 여린 욕망과 그런 남자의 욕망을 충족시킬 듯하다가 달아나는 여자의 불가해한 모습 사이에서 부조리한 유머를 끌어낸 이 영화의 결말로, 앞서 말한 이미지는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었다. 그 장면을 언급하며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루이스 부뉘엘에게 사석에서 그 장면의 의미를 말해달라고 물었어도 그는 아마 씩 웃으며 술이나 한 잔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일종의 불가해한 부조리, 퍼즐처럼 짜맞춰지지 않는 인생의 욕망들, 이런 말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 대신 위에 인용한 문장을 썼다. 이게 말이 되는 글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그건 그 영화를 본 당시의 내 마음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여러 지식을 동원해가며 수수께끼 풀듯이 분석하는 글쓰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더 파고 들어가 깊은 걸 건져낼 수도 있겠으나 때로 개념어들은 영화의 정서적 밀도를 깨버린다. 또는 영화의 표면에 이미 풍부하게 있는 살들을 뼈로 발라낸다. 나는 <욕망이라는 모호한 대상>의 그 마지막 이미지는 굳이 해석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체험을 표현할 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망했다”가 살린 글쓰기 스타일-솔직하고 간결하게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런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지식으로 영화를 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뒤늦게 수입된 구조주의 기호학 이후의 유럽 인문학 사조를 황홀하게 대하면서 이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지식의 데이터를 누가 내게 제대로 가르쳐 줄 스승은 없는가 안타까워했다. 글이 꽤 현학적이라고, 동년배들 사이에선 어렵게 쓰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뭔가 남는 것 같다고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가끔 들었다. 이런 글을 매체에 기고하면 대개 담당기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곤 했다. 글이 좋긴 한데 좀 어렵네요. 난 그런 이들을 마음속으로 경멸했다. 아 미개사회의 악몽이여. 그러면서도 내 글은 조금씩 쉬워지고 있었다. 그 당시 영화감독 데뷔를 했으나 실패한 후 매체 기고로 생계를 이어가던 박찬욱 감독은 내가 어느 시사잡지에 쓴 평론을 읽고는 “글이 갈수록 좋아져. 점점 경쾌해지고.”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그건 뭐 별 것도 아닌 글인데…”라고 시큰둥하게 대했다. 그는 “넌 그게 문제야.”라고 질책했다.

글에 대한 내 허영이 본격적으로 깨진 것은 <씨네21>에 입사하고 난 후였다. 당시 조선희 편집장은 평론 투가 남아 있는 내 글을 부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내가 쓴 기사를 데스킹하는 그의 컴퓨터를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여다보면 첫 문장부터 무수하게 난도질되고 있었다. 부숴놓기는 했는데 결과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난감해하는 편집장의 고충이 그 고치다만 글들의 잔해에 묻어있었다. 편집장이 퇴근하면 나는 몰래 그의 데스크탑에 들어가 몇 문장을 슬쩍 원래대로 고쳐놓곤 했다. 그래봐야 기자의 운명은 편집장이 바꾸면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완강히 저항하던 나의 글쓰기 태도는 어느 날 1995년 당시 내 옆에서 근무하던 팀장 최보은 선배의 한마디로 깨졌다. 그는 편집장과 동년배 친구였으나 기자 경력이 늦어서 편집장을 선배라고 불렀으며 조직에서는 편집장의 강력한 오른팔이었다. 이를테면 내 적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는 내가 쓴 글의 어느 대목을 두고 슬쩍 한 마디 지르는 것이었다. “김영진씨 글을 참 잘 쓰네.” 나는 그의 저의를 몰라 그냥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글을 쉽고 솔직하게 쓰는 것 같아. 이를테면 여기 이 문장 있잖아. 아무개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으나 할리우드로 가서 망했다. 바로 이 ‘망했다’라는 표현이 좋아. 몰락했다, 부침을 겪었다, 경력에 종말을 고했다, 따위의 말을 쓰지 않고 단순하게 망했다고 하니까 좀 좋아. 한국말은 솔직하고 간결한 거야. 이렇게 쓰는 젊은 사람 보기 드물어.”

