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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표는 왜 숨어버렸나

by 아프로뒷태 2012. 4. 12.

숨은 표는 왜 숨어버렸나

[창비주간논평] 심판론에 안주하고 진영논리에 갇힌 야권의 아쉬운 패배

 

여론조사도, 출구조사도 빗나갔다. 숨은표를 말하던 전문가들의 예상도 어긋났다. 2012년 의회권력과 행정부권력을 교체하는 두번의 선거 중 한번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획득으로 끝났다. 새누리당이 획득한 승리라기보다 야당이 헌납한 승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국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지도 못하고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다.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의 원흉으로 비난받던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위기 속에서 진화한 반면 민주진보진영은 심판론이라는 손쉬운 카드에 기대었다. 쇄신과 변화는커녕 퇴행을 반복했다. 기대에 못 미친 투표율이 이를 말해준다. 그 결과 끝까지 유보적 태도를 보이면서 숨어 있던 젊은층에게 투표할 이유를 제공하지 못했다. 역대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는 늘 높은 투표율, 특히 젊은층의 적극적 참여 덕분이었다. 투표할 적극적 이유와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때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층도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냈던 것이다.

숨은 표를 끌어내지 못한 무능과 오만

두어달 전만 하더라도 젊은층의 정치적 관심과 선거참여 의지는 매우 높았다. 지난 2월 2040세대를 대상으로 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이전보다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20대는 59.7%, 30대는 49.9%에 이르렀다. 이를 떠받치고 있던 것은 정치적 효능감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의 참여가 정치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이 63.2%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난 2개월 동안 민주진보진영이 보여준 행태는 무능과 오만 자체였다. 이미 준비가 된 2040세대를 다시 숨어버리게 하고 결국 투표장으로 끌어오지 못한 무능,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이 층은 야권지지 표밭이라는 오만이 낮은 투표율로 나타난 것이다.

야권연대도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이미 이런 틀로 치른 바 있어 신선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야권연대를 채울 내용, 즉 아젠다와 전망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더 후퇴했다. 관악을, 성남중원 후보 사퇴 파동은 진보진영의 자기성찰, 자기검열이 얼마나 안이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13석을 획득한 통합진보당도 외형적으로는 선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체성 위기 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당'이 울산, 창원 등 노동자 지역에서 외면당했다. 노동자 기반을 상실한 진보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또한 비례득표율도 10.3%에 그치면서 2004년 총선의 13.1%에도 못 미쳤다. 정책과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정당의 특성상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에서 득표율이 대체로 높다.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정치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화두도 독일시 정당명부제 등 비례대표 확대였다. 그런데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이나 선출과정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서 비례득표율도 낮게 나타났다. 아무리 좋은 정책, 공약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치인이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당선자들의 현충원 참배 ⓒ뉴시스


심판론에 갇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선거

그렇다면 민주진보진영이 역사적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들이 서로 엉켜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심판론에 갇혀 변화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의 대부분의 선거가 사실상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선거는 심판선거의 절정이었다. 심판으로 나타난 분노의 에너지는 순간의 열기는 뜨겁지만 지속되기 힘들다. 그 자리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전망으로 채워야 했으나 야권은 이를 채울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지난 5년간 성찰과 치열한 준비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반MB 정서와 근거 없는 낙관에 안주해온 셈이다.

무엇보다 무상급식 논란 이후 복지,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이슈를 통해 새로운 균열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1%만 대변하는 낡은 틀을 대체해 지금까지 정치로부터 배제되었던 서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99%를 위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했다. 아니,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특히 복지 이슈의 경우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무상'만 강조할 뿐 구체적 실행프로그램이 부실하다보니 박근혜식 복지와 차별화되기 어려웠다. 말만 앞세우고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정책은 힘이 없다. 오히려 재원 문제 등에 대해 여당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주진보진영의 패배와 관련해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진영논리의 위험성이다. 내부의 과오는 진영논리 앞에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었다. 민주통합당의 임종석 사무총장 임명 및 단수 공천, 이화영 공천은 그 단적인 사례다. 재판중이거나 수사중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의도된 수사라는 명분,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한명숙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이들을 감싸안기에 급급했다. 만일 새누리당이 동일한 상황에 처할 때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 역시 관악을 선거에서 부정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단순한 실수로 축소하고자 했고, 또한 성추행 의혹 후보를 감싸안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는 더이상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기 어렵게 되었다.

