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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동료식)

by 아프로뒷태 2012. 7. 19.

 

(거미 동료식)

 

다름 아닌 ‘꽃게거미’ 수컷의 참담한 비극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짝짓기가 끝난 수컷이 미처 대피를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암컷의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변 초록의 잎새 위에 남겨진 크고 작은 두 마리의 발톱자국이 그간의 처절했던 상황을 묵묵히 어지러운 자취로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미들의 동료식 행사도 보다 확실한 수태를 위한 허용된 희생의 일각이랍니다. 수컷의 생식능력만 가지곤 새 생명의 수태를 위한 준비로서 모자라기 때문이랍니다.

꼭 있어야 할 필연적인 수컷의 죽음은 아니기에 암컷에게 잡아먹히면서도 재빨리 도망칠 수 있다면 단지 그럴 뿐, 대항하거나 역습이란 있을 수가 없답니다. 암컷의 덩치가 더 크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희생적 사태인지 미물들이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꽃게거미02.jpg

위에 사진처럼 초기 발견했을 땐 비록 빠져나갈 수 없게 단단히 붙들린 수컷이라도 회피하기 위해 악착같이 저항하는 다리의 꼼지락거림을 볼 수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진지 불과 몇 분 흐르지 않아 수컷은 움직임도 멈췄을 뿐더러 본래의 제 모습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만큼 암컷 꽃게거미의 먹성은 대단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상식으론 생각할 수 없는 비극이고 패악이라 말할 순 있어도 이보다 더한 집단범죄, 계획범죄는 인간세상 이외엔 사실상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상반된 잣대를 가지고 얻어지는 이익에 따른 판단을 너무도 쉽게, 다분히 자기 주관적으로 쉽게 내리는 존재가 우리들 인간이란 뜻입니다.

결국 죄와 덕이 한 그릇 안에 있는 같은 성질의 것에서 태동된달 때, 인간에겐 최악의 악마적 상황일지라도 저들에겐 육보시의 바라밀은 말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눈으로 잔학함이 분명한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더한 내막적 최악의 상황을 알고 행하고 있는 우리 인간은 꽃게거미에게 뭐라고 탓을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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