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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포기하면, 송전탑이 경기도를 덮친다! [초록發光] '밀양 탄압법' 송주법, 왜 문제인가

by 아프로뒷태 2013. 10. 10.

 

밀양을 포기하면, 송전탑이 경기도를 덮친다!

[초록發光] '밀양 탄압법' 송주법, 왜 문제인가

-프레시안  

 

 

<위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이유진 소설가님이 올린 사진입니다>

 

 

월요일(10월 7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송주법'이 통과되었다. 그 이후 언론들은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 통과됐다고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은 이 법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법을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밀양에서 송전탑에 반대하며 산속에서 노숙을 하고 식사도 거르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법에 반대한다. 그러니 이 법은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 아니다. 어떻게든 공사를 밀어붙이려는 정부가 만든 '밀양 주민 탄압법'이다. 이 법 통과를 빌미로, 공사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치고, 삶터를 잃게 될 것이다. 이미 10월 1일 공사 재개 이후에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병원에 실려 갔다.

밀양 주민들은 왜 이 법에 반대하고 있을까?

밀양 주민들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의 타당성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보상 규정이 시행된다고 한들, 주민들이 입는 피해가 제대로 보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평온하게 살아온 삶터가 파괴되고,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약간의 보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이것이 주민들의 진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보상이 답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고민을 회피하고 '이미 결정된 사업이니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는 군색한 얘기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한 송주법은 내용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아주 졸속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면 피해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 그나마 있는 조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그나마 조사한 자료는 2011년에 한국토지공법학회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송·변전 설비 건설 시 피해 범위와 적정 편입 범위 산출 및 보상 방법 연구>) 정도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는 76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가장 바깥선)으로부터 80미터, 34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으로부터 20미터까지의 토지에 대해서는 지가 하락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물론 주민들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고, 지가 하락 등의 피해 범위는 송전선으로부터 1킬로미터가 넘는 범위까지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통과된 송주법에서는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33미터(765킬로볼트), 13미터(345킬로볼트)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토지공법학회가 제안한 것보다 보상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하승수


둘째, 송주법은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이다. 송주법은 이미 건설된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헌법 제11조가 밝히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기존에 건설된 초고압 송전선들의 경우에도 선하지(최외선에서 3미터 이내)나 철탑 부지를 제외하고는 보상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의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전자파로 인한 피해, 경관 피해, 재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암 발생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호소하는 마을도 있다.

그런데 송주법에서는 '재산적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공사 완료일 이후 2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공사 완료후 2년이 지난 초고압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송주법에서는 765킬로볼트와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 포함시킨 반면, 154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러나 154킬로볼트 송전선의 경우에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는 있지만 피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154킬로볼트 송전선을 아예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졸속적이고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을 무리하게 통과시켰을까? 그것은 밀양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밀양에서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의 필요성,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지금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온 송전선 건설 사업이 큰 저항에 부딪히자, 일단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졸속·위헌적인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의 얘기처럼, 지금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에 대해 따져봐야 할 때이다.

송전선 건설과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투명성, 그리고 객관적 검증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송전선 건설 계획은 한국전력과 정부 관료들에 의해 입안된다. 전기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거친다고 하나, 독립성이 없는 기구이다. 전기위원회 위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위상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소속된 심의 기구에 불과한 위상이다.

반면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및 주 정부별 공공사업규제위원회(PUC 또는 PSC)가 신규 송전선로 건설 신청을 받으면 건설이 아닌 다른 대안들(대안 선로 및 비송전선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대안들에 대해 검토를 한다. "비송전선로 대안"에는 지역 분산형 발전, 수요 관리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주 정부 규제 기관 버지니아 주 기업규제위원회(Virginia State Corporation Commission)는 버지니아 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준 사법 기관으로서 분쟁 조정 신청을 하는 모든 버지니아 주 당사자 및 시민에게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분쟁 조정을 보장하며,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위원회의 검증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장거리 765킬로볼트 송전선 건설 사업인 PATH(Potomac-Appalachian Transmission Highline) 사업이 2012년에 취소된 사례도 있다.