아, 그는 비판을 칭찬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쓴 그 망했다는 표현은 그 글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태도의 산물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멋있게 쓰고 싶어하는 허영기를 누르지 못하는 글을 쓰고 있었으나 그는 내 글의 극히 일부분을 집어내 내가 마치 전체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는 것처럼 칭찬을 빌려 비평한 것이었다. 이 일은 내 글쓰기 태도의 이력에 있어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는 것 같은 변화를 초래했다. 그때부터 나는 쉽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몸에 새기고 빠져나가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편집장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견도 줄어들었다. 때로는 그가 내 기사를 칭찬하는 일까지 생겼다. 내가 그 당시 <씨네21>에서 맡은 기사일감은 주로 개봉영화의 리뷰와 감독론 성격의 특집, ‘미지의 명감독들’이라는 꼭지명이 붙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감독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고정기사로 집중되었다. 무조건 쉽게 쓰자, 라는 태도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밖에 나가면 글 잘 보고 있다는 격려성 인사를 곧잘 받았다.

글 쓰는 태도가 몸에 붙자 그것은 저절로 자연발생적인 리듬을 만들어내어 때로는 극단적으로 시간이 없는 가운데서도 곧잘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 기사를 써내곤 했다. 1999년 여름 개봉을 앞둔 이명세 감독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리뷰를 쓰기 위해 나는 금요일 새벽 0시에 열리는 기술시사에 제작진의 사전양해를 얻어 참석했다. 영화가 끝난 직후 이명세와 간단한 인터뷰를 30여분 나누고 회사로 들어와 새벽 3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리뷰와 인터뷰를 작성했다. 여기 그 기사의 몇 몇 부분을 소개한다. 영화의 특징을 요약하고 유난히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이명세의 스타일을 상찬하는 문장으로 뒤범벅이 돼 있는데 그럴 듯하다.

“(중략) 우산이 갈라지고, 빗물은 핏물이 되고, 우수에 찬 정조는 서늘한 살의의 에너지로 바뀐다. 살인현장에서 세상의 스산한 공기와 낭만과 삶의 피로와 분주함을 동시에 잡아내는 이 기이한 스타일리스트는 누구일까. 이명세 감독이다.

(중략) 이명세는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스타일리스트이다. 화면에는 수시로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그것은 화면에 변화무쌍한 정서적 때깔을 입힌다. 정광석과 송행기가 나눠 찍은(정광석은 눈 수술 때문에 이 영화의 촬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화면은 카메라가 아니라 붓으로 그린, 점과 면으로 된 캔버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깡패처럼 건들거리며 헤헤거리지만 목표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우형사 역의 박중훈이나 조용하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우형사의 맞수, 장성민 역의 안성기는 모두 저마다 지쳐 있지만 삶에 지지 않으려는 결기로 섬뜩한 눈빛을 뿜어낸다.

이명세는 그의 영화 경력에서 처음으로 들어간 남성적인 세계, 환상이 없는 세계, 현실의 육질만 있는 세계에서 만족할 만한 중간 기착지를 찾아냈다. 그는 “현실이야말로 가장 초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다.”고 말했다. 이때까지의 이명세는 곧잘 영화에 환상을 도입하는 몽상가처럼 보였지만 이번에는 현실의 디테일을 극한까지 파고들면서 현실을 마치 꿈처럼, 환상처럼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이 못 말리는 스타일리스트가 가장 행복하게 현실과 만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명세의 나라’는 현미경으로 구체적인 현실의 질감을 펼쳐 보여주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세계다. ”

인용해놓고 보니 꽤 멋을 부린 문장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지만 영화잡지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유형의 기사로 영화계 내에서는 꽤 이름을 얻었다. 이것으로 직장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내 공식 경력 1장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한 셈이었다.

평론은 “이게 도대체 뭔가”에서 시작

1999년 말 나는 씨네21을 퇴사한 후 대학원 박사과정에 등록했고 이듬해에 <필름2.0>이라는 회사에 취직했다. 벤처 붐이 일어나면서 인터넷 관련 회사에 돈이 몰리던 시절이었고 필름2.0은 온라인 영화매체를 표방하고 막 시작하는 매체였다. 내가 그 회사에 취직할 때의 조건은 편집장을 절대 맡지 않으며 쓰고 싶은 평만 쓰겠다는, 다소 강짜에 가까운 것이었는데도 시절이 좋았기 때문인지 다 받아들여졌다.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월급은 이전 직장의 두 배를 받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일 년도 넘지 않아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6년 후 정식 퇴사할 때까지 월급을 체불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여하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내 글은 아무도 데스킹하지 않았다. 내 글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음엔 그게 매우 어색했다. 5년여 동안 <씨네21>에서 익숙했던, 내가 기사를 쓰고 데스크에서 수정하는 제작관행이 과거의 일이 되었다. 지금 잘 쓰고 있는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아 후배 기자들에게 부지런히 반응을 묻곤 했으나 대다수는 자기 일에 바빠 ‘재밌네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성의 없는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또 30대 중반의 혈기를 감당하지 못해 더 잦아진 술자리의 피로를 견디느라 몽롱한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나는 기자로서 쓰는 글쓰기 리듬을 바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어차피 나는 문장가가 아니므로 하나의 실마리만 잡으면 떠오르는 대로 쓰자는 것이었다. 솔직하고 간결하게 쓰려고 하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나 위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적당히 물이 오른, 간결한 척 하는 멋 부린 문장을 구사하고 있었다. 좀 더 무뚝뚝하고 수사가 적은 문장을 쓰자고 생각했다. 이 결론에 도달하고 나름대로 체화시키기까진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나는 여전히 기사도 아니고 평론도 아닌 애매한 형태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편집자가 제안한 ‘러프 컷’이라는 기명칼럼은 나에게 탈출구를 제공했다. 그때 에세이 형태로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쓴 평론이고 내가 생각한 것이며 내가 느낀 것이다, 라는 태도로 텅 빈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대했다.

