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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승리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by 아프로뒷태 2014. 3. 24.

 

인류최고의 발명품, 도시의 미래

 

- 「도시의 승리를」 읽고 -

지난 8월초 나는 딸애의 휴가 기간을 맞아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의 서울에 대한 인상은 이랬다.

『서울은 언제 봐도 정신없는 도시다. 임립(林立)한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빌딩 숲 사이로 개미같이 사람들은 한눈 팔 새라 떼로 몰려다니며, 자동차들은 밀물 듯이 사방팔방으로 흘러가는 양태를 보노라면 심장이 뛰고 숨이 턱에 차오름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도시체질은 아닌 것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 빌딩도 많고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고 노점상도 많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여유 없고 긴장된 모습들. 잠깐 거쳐 온 서울역 대합실의 북적대는 풍경만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날 지경인 것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首都)다. 수도(首都)란 첫째의 도시라는 뜻이니 으뜸의 대도시임이 분명하다. 대저 어쩌자고 도시가 이렇게 팽창돼 가는 것일까. 대한민국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보도를 불과 얼마 전에 읽었다. 뿐 만인가. 정치, 사회, 산업, 경제, 자본, 교육, 문화 등 인간생활의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은 굳이 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만인이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찍이 60년대에 소설가 이호철이 그 놀라운 통찰력으로 「서울은 만원이다」라고 선언하였지 않은가. 그럼에도 서울은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꾸역꾸역 불가사리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불사조의 공룡처럼.

 

이런 도시를 과연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인가. 내가 생각건대 도시란 사람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육체를 타락시키며 삶을 황폐화 시키는 몹쓸 블랙홀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를 예찬하고 격려하고 날로 번영하고 성장하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학자가 있다. 더불어 <서울은 혁신의 집합소>라며 더욱 더 분잡하고 경쟁하며 역동적으로 도시를 개혁해 나가라며 부추기기까지 한다.

 

미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며, 미국의 공공정책 핵심 싱크탱크인 맨해튼 연구소(Manhattan Institute)의 수석연구위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이다.

그는 최근작 「도시의 승리」라는 책을 통해 도시의 흥망성쇠를 조망하고, 도시가 안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에 천착(穿鑿), 난제의 공론화를 이끌며 해법의 제시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는 도시에 대하여 도발적이지만 매우 친근한 수사(修辭)를 구사한다.

「도시는 흥미롭고 중요」하다는 그의 발언의 진의를 따라가 보자.

도시의 「모든 번화가에는 뭄바이의 슬럼가 같은 곳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가깝게 붙어서 사는」기묘한 융합이 있으며,

도시란 「각양각색의 모험가들이 구슬과 모피를 교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모인 무역촌」이자

「같은 관심을 가진 친구들을 찾을 수 있게」해주는데다

「더 쉽게 짝을 찾게 해주는 결혼 시장」이 곧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시가 오로지 흥미 있고 꿈과 야망이 있다고만 믿어서는 안 된다.

도시는 여전히 더럽고, 가난으로 신음하며, 범죄가 만연하고, 질병과 복잡한 교통 등으로 사람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 터에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하니 이 아니 황당하고 기막힌 말이더라 말인가.

하긴 우리 속담에도 「사람은 나면 서울로, 말이 나면 제주도로」라며 도시로 나가 출세하고 삶의 터전을 일구라며 일찌감치 가출을 독려해 온 유산이 있다.

 

도시가 매력적임을 우리의 선조들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래도<도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복잡과 혼돈」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혼잡하니 길을 걸어도 어깨를 서로 부딪치는 불편과 불쾌감이 따른다.

자동차가 많으니 도로가 복잡하고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많으니 날로 환경이 나빠지며 숨쉬기가 거북할 지경이다.

땅은 좁은데 빌딩이 많으니 좁은 공간에 인간이 밀집되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한갓 일벌레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거늘 이런 도시를 글쎄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에드워드 글레이저」그에게는 휘황찬란한 면류관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도시에 대한 그의 찬양과 믿음에는 추호의 의심이 없어 보인다. 「도시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도시란 무한한 가능성이고 희망이며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라고 지칭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면 사물의 존재가치도 이처럼 달라지는 것인지 하여튼 그가 내린 도시의 정의를 음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다.