계획 단계를 지나 사업 추진 단계로 오면 더 문제이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20개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된다. 주민들이 말을 안 들으면 토지를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런 법조항을 악용하여 한국전력은 그동안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리고 설득하기 보다는 형식적이고 졸속적인 주민 설명회를 거쳐 사업을 강행하기에 바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밀양, 청도 등의 지역에서도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거쳐 일방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묵살되었다. 주민 설명회는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처음에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 한국전력 등 전원 개발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으로, 악용의 소지가 많은 법이다. 이런 법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력 분야는 민주주의나 투명성 같은 기본적인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분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원개발촉진법 같은 법률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고,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게 하며,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정보가 공개되고 민주적인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만 하더라도 그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이다. 이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애초에는 수도권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고리-북경남-신충북-신안성을 연결하여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이 폐기되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사업을 재검토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765킬로볼트 송전선로의 사업 목적을 '영남 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으로 변경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그러나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캐나다 퀘벡 주의 수력 발전소들과 미국의 북동부 지역 간을 잇는 1000킬로미터 대의 선로처럼 장거리 송전에 주로 사용되는 선로이다. 신고리에서 북경남 변전소까지 90킬로미터를 송전하면서 765킬로볼트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이를 밀어붙여서 막대한 재원을 낭비하고 시골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고 '얼치기 보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송주법은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송전선 관련 분쟁에 대한 해법이 되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정부와 한국전력은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포함된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들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럴 경우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따르면 동해안의 신울진(신한울) 원전에서 출발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이 강원도와 경기도의 많은 지역들을 지나가게 된다. 여주, 이천 등이 포함된다. 이 때 일어날 사회적 갈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 중 일부. ⓒ한국전력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송·변전 설비 건설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발전과 송·변전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바닷가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해서 초고압 송전선과 변전소를 지어 전기를 송전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수많은 갈등과 피해를 낳을 뿐이다.

국가적으로도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보상하려면 막대한 보상 비용이 들어서 경제성이 없다.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갉아먹는 일이다.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부정의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졸속적인 보상 법안의 제정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보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송전선 공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짓이다. 밀양을 지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 그리고 그로부터 나가는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전혀 급하지 않다. 서해안의 당진 화력 발전 단지에서 출발하려고 하는 신규 345킬로볼트 송전선을 비롯한 다른 송전선도 마찬가지이다.

이 송전선들은 수요의 측면에서 고려된 것이 아니라, 발전소 건설을 밀어붙이겠다는 공급 확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요는 대기업들에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대공장의 자가 발전 확대를 의무화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 수요를 억제한 상태에서 송전선 건설은 급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신고리 3, 4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선 건설이 급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신고리 3, 4호기는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핵심 부품(제어용 케이블) 문제 때문에 언제 가동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서해안의 석탄 화력 발전 단지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권과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서해안 일대와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온실 기체 배출 규제 등에 대비한다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신규로 계속 건설할 수 없다. 지금의 정책은 정말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따라서 지금은 '공사가 급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전력 정책 전반에 대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야 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송주법은 그냥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이기 때문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재검토를 해야 한다. 제대로 의견 수렴이나 검토를 하지 않은 법률이기 때문에 다시 논의를 해야 한다.

이제라도 국회는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껍데기뿐인 보상 법안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라는 주민들의 외침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서는 안 될 사건들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

모두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쁘고 힘들고 여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 될 사건들이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먹고 살기 바쁘고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관심만은 가져야 할 사건들이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참여하지 못해도,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사건들이 있다.

 

 

그 중 밀양 송전탑 사건!

 

송전탑 공사를 시행하는 측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싸움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이다.

이번 밀양 송전탑 사건을 지켜보며, 양측의 싸움을 우화로 빗대어 풍자한 일본 에니메이션이 떠오른다.

 

흔히, 일본 에니메이션 작가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작가들도 많다. 그 중에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1994년에 개봉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다. 그는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 TV 드라마 애니메이션<빨간머리 앤>, <엄마찾아 삼만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가끔 초등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도시발전이냐 환경보호냐'를 두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이한 풍경을 두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몰라, 멍한 표정이었는데, 영화와 책을 접목해 토론주제로 논의해 볼 만하기도 하다.

 

다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밀양 송전탑 사건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깐 9월 추석 명절이 있던 주였다. 케이블 TV에서 이 영화를 방송해주었다. 너구리가 서식하는 숲에 인간들이 자연개척이라는 명분으로 찾아와 숲을 파괴한다. 그리하여 너구리들은 살아갈 서식지를 잃는다. 숲의 나무를 자르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자본과 도시 문명의 상징인 아파트 건설로 무분별한 자연파괴가 한창일 때, 사라져가는 것은 숲속의 생명만이 아니었다. 도시태생이 아니지만,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골출신들의 노스텔지어도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숲을 파괴하는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자꾸 숲을 버리고 빌딩을 세우려 드는가? 너구리들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배워 인간으로 변신하고 도시의 곳곳에 잠입한다.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들의 인간 연구 프로젝트!

