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동료식)
다름 아닌 ‘꽃게거미’ 수컷의 참담한 비극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짝짓기가 끝난 수컷이 미처 대피를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암컷의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변 초록의 잎새 위에 남겨진 크고 작은 두 마리의 발톱자국이 그간의 처절했던 상황을 묵묵히 어지러운 자취로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미들의 동료식 행사도 보다 확실한 수태를 위한 허용된 희생의 일각이랍니다. 수컷의 생식능력만 가지곤 새 생명의 수태를 위한 준비로서 모자라기 때문이랍니다.
꼭 있어야 할 필연적인 수컷의 죽음은 아니기에 암컷에게 잡아먹히면서도 재빨리 도망칠 수 있다면 단지 그럴 뿐, 대항하거나 역습이란 있을 수가 없답니다. 암컷의 덩치가 더 크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희생적 사태인지 미물들이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위에 사진처럼 초기 발견했을 땐 비록 빠져나갈 수 없게 단단히 붙들린 수컷이라도 회피하기 위해 악착같이 저항하는 다리의 꼼지락거림을 볼 수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진지 불과 몇 분 흐르지 않아 수컷은 움직임도 멈췄을 뿐더러 본래의 제 모습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만큼 암컷 꽃게거미의 먹성은 대단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상식으론 생각할 수 없는 비극이고 패악이라 말할 순 있어도 이보다 더한 집단범죄, 계획범죄는 인간세상 이외엔 사실상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상반된 잣대를 가지고 얻어지는 이익에 따른 판단을 너무도 쉽게, 다분히 자기 주관적으로 쉽게 내리는 존재가 우리들 인간이란 뜻입니다.
결국 죄와 덕이 한 그릇 안에 있는 같은 성질의 것에서 태동된달 때, 인간에겐 최악의 악마적 상황일지라도 저들에겐 육보시의 바라밀은 말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눈으로 잔학함이 분명한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더한 내막적 최악의 상황을 알고 행하고 있는 우리 인간은 꽃게거미에게 뭐라고 탓을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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