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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언어를 잊어버린 너에게 봄비가 쏟아지다.

by 아프로뒷태 2011. 2. 27.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에도 비가 내렸다.

오후에도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번도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살짝 창문만 열면 보였을 텐데......

행동하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이 따르지 않았나보다.

 

냉장고를 열고 빤히 쳐다보았다.

층층이 오렌지빛을 받은 사물들이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가 부랴부랴 박스에 담아 보낸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그 어느 것보다 풍요로워 보였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손을 가져가 플락스틱 통을 꺼낸다.

며칠째 그녀가 보낸 풍요로운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먹고 있었다.

 

이것 한입, 저것 한입,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지금 몇 시인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비는 왜 아직도 내리고 있는가?

 

그제서야, 나는 창문을 열었다.

 

 

하루종일 논문을 쓴 것 같은데,

논리는 어디로 갔는지 횡설수설한 흔적만이 모니터에 가득했다.

벌써 몇 번이나 논문을 다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 짓을 왜 해야 하느지, 이 짓을 잘 하고 있는지, 자문했다.

그러나 도통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나란 사람은 답을 요구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사람은 정신적 쇼크를 아주 크게 당하면, 그 충격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가슴에 충격을 안고 살면, 관성처럼 그 어떤 일에도 무덤덤해지게 된다.

 

어허, 이거 큰일이로세.

 

나는 삶의 언어와 죽음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밥을 먹는 순간에는 '맛있는 밥', '눈물의 밥', '추적추적한 밥', '삶을 흔드는 밥' ...... 다양한 언어로 밥을 표현해야 하는데, 밥을 표현할 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언어로 옷을 짓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나의 언어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실타래를 어디에서 풀어놨길래 모두 사라졌을까?

 

 

 

그 어떤 상황도 번뜩이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어버렸다.

 

언어를 잃어버린 자는 관찰이 필요하다.

나는 바닥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빗소리, 따딱따딱.

바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자동차 엔진소리, 부으으으.

멀리 나를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무릎에 턱을 괴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그래, 나의 일은 생각하는 것이고, 쓰는 것이다.

남의 언어를 탐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를 과시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빗소리를 참 좋아했던 소녀가 떠올랐다.

텅빈 집의 방바닥에 엎드려 라디오를 들으면서 빗소리를 그리던 소녀.

그 소녀의 꿈을 잊어버렸다. 

오래전 그 소녀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후,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   

 

대신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쓸데 없는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과 노동력을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그 댓가로 돈을 받아, 밥을 먹고,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누리고 살아가는데

전혀 쓸모없는 짓을 반복했다.

나는 왜 소녀의 기억을 지웠는가?

그 대신 왜 어떤 이의 기억을 채웠는가?

 

때론 사람이 사는 일에 있어서,

돌아보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가?

 

정제되어 있음으로 인해, 괴로운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왜 알면서도 삶의 언어와 죽음의 언어를 잃어버렸는가.

언어를 잊어버려 쓰지 못하는가?

 

그래도 다행이다.

버려진 소녀가 오늘 너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너의 집 창문을 두드렸다.

너에게  빗방울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을 걸었다.

 

너는 창문을 열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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