도시에서 살아가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더 상세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맘 고생 심한 너구리들의 인간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너구리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내 땅 지키기 대작전!!

도쿄 근방의 타마(多摩) 구릉지.

다카 숲과 스즈가 숲, 두 무리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도쿄의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로 인해 그들의 숲이 파괴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흥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다. 또한 시코쿠(四國)와 사도(佐渡) 지방에 살고 있는 전설의 장로 등에게도 지원군을 청하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 시합을 통해 특사를 보낸다.

너구리들은 외부의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으로 인간들의 개발 계획과 공사를 방해하지만 결국 뉴타운 개발 계획 저지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때, 그토록 기다리던 전설의 장로 너구리 셋이 시코쿠 지방에서 온다. 시코쿠의 세 장로는 너구리 변신학을 집대성한 [요괴대작전]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이 작전은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 너구리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품도록 함으로써, 뉴타운 개발 계획을 백지화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자! 과연!!
이후, 이들의 작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제작노트 Pre-Production Note (씨네 21에서 참조)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말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렇게 탄생했다!


1989년 정월

“스즈키 씨.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독자적인 동물인 너구리의 영화가 없다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 만든다고 한다면 시코쿠(四國)가 무대인 너구리 이야기 [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戦)]을 이야기화 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어느 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야심적인 기획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솔직히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프로듀서 업종의 슬픈 특성상 수익성과 기타 세속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됨으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말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스즈키 씨. 우리 너구리를 하자고.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를 하자고.” 라고 말했습니다. [팔백팔 너구리]를 듣고 나는, 나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팬인 만화가 스기우라 시게루 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八百八だぬき)]가 떠올랐다.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좋군요.” 라고 대답하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다음 작품은 [토토로 대 팔백팔 너구리]로 결정이다.” 라고 만족한 듯이 이야기하였다. 일주일 정도 이야기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림까지 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정확히 [마녀 배달부 키키]로 가장 바쁠 때 였었습니다. 바빠지면 눈 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징이지요. (웃음)

1992년 3월

너구리를 하자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진지하게 말을 한 것은 그 뒤로 2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좋겠지요.” 라고 나도 주저하지 없이 맞장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2년 전의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다그쳐 묻듯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좋겠습니까? 그럴 경우에는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가 아니라, [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戦)]이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순 망설이는 듯 보였으나, 그는 사리 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입니다. 무언가 생각한 뒤, 곧 조건 두개를 첨부하였습니다. “너구리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렸으면 한다. 그리고 박장대소를 원한다.” 였습니다.
이번에는 [붉은 돼지]에 쫓기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로서는 기획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기에, “알겠습니다.” 라고 답을 하고, 곧바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지요.(웃음) 예상대로 탐탁치 않은 답이 돌아 왔습니다. “내가 너구리가 주인공인 영화를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내가 만들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기획이 있으면 응원 하겠지만요.”
“그런 말씀 마시고 부탁 드립니다.” 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스기우라 시게루 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를 보여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아 너구리 연구를 추진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음~ 그가 간단히 승낙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 거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습니다.

1992년 5월

시간이 흐른 뒤, 다카하타 감독이 이노우에 히사시 씨의 소설 [복고기(腹鼓記)]를 들고 왔습니다. 이것은 직접 영화의 원작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이노우에 히사시 씨라면 지혜를 빌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몇 번 연락을 취한 후, 이노우에 씨는 우리에게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나와 다카하타 감독에게 수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복고기]를 집필할 당시 모아 두었던 자료를 한번 보겠느냐고 말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너구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다섯 명 정도일 걸요. 너구리의 일이라면 꼭 협력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어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이 자료가 있다는 야마가타 현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볼수록 현대에 있어서의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같습니다.
이노우에 씨의 자료를 가지고 도쿄로 돌아 오는 도중,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너구리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헤이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다카하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쿄에 도착하여, 이 일을 미야자키 감독에게 보고하자, 감독은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헤이케 이야기]에 나오는 무수한 갑옷을 손으로 그리고, 움직이고, 색을 칠하는 어려움이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카하타 감독도 지당한 말이라고 납득하였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영화화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붉은 돼지]가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1992년 6월

“너구리가 주인공인 『헤이케 이야기』는 어떻겠습니까?”
어느날, 다카하타 감독이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드디어 이 기획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격렬했던 사람들의 생과 장렬한 죽음을, 너구리로 바꾸어 집단극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너구리의 변신 이야기와 시대를 현대로 옮겨서, 너구리가 개발에 의해 주거지를 빼앗기는 모습을 연결해 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금 작품의 근본이 되는 이야기가 탄생하였습니다.