 

사람들은 「경제적 신분상승의 꿈」을 안고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는 도시로 모여 들며, 「도시들이 가진 경쟁, 연결, 인적 자본」에 대하여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것의 가치」를 깨달으며 「막히지 않는 정보의 흐름」에 미래를 의탁한 채 복작대며 궁극적으로「도시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도시의 승리>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도시가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도시가 성공의 상징으로 가난한 이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시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나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몰리는 나머지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극단적 빈곤의 중심지가 생길 수 있」음을 도시계획 설계자나 정책입안자들은 통찰하여야 할 것이다.

도시는 「인간에너지의 보고」라고 저자는 말한다.

「최고의 도시들에는 빈손으로 시작해도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도시는 번성하기 위해서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와서 그들이 협력하면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인적 자본 없이 성공한 도시는 없다. 」

「인적자본은 아이디어가 기계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산업시대의 종언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아이디어는 혼잡한 환경(도시) 속에서 더 쉽게 확산된다.」

「개미 집단이 홀로 사는 곤충들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일을 해내는 것처럼 도시는 개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룬다. 도시는 특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인 지식의 공동 생산이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배운다.」

「우리 인간은 주로 동료 인간들이 내보내는 청각, 시각, 후각 단서들을 통해서 학습 한다.」

「우리 같은 사회적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은 상호 학습 능력이며, 우리는 일대일로 대면할 때 더 깊고 철저히 학습 한다.」

「다른 사람들과 지근거리에 머물러서 얻는 이점은 정말로 크다.」

「도시의 혼잡성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를 관찰함으로써 얻는 새로운 정보의 지속적 흐름을 창조한다.」

「혼잡한 도시는 고객과 납품업자, 근로자와 기업, 기업인과 금융인들을 연결해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는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에서부터 지금의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룬 혁신적인 발명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도시란, 직접적 부딪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 체취, 취미, 습관 같은 기술에 아무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마법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 부딪힘은 그만큼 인간에게는 소중한 삶의 향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 집중화는 마술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자칫 혼란과 혼돈으로 평가하기 십상인 도시를 이처럼 유익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의 혜안은 역시 대가답다 할 것인가.

문제는 도시가 발전하면 발전하는 만큼의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주거의 문제, 산업용지의 문제, 환경파괴와 삶의 질 저하의 문제 등등. 이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도시가 쇠퇴 몰락을 자초하거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음에 착안하여 그는 「도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인위적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규제와 억제를 통해서 보다는 적극적인 개발과 「위대한 도시의 발전을 유도하는 변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현명하게 정책을 선택한다면 우리 앞에는 새로운 녹색 빛깔의 도시 시대가 놓이게 된다. 도시 변두리의 자동차 중심 생활이 앞으로도 분명 계속되겠지만 도시 중심 인근의 밀도 높은 개발도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시내 중심부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을 얻을 수 있는 더 높은 건물들을 짓더라도 그것을 환경의 지속성과 좋은 전망과 적극적인 거리 생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을 수 있다.」

저자는 시골마을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도시에 대한 예찬론을 설득력 있게 쏟아냈다.

어떻게 보면 도시는 우상화된 꿈에 현혹된 가난한 사람들이나 정치적, 경제적 야망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경쟁자들의 치열한 암투로 뒤범벅된 삶의 현장이 아닌지 모른다. 살아남으려는 자와 쓰러뜨리려는 자들이 육탄전을 벌이는 도시가 어떻게 승리를 구가할 수 있는지 아직도 나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결코 감성적 레토릭으로 도시와 도시인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이나 공학과 경제 문제를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고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사회문제로 접근한 저자의 방식에는 호의를 느낄 만하다. 그런 만큼 반론도 적지는 않을 듯싶다.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뉴욕에서 인도 뭄바이까지 전 세계의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하며 도시 성공과 인적자본의 관련성, 질병과 교통, 주택정책, 환경문제 등 고질적인 도시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도시문제 해법에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갈등, 스프롤(도시확산) 현상, 도시빈곤과 소비도시의 부상 등 갖가지 쟁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지은이는 이에 정면 돌파의 의지를 보인다. 정면 대응을 통해 세계화와 정보기술의 시대인 오늘날 유효한 도시의 성공방정식을 도출하고, 가장 인간답고 건강하고, 친환경적이며 문화적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 바로 도시임을 강조한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나 연구자가 아니면 무척 고통스런 인내를 감수하며 읽어내려 가야 한다. 책의 면수도 적지 않다(542쪽). 교양을 쌓는다는 견지에서라도 문외한이 읽어내기엔 벅찼다는 게 솔직한 독후의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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