<친절한 금자씨>를 봤을 때 나는 박찬욱의 영화 가운데 가장 매혹되었으면서도 도대체 그 영화의 정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영화 평을 쓸 때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느냐는 매우 중요한데 나는 그냥 내 느낌으로 갔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나자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박찬욱은 어떤 분류로도 묶이지 않는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박찬욱의 족보 없어 보이는 서사와 스타일에 대한 부연설명이 들어간 다음, 이어지는 문단에서 영화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복수는 예정돼 있고 금자도 승리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야기는 대결 구도가 되지 않으며, 복수의 대결 과정보다는 복수의 본질 그 자체가 질문 거리로 떠오른다. 복수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복수의 실행이 안겨주는 쾌감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며 그게 실은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당연히 클라이맥스는 일종의 안티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상승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가라앉는 감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만든다. (중략) 

바로 이것, 어떤 목표지점을 향해 가는 듯하다가 막상 다 와서는 왜 굳이 여길 와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이 이 영화의 유머이자 주제다. 이는 대다수 상업영화와는 반대되는 태도의 결과물이다. (중략)대결 구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복수담의 김을 빼고, 영웅의 활약을 볼 거라고 예상했던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다양한 측면을 잡아내면서 인생사의 복잡다단한 본질, 사적인 복수를 국가라는 기구가 대신 집행하게 된 오늘날의 삶에 필요한 윤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단, 농담처럼 묻는다.(중략)
악인을 처벌하는 대신, 악인을 처벌하는 우리의 자격을 묻는 듯이 보이는 이것을 정치적으로 냉소적인 시점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다. 또한 박찬욱이 너무 일찍 탈 서사의 모험에 뛰어들어 구체적인 현실 대신 추상적인 회화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중략) 그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적 대립 구도로는 풀어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분노와 절망을 시각화했다. <올드보이>에선 운명적 고리에 매달린 두 남자의 불우를 얘기하면서 동시에 근친상간을 통한 가족의 파멸이라는 금기시된 소재를 스팩터클화했다. <친절한 금자씨>에선 우리가 누구나 악이라고 여기는 존재에 대해 섣불리 단죄도, 청산도, 용서도 하지 못한 이 시대의 불우를 스크린에 옮기고 있다. (중략)

그 다음엔 순수 영화의 즐거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금자가 손수 만든 케이크를 들고 귀가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의 육중한 질감은 동시대의 한국영화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그 장면 직전에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준 뒤에 금자가 귀가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지만 화면 배경에는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다. 공포영화적인 설정에 매우 시적인 화면이 꾸며지면서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시정이 넘치는 정서를 자아내는데, 그때 금자를 연모하는 연하의 남자가 금자를 따라오며 가볍게 흥얼거리듯 노래를 부른다. 빨간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는 금자의 뒤에서 남자는 남일해의 흘러간 유행가 ‘빨간 구두 아가씨’를 부른다. 불길함을 경쾌하게 제시하는 이 장면의 톤은 언어화할 수 없는 금자의 삶, 또 그녀와 비슷한 운명에 처한 이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농담 같은 것이다. 그녀는 걷는다. 눈 오는 길을, 구두소리를 내며,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손에는 자신이 손수 만든 케이크를 들고. 그녀는 그것을 그녀의 딸과 함께 먹을 것이다. 딸은 골목길에서 금자를 기다리고 있고, 두 모녀는 이윽고 만난다. 그리고 케이크를 먹는다.