1992년 7월

[붉은 돼지] 개봉!
기획은 구체화 되었다. 무대도 타마(多摩)로 결정. 타마 구릉지에 있던 너구리들이 개발에 의해 주거지에서 쫓겨날 지경에 놓이게 되고, 변신술을 부활시켜서, 저항한다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로 그려 보고 싶다. 이것은 현재의 도시에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운명을 그대로 그려 내는 것이 된다.” 라고 하는 다카하타 감독의 생각에 의해, 즉시 타마(多摩) 베드타운의 너구리에 대한 취재를 개시, 9월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

미야자기 감독의 역할 말입니까?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역할상 기획자로 되어있습니다만, 본인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듯이 “나는 기획자가 아닙니다.” 라고 적혀 있지요.(웃음) 위의 그림과 같이 이번에 미야자키 감독의 역할은 독촉 부대입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아군의 가장 후방에 서서 진격이라고 외치고, 우리 편을 격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역을 해 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개봉 시기를 맞출 수 있었을까요?(웃음)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너구리라고 하는 한마디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말하는 쪽도 말을 듣는 쪽도, 주는 쪽도 받아들이는 쪽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웃음)

* 헤이케 이야기 :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와 비슷한 시기)를 열게 된 전쟁으로, 교토의 귀족인 헤이안 집안과 신흥 무사 집안인 미나코토 가문의 전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중반부에도 삽입되는데, 999살을 맞은 하케타누키가 무사로 변해 화살을 날리는 인물이 바로 이 전쟁에서 공명을 떨쳤지만 형의 명령으로 자결을 하게되는 미나모토 요시츠네란 영웅이다. 이 요시츠네에게 자결을 명한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일본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를 연다.

