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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노조 아님' 후폭풍…"야자·촌지 부활" 위기

by 아프로뒷태 2013. 10. 24.

전교조 '노조 아님' 후폭풍…"야자·촌지 부활" 위기

학생 인권·복지·자치·학교 민주화 가치 담은 '단체 협약' 무효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 14년 만에 '법외 노조'로 돌아갔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24일, "전교조는 앞으로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쓸 수 없다"고 통보했다. 헌법이 보장한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은 이렇게 행정 관청의 일방 '통보'로 일시에 박탈됐다. 긴 시간 공들여 만든 17개 시·도지부의 단체 협약과 진행 중인 단체 교섭도 사실상 '무효'화 됐다.

단체 교섭권 박탈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전교조와 교육부(청)가 맺어온 단체 협약엔 교사 근로 조건과 후생 복지에 관한 규정 그 이상이 담겨 있었다. 낡은 교육 관행을 타파하고, 학생 인권과 학교 자치를 실현하겠다는 양측의 '구체적 약속'이 담긴 문서가 단체 협약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교조는 '노조 아님'이다. 전교조 단협이 사라진 학교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억압적 학교로 회귀 우려…"강제 야자 부활할 것"

 

 

다음은 전교조 경기 지부가 지난해 11월 28일 경기도 교육청과 체결한 단체 협약의 일부다. 30페이지에 가까운 전체 단협 중 상당 면은 학생 인권과 복지 향상, 안전 및 학생 자치 활동 보장, 학교 민주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36조 4항) 교육청은 각급 고등학교가 정규 교육활동 시간 이전(0교시)에 조기 등교를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도록 한다.

* (36조 7항) 교육청은 강제적, 획일적, 일제식 야간 보충 학습과 자율 학습을 실시하지 않도록 한다.

* (37조) 교육청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어떠한 형태의 우열반·특별반도 편성하지 않는다.

* (57조 5항) 교육청은 여학생이 교복을 치마와 바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 착용할 수 있도록 한다.

* (57조 6항) 교육청은 교육 활동과 관련이 없는 행사에 학생을 동원하지 않도록 한다.

* (57조 7항) 교육청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각종 경시대회를 학생·학부모·교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 (59조 6항) 교육청은 고층 유리창 등 위험이 따르는 청소는 학생에게 시키지 않도록 한다.

전교조는 이처럼 학생 생활을 구성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교육부(청)와 단협을 통해 논의해 왔다. 단협을 만든 후엔, 정해진 기간 마다 단협 이행 여부를 양측이 공동으로 점검하기도 했다. 일선 학교가 단협을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 여부를 허위 보고하면, 교육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행정 지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

 

ⓒ연합뉴스

따라서 단협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컸다.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교사들도 조기 등교 강제, 야간 자율학습 강제 등 억압적인 교육 문화가 학교 현장에서 상당 부분 사라진 데엔 전교조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교조 소속이 아닌 ㅁ 고등학교 교사 이현미(가명·42) 씨는 "그동안엔 학교장이 야간 자율 학습이나 보충 학습을 강제하고 싶어도 교육청과 전교조 눈치를 봤다"며 "전교조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가입하진 않았지만, 전교조 단협이 학교 현장에 미친 긍정적 효과는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선생이 말하면 무조건 따르라', '학교장이 말하면 무조건 따르라' 식의 분위기가 활개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사립 학교 인사·재정 비리, 이제 누구 손으로 척결?

단협은 학교장의 독단적인 인사나 회계 부정을 감시·견제하는 기능도 했다. 때마다 터져 나오는 사립 학교 인사 및 재정 비리 문제를 근절하고,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들도 다수 담겨 있다.

* (17조) 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은 인사 행정에 관하여 식견이 풍부한 소속 공무원과 지역 인사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한다. 교육청 인사위원회의 위원 추천시 전교조가 추천하는 1인을 포함시킨다.

* (39조) 교육청은 학교장의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을 분기별로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한다. 교육청은 학교 회계 예산 및 결산 내역 등 재정 운영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도록 한다.

* (21조) 교육청은 각급 학교(사립학교 포함) 비리 관련 민원제기 및 내부고발한 사람의 인권 및 신분을 보호한다. 교육청은 사립학교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인사상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토록 노력한다.

이와 관련,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은 "지금도 교육청과 학교장의 인사 비리가 만연하다"며 전교조 단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교장에게 잘 보이는 교사들에게 더 좋은 근무 평정을 주고, 문제를 지적하는 교사들에겐 안 좋은 보직을 주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며 "그런 경우, 전교조 선생님이 포함된 민주적 인사위원회를 통해 제동을 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교조 교육 개혁 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촌지 근절 운동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 비해선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오가는 돈 문제가 많이 사라졌다지만, 지금도 '촌지'가 아닌 다른 형태의 유사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하 대변인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걷어 학년 담임이나 부장들에게 회식비로 쓰라며 주는 돈까지를 불법 찬조금에 포함시킨 것은 전교조 운동의 성과"라며 "앞으로도 학교에 기부한 돈 등이 공식적인 학교 운영위원회 예산안에 잡혀, 쓰임새가 공개되고 통제받을 수 있도록 지속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촌지는 언제든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용노동부가 24일 전교조에 보낸 '노조 아님' 통보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 탄압, 전교조 아닌 교사들과 학생들 권리까지도 침해할 것"

거센 반발을 무릅쓴 정부의 전교조 '법외 노조'화로, 이제 전교조를 학교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할지는 전적으로 각 학교장과 교육감 의지에 달려있게 됐다. 법외 노조가 된 전교조는 교육감이 단체 교섭을 거부해도 노동위원회의 중재 및 제재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전교조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오던 혁신학교 사업과 학생인권조례 운동도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 ㅂ학교에서 일하는 김지용(가명·44) 교사는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해 교사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요구하기는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며 "학교장이 '너는 이제 불법이니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할 것이고, 이에 따라 형성될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는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권리까지 서서히 침범해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진보 교육감이 있지 않은 시·도 교육청 산하 학교에선, 학생 인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펼치는 억압적인 교육 환경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병수 대변인은 "전교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교육청 산하 학교들이 우선 걱정"이라며 "서울의 경우 문용린 교육감 체제로 들어선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표류하고 있다. 조례 통과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바탕에 둔 인권 친화적인 생활 지도 등이었는데, 전교조 법외 노조화로 학교 혁신은 상당 부분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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