(중략) 그 이미지들의 곳곳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며 불우하다고 느끼는 자신의 어떤 감정의 순수한 결정체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영애가 연기하는 금자의 숱한 표정 변화에서, 그녀를 지나치는 주변 인물들의 간략한 캐리커처에서, 금자가 직접 주관하는 복수의 의식에서, 무엇보다 특정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숱한 반응 화면 클로즈업에서, 분노와 좌절과 절망을 오가는 이 시대의 공기를 증류해서 포착한 추상적인 감정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절대 선과 절대 악의 이분법은 무너졌다. 여전히 대립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과거와 같은 선명한 대립각은 잡히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에 대한 환멸만이 증폭되고 있다. (중략) <친절한 금자씨>는 스스로 가늠해도 헤어 나올 길 없는 윤리의 미로에 갇힌 인간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다. 굳이 아부하지는 않는 채,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하고 해소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이 시대 대중들에게 격하지 않은 어조로 잠시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가져볼 것을 권하는 영화다. 그 과정 끝에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조용히 가슴 한 편이 먹먹해지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 박찬욱의 모험은 큰 도덕이 아닌 작은 도덕을 파고들고, 환유의 추상화 솜씨로 이 시대의 정서를 포착했다. 이것이 이 영화를 보고 찜찜해졌던 이유이며 거듭 따져보니 긍정하게 된 슬픔이었다.”

원인과 결과의 명확한 서사 고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꾸며진 듯한 인공적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박찬욱의 스타일에 대해 호의적으로 접근한 이 글은 말로 잘 잡히지 않는 이미지의 물질성에 대해 지면이 허락하는 선에서 열심히 묘사해보려 애쓴다. 동시에 그게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어떤 윤리적 태도의 반영은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긍정한다.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동안에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조우한 배우 오광록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이 글에 대해 더듬거리며 품평했다. “당신 그 평론, 첫 문장이 죽였어. 이게 도대체 뭔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 다음도 괜찮았어. 다 말이 되던데 그래.” 부디 그의 칭찬이 술에 취해 한 방언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인상을 파고들어 논리와 감성의 덩어리로

특정 영화에서 어떤 핵심적인 장면이 인상적으로 뇌리에 박히면 글을 쓰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 않을 경우, 흔히 말해 명장면이 없는 영화일 경우에도 전체적으로 떠오르는 핵심적인 인상이 있으면 쓰기 쉽다. 둘 다 아니면 쓰기가 무척 어려운데 다행히 이제 대학선생인 나는 굳이 나를 친구로 원하지 않는 그런 영화에 대해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앞서 말한 특정 장면이 뇌리에 꽂힌 경우로 허우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도 생각난다. 이 영화는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대만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많은 이들이 왜 이 영화가 오즈의 영화를 기리며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카페 뤼미에르>는 자기 스타일로 오즈 야스지로에게 존경을 바친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다. 나는 그걸 이 영화에 나오는 밥을 먹는 장면에서 찾았다.

오즈가 영화를 만들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 시대에 과년한 처녀가 시집가는 문제는 더 이상 집안 부모의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니다. 혹 부모가 원하더라도 자식이 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자식 세대가 부모만큼 예민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카페 뤼미에르>의 여주인공 요코는 대만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와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딸이 임신한 것도 경악스러운데 애아빠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 그의 부모는 망연자실하다. 벌이가 신통치 않은 작가인 요코는 일본인 청년 하지메와 친하게 지내는데 그는 고서점 주인이며 전철소리에 빠져 틈만 나면 소리를 채집하러 다닌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특별한 연애감정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요코의 남자관계와 부모관계를 담백하게 보여주며 별다른 굴곡이 없는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내가 이 영화에서 끌린 것은 두 장면이다. 인용해보겠다.

“요코가 몸살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녀를 간호해주던 하지메는 자신의 컴퓨터에 입력된, 층층이 겹쳐진 전철과 그 전철 안에 아이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준다. 요코는 그 그림에 탄복한다. 이것이 이들 새로운 세대에게 매혹을 주는 세상의 개념인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 있는 듯이 전철 안에 편안하게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바깥세상의 기계화된 질서의 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 세대의 익명적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시대에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생활을 찍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오즈 야스지로가 일일 드라마 같은 내용의 줄거리 흐름 사이에 문득 끼워 넣은 도심 곳곳의 풍경이나 가정의 소품을 찍은 화면만으로도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허우샤오시엔에게 그런 호흡으로 이 젊은이들의 삶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그는 요코와 하지메가 지내는 일상,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자료를 찾고 소리를 채집하는 그 모습을 찍는다. 그 채집의 와중에 찻집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쉬는 그들의 휴식 같은 기분을 찍는다. 아마도 요코의 부모 세대와 같은 입장이었을 허우샤오시엔 감독에게는 이것이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찍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

이것과 더불어 내가 끌린 것은 여주인공이 뭔가를 먹는 장면이다. 다시 인용해보겠다. 

