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자연이 빚어낸 신비롭고 이상적인 공간.

by 아프로뒷태 2013. 8. 25.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의 마음은 그랬다.

그리하여 어떤 날도 감사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든 일들을 대면할 때마다, 최선이 나에게는 삶의 비책이었다. 그러하다 보면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그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선 너무 연연하지 않았다. 결과에 연연하다 보면, 마음이 괴로웠고 병을 얻는 것 같기도 하여,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체력이 요구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올해에 들어 7월까지 별 일 없이 잘 보낸 듯하고 무고함에 감사하였다.

 

하지만 요즘 부쩍 의도하지 않는 일들에 부딪혔다. 그 일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순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라, 체력도 지쳤는지 몸이 좋지 못했다. 검사 결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심신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하루하루는 늘 소중했다.

 

 

이럴 때는 여행이 최선책일 수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럴 수록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 속에서 얻는 것들이 참 많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나는 살아 숨쉬는 일에 진정 행복함을 느낀다.

 

부슬비가 내리는 8월의 여름, 나는 진안 마이산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진안으로 가는 길에 구글맵으로 지리적 감각을 익혀보았다.

 

 

마이산 관광안내소에서 안내책자를 챙겼다. 책자에서 내가 보고자 했던 장소를 탐색했다. 마이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그리고 나도산.

 

 

 

 

 

마이산의 유래에 대해 '진안군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았다.

 

나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빗길을 걸어 멀리 보이는 마이산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는 이산묘가 있었다. 이산묘를 보니, 얼마전에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이승만과 김일성 그리고 김구,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자세히 알아보고자, 돌베개에서 나온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읽었다. 그때 읽었던 글에서 김구선생이 이승만파와 김일성파에서 갈등했던 고민들이 떠올랐다.

 

 

계속 걸어가다보니, 절이 눈에 띄였다. 그런데 초록빛의 산속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빛이다. 절의 지붕이 금빛이다.

 

 

지붕이 금빛으로 도금되어 있다. 금당사. 금색의 절지붕은 멀리 보아도 한눈에 띄였다. 왜 금빛인가? 만복이 깃들으라고 그런 것인가? 천연 금속이면서 오랫동안 역사에서 귀한 물건으로 인정받았던 금. 하지만 금색의 절지붕은 나에겐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간혹 한국에서 만나는 사원중에 금동상나 금빛의 조각품 또는 건축물을 볼 때마다 경외심보다는 씁쓸함을 느꼈다. 도시에서의 탐욕을 벗어던지고 찾은 사원이 더 탐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신앙에 대한 나의 편견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신앙은 숭고한 믿음의 집단이지 탐욕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이산 야영장이 있었다. '마이산 청소년 수련관'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청소년 캠프를 여는 것 같았다. 한 때, 중고등시절에 청소년 수련회를 다녀왔던 기억이 났다. 수련원의 조교가 학생들에게 정신교육을 한답시고, 옆드려바쳐를 시키고 구령을 외치게 했다. 그때 삐끗했던 허리로 정말 많이 고생했었다. 왜 이나라의 교육은 '정신교육'이라는 명목아래, 아이나 어른할 것 없이 체력수련을 하게 시키는 걸까? 이 나라에는 정말 어딜가든 그런 게 꼭 있다. '매들 들어야 정신 차린다'는 스파르타식 교육말이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대로 살게 하면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선택을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금더 걸어가니, 호수가 보인다. 보슬비 내리는 도립공원에서 만나는 호수는 휴일을 맞아 한가로웠다.

 

 

 

매년 이곳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호수길을 걷는 내내 봄날 호수를 둘러싼 만개한 벚꽃의 풍경이 아른거렸다. 영차,영차, 힘을 내어 걸었다.

 

 

 

 

마이산 탑사에 이르렀을 쯤, 암마이봉에서 진귀한 것을 발견했다. 탑사로 가는 길에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 봉우리, 암마이봉이 바로 앞 있는데, 화석암으로 이루어진 암마이봉의 중턱에 금불상이 있었다. 분명 회색빛 암벽 가운데에는 금색의 불상이 있었다. 그래, 분명했다. 암마이봉은 특이한 풍경을 안고 있었다. 어찌하여 그곳에 금불상이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갖고 발길을 앞으로 향했다.

드디어, 마이산에서 볼 수 있는 기이한 탑이 눈에 들어왔다.

 

 

 

 

 

 

 

 

 

 

 

절에 가면, 항상 법고와 범종이 눈에 띄인다. 

이곳 역시 있었는데, 왜 절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절에 가면 항상 있는 것들이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이 네 가지를 사물(四物) 또는 사중사물(寺中四物)이라 하며,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도구이다.