Production Note

사실보다 더 리얼한 너구리 사회 구축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난관은 너구리라는 동물에 대한 전문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너구리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제작진은 도쿄 마치다시의 시민 단체 ‘타마 구릉지 야외 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너구리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1992년 8월부터 6개월간 17개 곳에 이르는 곳을 현장 취재했다. 이 때 찍은 스틸 사진이 729점, 비디오 테이프는 130분에 이른다. 그 외에 너구리와 지역에 대한 자료만도 민화 32권, 너구리 생태 9권, 도감 18권, 지역 역사 7권 등 총 66권의 자료를 검토했으며, 무려 267점의 스토리 보드가 작성되었다.
이는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로 그려보고 싶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의지로, 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사상 최다의 성우진 출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공상적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보통 극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구릉지에 사는 너구리 전체를 둘러싼 군중극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라인으로 특정한 주인공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캐릭터만 해도 25마리에, 등장 씬이 있는 너구리 30마리, 게다가 군중 장면에는 몇 백 마리의 너구리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등장 너구리의 숫자를 세는 것은 불가능한 일. 따라서 이 너구리들을 담당하는 성우들만도 셀 수가 없을 정도여서 결국 출연자들도 사전 녹음과 사후 녹음을 나누어서 진행했다. 70명이 넘는 성우진들을 본 녹음 감독은 “50명이 출연하는 작품은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성우가 등장하는 작품은 처음이다.” 라며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이 많은 성우들 중 일부는 이 작품의 공동 제작사인 니혼 TV 네트워크의 실제 아나운서들이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고.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실사 장면 삽입!!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 주는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역사상 최초로 실사 장면이 삽입되었다는 것. 이 부분은 너구리들이 침을 흘리면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TV 요리 방송의 새우 튀김 장면이다. 이 장면에 실사를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애니메이션에서 튀김 장면을 실제처럼 맛있게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 둘째, TV화면이기 때문에 실사를 삽입해도 위화감이 없고 오히려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위해 튀김 요리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단골 요리집에서 맡았으며, 실사 영화의 조감독이 투입되어 작업 팀 구성에서 화로 설치까지 대활약을 했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내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좀 더 기포가 많게.”, “훨씬 색이 진하게 보이게요. 어차피 먹을 것도 아니니까요, 더 튀겨주세요!”, “한 두개만 넣으면 외로워 보이니까 한꺼번에 다 넣어주세요.” 등 세세한 주문을 했으며, 특별 주문된 20cm짜리 새우가 계속해서 튀김 냄비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OK 싸인이 났다고. 이 날 스탭들 사이에서는 새우 튀김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사용된 CG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CG가 사용되었다. CG로 처리한 부분은 도서관에서 오로쿠 할멈이 젊은 너구리들에게 자료를 보여주며 강의하는 장면이다. 책들이 들어서 있는 서고를 카메라가 부드럽게 들어가는 장면이다. 실사 영화라면 비교적 간단히 촬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배경 동화의 각도가 변해가는 책꽂이를 하나하나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마어마한 일손이 드는 부분이다. 이는 완성된 것을 보는 일반 관객에게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보답 받지 못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카하타 감독은 이러한 것이야 말로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용한 컴퓨터는 ILM(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특수효과 회사)이 [쥬라기 공원]에서 사용한 인디고라는 기계로 니혼 TV 네트워크의 CG부와 함께 작업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해서는 완전히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었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C로는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십시오.” 라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주문을 실행해 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니 쉽게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작업은 1993년 7월에 시작하여, 영화 완성의 며칠 전이라고 하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종료 되었다. 미국은 제쳐두고 일본에서는 CG의 화상을 35mm 필름의 해상도를 만족시킬 퀄리티로 제작하고, 필름에 직접 출력하는 것 자체가 이제까지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시행착오와 피땀어린 결과로 태어난 CG장면!
제발 “CG라니... 도대체 어디서 사용한 거야?” 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로 이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주인공들 까메오로 깜짝 등장!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이 장면!
시코쿠의 세 장로를 주축으로 너구리들은 인간과의 최후의 결전으로 요괴대작전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너구리 대집회를 개최한다. 시코쿠의 장로들과 너구리들이 펼치는 화려한 요괴대작전의 초반 부분을 주목해주시길!!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깜짝 선물이 등장한다. 희한하고 독특한 각종 요괴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틈에 살짝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그 것.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마녀 키키, 붉은 돼지, 우산을 쓴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 등 우리에게 낯익은 애니 캐릭터들이 너구리, 요괴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각종 주인공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어떻게 깨지는가?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만복사(萬福寺)에 너구리들이 설치 한 텔레비전을 곤타가 주먹으로 부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한 제작진의 고심은 실로 대단했다. 브라운관이 깨지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그려내는 것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고, 결국 제작진은 직접 브라운관을 깨보기로 결정했다.
곤타가 부수는 것과 같은 조건을 위해, 주차장으로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 전원을 연결해서 켜고, 그 앞에 비디오 카메라 두 대와 스틸 카메라를 준비한 후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 머리에는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 선수가 입는 복장에, 가죽 장갑을 끼고 금속 배트를 든 제작부의 모씨. 그 주위를 열명이 넘는 애니메이터가 숨을 죽이고 둘러 앉았다. 침묵의 순간, 그리고 펑하며 울리는 소리. 홈런~
그러나 텔레비전은 전혀 깨지지 않았고, 계속된 시도 끝에 쇠방망이를 들고 도전함으로써 간신히 브라운관은 깨졌지만 대부분이 기대했던 폭발도 없었고, 섬광이 튀지도 않았다고.
이에 이 이벤트는 없었던 일이 되고, 여기에 쓰였던 부서진 텔레비전은 제작 기간 중 불단(佛壇) 대신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너구리의 네 가지 모습

기획 단계에서 언급되었던 많은 작품 중에 스기우라 시게루의 만화 [팔백팔 너구리]가 있었다. 기획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꼬마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로 이 작품이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게 아쉽다고 생각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작품 안에 스기우라 씨의 너구리 캐릭터를 등장 시킨다. 그것이 패배했을 때의 너구리 모습. 감독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게스트 캐릭터가 아닌 “주인공 너구리들이 정신적으로 졌다는 기분일 때 자연스럽게 이 모습이 되어 버린다.” 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였다. 결국, 마음 속의 모습이 외견으로 보인다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이디어인 것.
이 발상은 한층 더 확장되어 패배했을 때의 너구리, 기분이 좋을 때의 모습, 일상적인 직립 상태의 모습, 인간들이 흔히 보는 생물학적인 너구리의 모습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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