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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어느 언어 유랑자의 침묵

by 아프로뒷태 2011. 3. 8.

 

 

나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가요?

나는 언어가 없습니다.

나는 언어를 잊어버렸습니다.

나는 언어 없는 유랑자입니다.

나는 잠시 타인의 언어를 빌려 쓰는 일을 할 뿐입니다.

지금 현재 나에겐 나의 언어가 없습니다.

 

언어가 없다니깐요.

그런데도 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어가 없는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존재하기 위해 언어를 세우는 자가 언어가 없다니요.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언어가 없는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너에게 물을 수 없습니다.

언어가 없는 자는, 아프다고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언어가 없는 자는, 유일하게 금기의 언어를 갖고 삽니다.

침묵.

그렇습니다.

침묵이라는 언어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언어가 없는 자는 기억으로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억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나는 나를 기억하는 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나를 기억하지 않는 자와는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한 두 명씩 사라져갈수록

나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금기가 생김니다.

 

나의 기억이 나를 부릅니다

나는 안개 속으로 걸어갑니다.

나는 그곳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누구냐고 물으신다 해도,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신다 해도,

나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나는 안개 속에서 계속 걸어갈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대화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하여, 언어를 잊어버렸냐고 묻는다면 나는 안개꽃을 내밀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언어가 없어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 나의 언어가 있다지요.

     우린 서로가 특별하다고 믿었지만, 

     특별했던 기억은  알고보면, 

     상투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까마득한 벽과 마주 앉아 너를 부릅니다.

 너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너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나의 기억에서 언어가 실타래를 풀듯 도르르 흘러나옵니다.

그럼에도 너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모두가 기억할 때,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가슴에 품었을 때, 나는 가슴에 뭍었습니다. 

모두가 화려함을 쫓았을 때, 나는 수수함에 머물렀습니다. 

모두가 나아갈 때,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어도 가까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삶의 비린 내가 납니다. 

 

나에게서,

너에게서,

우리는 특별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상투적이고 천박한 만남의 기억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천박한 언어와 천박한 사고로 우리는 서로를 기억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만 있다고 믿었지요.

 

 

 

 

너는 아직도 고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미 천박하다 못해 비천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고고함을 잊었습니다.

 

나는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광장에서 고고함을 유세하면서도 골목길의 한모퉁이에서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너에게 내가 이제 무엇을 말할 수 있나요?

안녕이라고 말하기엔, 삶이 너무 아깝습니다.

 

 

 

 

 

 

 

나는 입을 다문 나에게 네가 훔쳐간 언어를 달라며 안개를 내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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