“(중략) <카페 뤼미에르>에서 역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뭔가를 먹는 장면이다. (중략) 영화의 초반 장면, 오랜만에 고향 집에 온 요코는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그녀는 밤늦게 일어나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밥을 먹는다. 그때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을 얘기하듯이 무심하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린다. 요코의 어머니는 다소 놀라지만 요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요코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뭔가 딸에게 충고를 하라고 다그치지만 아버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다. 그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인생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를 모른다. 나중에 요코의 부모는 딸에게 뭔가 말을 할 작정으로 도쿄에 있는 요코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부모의 결정을 들은 요코가 처음 하는 말은 ‘니쿠자카’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쇠고기와 감자로 만든 이 음식을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왔을 때 요코는 맛있게 먹는다. 요코의 좁은 집 방안에서 이들 세 식구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며 음식을 먹고 있다. 딸의 장래를 염려하면서 그녀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함께 밥을 먹는 것뿐이다. 이 장면에선 어떤 의미심장한 대사도 오가지 않지만 그런데도 그들의 마음은 전해지는 것이다.

(중략) 배달 온 초밥 값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울 만큼 변변치 않은 경제적 형편을 지닌 딸이, 이웃집에게 간장 같은 것도 꿔가면서 사는 딸이, 특별한 직업도 친구도 없어 보이는 딸이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데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딸이 사는 집에 들러 물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싸온 반찬을 놓고 밥을 먹는 것뿐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다다미방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로, 좁은 방 내부에서 고정된 카메라로 응시하는 이들 가족의 밥 먹는 정경은 다른 첨언이 필요 없는 감동을 준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일상의 흘러가는 순간에 특권적 강세를 찍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오즈 야스지로의 정신을 또 다른 차원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승화시킨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생활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찍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가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을 건드린다. <카페 뤼미에르>를 보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아울러 허우샤오시엔의 이전 영화들도 함께 보고 싶어진다. 그야말로 지나간 좋은 것에서 새로운 좋은 것을 뽑아낸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마감 없이도 쓰는 ‘글쓰기 3장’이 올까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멋 부리지 말고 간명하게 쓰자는 것은 내 글쓰기의 기본태도이다. 물론 (지금 써놓고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내 태도는 글을 과시적으로 쓰는 내 허영기로 번번이 변절된다. 나도 모르게 겉멋에 취해 자판 두들기는 속도가 막 붙으면서 튀어나온 수사적인 문장 부스러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솔직하고 명확하게 쓰자는 원칙적 태도만은 잊지 않으려 한다. 그 다음, 평론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내 태도는 작품의 표면에서 얻은 인상의 실마리를 될 수 있으면 끈질기게 파고들어 뭔가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알량한 지식으로 작품을 재단하지 않고 미리 심층을 설정해놓지 않고 표층을 부단히 복기하면서 어떤 덩어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 그것이 비단 논리의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감성의 덩어리도 끌어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이는 일본의 문예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오즈 야스지로>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진 생각인데, 이를테면 오즈의 영화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이미지들만을 모아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지향하려고 했던 태도를 그는 이미 오래 전에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써놓고 보니 역시 허망하다. 말로 뭔가를 붙잡으려는 시도에 형편없이 실패하는 주제에 애초에 이 청탁을 받아들인 것부터 재앙이다. 하지만 이런 좌절과 사소한 성공의 데이터를 셀 수 없이 내 컴퓨터에 문서파일로 저장해놓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문서들은 내가 특정 영화의 특정 장면들에서 자극받아 하나의 전체를 그려보려고 했던 주제넘은 시도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당분간 이 작업을 멈추게 될 것 같지 않다. 마감의 독촉은 저승사자의 전갈처럼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미 거기에 중독돼버려 마감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글쓰기 경력의 2장이다. 아마도 3장은 마감에의 압력이 없어도 스스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단계일 것이다. 그런 날이 올지 스스로 자문하고 있다.

 
글 김영진 1965년생. 중앙대학교 영상예술이론 박사. 영화평론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필름2.0>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밖에 중앙대, 서울예대, 서강대에서 강의했다. 2006년부터 명지대 영화 뮤지컬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미지의 명감독들>,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평론가 매혈기>, <코스타 가브라스> 등이 있으며 영문판으로 <이창동>, <박찬욱>, <류승완> 등을 냈다. 그밖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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