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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기

춥군, 추울 땐, 러시아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떠오른다.

by 아프로뒷태 2012. 11. 26.

 

춥다. 이렇게 추울 땐, 자신을 더 처절하게 돌아보게 된다. 이 순간의 나를 분석하게 되면서, 똑같은 순간 다른 곳에서의 나는 무엇을 할 지 떠올린다. '레빗홀' 처럼, 나의 의지로 선택되지 못한 또다른 나의 삶을 떠올린다. 알퐁스 도테의 <별>처럼, 추운 날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별이 있을지도 모른다.

 

 

춥다. 이렇게 추울 땐, '또 다른 나' 가 생각날 땐, 먼지 앉은 영화 DVD를 꺼낸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다시 본다.

 

 

 

 

 영화자료 출처-씨네21

 

<십계>와 <삼색 삼부작>의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991년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와 프랑스에 베로니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젊은 여인의 교차하는 삶을 반추해 바라보면서 유럽의 구질서 붕괴와 근대 철학의 몰락, 그리고 그 카오스의 소용돌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휴머니티의 새로운 씨앗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폴란드 출신이라는 변방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90년대 유럽 문명의 대변혁과 가톨릭의 기운이 존재하는 폴란드의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성경을 재해석한 <십계>를 만들면서 현대의 존재론을 사유했던 그의 영상 세계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유럽의 대통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명제 앞에서 휴머니즘의 방향과 인간 연대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사유한 결과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다. 근대주의의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인간의 연대의 끈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며 동시에 이 혼란의 과정에서 인간성의 본류는 어디에 위치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관조적 시각은 뒤에 <삼색 삼부작>으로 완성된다. 영국에서 출시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DVD는 비슷한 시기에 먼저 출시된 프랑스 MK2판과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아나모픽을 지원하는 화면은 키에슬로프스키 특유의 관조적인 우울한 화면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으며, 돌비 5.0을 지원하는 오디오 채널은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을 잘 울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에디션의 장점은 서플먼트에 있는데, 살아생전의 키에슬로프스키와의 대화록과 폴란드에서의 영화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키에슬로프스키-폴란드인 필름메이커>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여, 같이 수록되어 있는 이렌느 야곱의 인터뷰가 도리어 빛을 잃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키에슬로프스키의 단편영화 3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로즈영화학교에서 그의 스승이었으며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 중 하나라고 밝힌 다큐멘터리 작가 카라바츠의 다큐멘터리 <음악가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영화세계가 어떻게 완성되어왔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여름에 북미판도 발매 예정이지만 북미 출시사의 관행을 미뤄 짐작건대 그리 안심하고 퀄리티를 믿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현재로선 영국판이 이 작품을 DVD로 구매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겠다. 사족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불륜-에로영화를 연상시키는 기존 번역제목은 이제 지양하고 <베로니카의 두 인생> 같이 영화 본연의 의미에 걸맞은 새로운 제목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씨네 21 이교동)

 

 

 

 

 



나비로 환생한 발레리나처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990년대가 보여줄 변화의 시작이었다. 과거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느끼고 극영화로 옮겨오면서 카메라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이끌렸던 그는 이제 환상적이고 시적인 양식으로 존재의 수수께끼 같은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얼굴로 태어난 베로니크와 베로니카의 엇갈리고 교차되는 삶을 그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키에슬로프스키를 처음 만난 필자는 영화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다. 이미 그가 가고 없는 지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DVD에 감독의 음성해설이 들어 있을 리 없다. 대신 여기엔 영화 제작 당시 그와 나눈 대화(53분)가 수록되어 있다. “충치가 생기면 이가 아프듯 보편적인 감정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느낀다, 배우가 내면을 충실히 드러낼 때에만 생동감있고 입체적인 인물이 완성된다, 나의 영화는 마음을 열고 봐야 한다” 등 연출과 연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주던 그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제가 ‘삶을 더욱 신중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기 때문에 각자 책임감을 느끼며 행동하라는 뜻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전의 작품 세계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1966년~1988년: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31분)와 단편영화 네편- <음악가들>(10분, 감독 은사의 작품), <공장>(18분), <병원>(21분), <기차역>(13분)- 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또 하나, 주연을 맡은 이렌느 야곱과의 인터뷰(17분)는 그녀의 연기를 잊지 못하는 팬들에게 반가운 선물이다. 감독의 특이한 오디션과 비범한 연출로 인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녀에게서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바로 다른 엔딩을 포함한 15개 버전의 편집본이 존재했다는 것. 그야말로 이야기를 단순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감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감독님, 뭘 그렇게 먹는 거예요?

현장에서의 키에슬로프스키와 야곱.


오후 내내 오디션을 받아야 했어요.

단편영화 <기차역>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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