 

 

▒ 범종(梵鐘) - 절에서 쓰는 종을 말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범종각에 걸린 큰 종을 가리킨다.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 법고(法鼓) - 절에서 사용하는 큰 북 - '법을 널리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 그 말에 담겨 있다. <마음 심(心)자로 친다> 들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 목어(木魚) -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법구 - 속을 파내고 그 안쪽의 좌우를 나무 막대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물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 운판(雲版) - 구름 모양으로 만든 쇠판 - 북채 모양의 가는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낸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 종을 만들 때 쇳물을 끓여 만드는데, 이것이 지옥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또 그 쇳물이 식어 종이 되는데, 마치 끓던 쇳물이 식어 시원하듯 지옥에서 고통을 받던 중생들이 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 만큼은 잠시 고통을 잊는다고 한다.

* 북은 소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들짐승 제도와 연결이 된다.

 

▒ 한편 이것을 마음으로 풀면,

범종은 성내는 마음을, 법고는 어리석음과 투쟁심을, 목어는 우울한 마음을, 운판은 들뜨는 마음과 허영심을 다스리기 위해 울리는 것이다.

* 분노에 휩싸일 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열낸다고 하는데, 이것이 종만들 때 쇳물 끓이는 것과 상통한다.

* 축생들은 어리석고 또 싸우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이런 마음들과 북이 연결된다.

* 우울한 마음, 착 가라앉는 마음, 부정적인 마음은 축축한 습지의 수중생물과 연결된다.

* 날짐승들은 들뜨고 사치하는 허영심과 연결된다.

 

 

마침, 비가 내린 탓인지 암마이봉에서 폭포수가 떨어졌다.

 

 

여기저기 80가지의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폭포와 탑이 이루는 절경은 기하학적으로 따지면 수직적 상승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곳 마이산의 자연환경과 돌의 특성을 이용하여 만든 탑은 이갑룡 처사가 30년 동안 쌓은 탑이라고 하는데, 그는 분명 이 탑들과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의 지리와 자연을 이용해서 만든 탑인지 태풍이나 비바람에도 결코 쓰러진 적이 없다고 한다. 탑의 제도 일화가 알고 싶어 '진안군 홈페이지'들러 자료를 찾아보았다.

 

 

돌탑의 사이사이에 끼인 이끼는 탑의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더 뛰어나게 만든다.

 

자, 이제부터 절 안에 탑이 이루는 경치를 감상해보고자 한다.

 

 

탑사안에는 작고 큰 탑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 가운데 비가 내리는 탓인지 실비단같은 하얀 폭포가 낙하했다.

 

 

 

탑이 만들어낸 풍경에 경탄을 금지 못하게 했지만 이 날 날씨로 만들어진 폭포는 더 뛰어났고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라질 듯, 사리지지 않을 듯, 있는 듯, 없는 듯, 마이봉의 설화와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탑의 절경에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 거기에 폭포이 신비로움이 더해져 과연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신선의 놀음마당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암마이봉 한쪽 면에 능소화가 여름날에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을 장식했다.

능소화는 본래, 슬픈 유래를 가진 꽃이었다고 한다.

 

-능소화의 전설-

 

옛날에 복숭아 빛이 도는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궁녀는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의 소화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소화가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 들였을테지만, 소화는 그러하지 못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였겠는가? 그녀들의 시심과 음모로 소화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 하게 되었다. 소화는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렸고, 임금이 오는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임금의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 얼굴을 내밀고 쳐다보며 기다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여름 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상사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하게 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인지라, 초상조차도 치루어지지 않고 '임금을 기다리겠노라'고 애달픈 유언을 남긴 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이듬해 여름...

'소화'가 살았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났는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활짝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 꽃이 능소화라고 한다. 

 

 

나는 다시 은수사에 올랐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수마이봉인가? 암마이봉과 달리, 단조로웠다. 하지만 바위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 아래 있는 은수사는 안개비에 싸워 평온해보였다.

 

 

 

 

 

 

 

 

 

뿌연 안개비에 수마이봉이 기이하게 보였다.

어디선가 신선이 구름 타고 날아올 것 같았다.

 

 

 

은수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탑사를 내려보았다.

 

 

암마이봉에서 볼 수 있는 기이한 흔적이 내내 눈에 띄였다. 그래서 '진안군청'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했다. 이 곳 마이산은 분명, 신천이임이 분명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이 빚어낸 이상적인 공간이 틀림없었다.

 

 

 이곳 마이산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바로 역고드름이었다.

 

 

마이산을 떠나며, 다시 언젠가 이곳에 올 땐 꼭 겨울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눈이 쌓인 날, 이곳을 걸으며 암마이봉, 수마이봉, 그리고 너도봉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다른 묘미는 특산물! 이곳에서 재배된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 일도 여행의 기쁨일 것이다. 자, 맛있는 음식을 먹으로 가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