진영논리의 위험성, 공정하지 못한 이중잣대

진영논리가 위험한 것은 내부를 향한 비판이 들어설 여지가 없으며, 성찰의 공간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성찰의 공간이 부재할 때 그 공간은 안팎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고인 공간, 진화가 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또한 진영논리는 공정하지 못하다. 내부와 외부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잣대다. 국민이 이명박정부에 분노했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부자, 재벌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고 서민에게는 기회가 닫혀 있는 불공정한 질서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진보진영도 진영논리에 갇히면서 공정성을 상실했다. 지금까지 야권에 유리한 역사적 기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나꼼수'도 반MB라는 명분하에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의 과오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민주진보진영이 진영논리에 갇히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결국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다. 큰 명분보다 작은 실리에 집착하고 오만 속에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는 공천의 부실함으로 이어졌고 충청권과 강원지역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정당득표율에서 야권연대는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친 득표율 46% 못지않은 46.6%를 얻었다.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을 압도했다. 문제는 대선까지 남은 7개월 동안 치열한 내부 반성과 쇄신의 노력을 실천할 수 있느냐다. 미래를 준비하고 정책과 아젠다를 통해 지지층을 다시 결집해내기에 이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정권 심판론' 대 '거대 야당 견제론'. 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새누리당의 아찔한 승리였다. 중앙선관위 디도스(DDoS) 공격, 전당대회봉투 사건, 형님 비리와 측근 비리, 민간인 불법 사찰 등 셀 수 없는 '악재'가 줄줄이 터진 올해 초만 해도 새누리당은 100석조차 바라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 일각에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1당은 물론 과반 의석 '재탈환'이었다.

이에 비해 수도권 성적표비교적 저조했다. 전체 300석 중 112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의석은 43석. 민심의 '바로미터'로 48석이 걸려 있는 서울에선 16석을 얻었다. "수도권서 40석만 얻어도 선전"이라던 당초의 기대보단 높게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뉴타운 열풍으로 이른바 '타운돌이'들이 서울만 40석을 휩쓸었던 기억은 4년 만에 '추억'이 됐다.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 가도는 이번 총선 승리로 다시 탄력을 받게 됐지만, 수도권 앞에선 '일시 정지' 상태가 된 셈이다.

수도권에선 힘 못쓰는 '박근혜 개인기'

새누리당의 이번 총선은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철저한 '박근혜 원톱 체제'를 방불케 했다. 지난 연말 '아사' 상태였던 당의 구원투수로 떠올라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당권을 장악했고, 공천 정국은 물론 선거전 역시 박근혜 위원장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혼자 싸우지만, 민주당은 대선주자들부터 외곽 유명인사까지 군단이 움직인다"던 민주당의 '자랑'은, 바꿔 말하면 야권의 '대군단'이 박근혜 1인조차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박근혜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선거임과 동시에, 박 위원장의 '대선 확장성'에 또 한 번 물음표가 붙게 된 선거이기도 했다. 수도권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의 '취약점'을 의식한 듯, 박 위원장은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절반이 넘는 8일을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훑으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박근혜 개인기'는 유독 수도권에선 먹히지 않았다.

정권 심판론, '수도권에서만' 먹혔다…'강남벨트'도 균열 조짐

사실 새누리당의 수도권 패배는 일정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4년 만에 후보 지원에 나서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았지만, 결국 7.2%포인트 차이로 참패해 '선거의 여왕' 자존심에 흠집이 났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친노 공천 논란,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말 바꾸기' 논란, 김용민 막말 논란 등으로 민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에도, 새누리당은 비교적 노련하게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유독 수도권에선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었다.

그만큼 수도권은 전통적으로 '바람'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과 18대 총선의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 이를 증명한다. 농촌 지역에 비해 연고주의에서 자유롭고, 젊은 유권자와 고학력자가 비교적 많다는 것도 그 요인이다.

새누리당의 확실한 '텃밭'이었던 강남벨트마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가까스로 강남벨트 7석 모두를 거머쥐었지만, 송파을의 천정배 후보(민주통합당)가 새누리당 유일호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등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강남을의 정동영 후보 역시 패배했지만, 그간 강남 지역 민주당 후보들의 '완패'에 비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다.

박근혜, 수도권 잡지 않으면 '대선 승리'도 없다

역사적으로 수도권은 전체 선거판을 좌우할 바로미터로 통한다. 전체 지역구의 45.5%, 112석이 걸린 수도권에 전체 총선의 승패는 물론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향방까지도 걸려 있는 것.

실제 지난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이 수도권 109석 가운데 69.7%인 76석을 얻어 1당으로 등극했고, 18개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뉴타운 바람'의 기세를 몰아 수도권 111석 가운데 72.9%인 81석을 얻으면서 1당에 올랐다. 새누리당은 이번 수도권의 패배를 텃밭 영남과 충청·강원권의 '싹쓸이'로 만회했지만, 수도권 표심을 잡지 않고선 대선 승리 역시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히 역대 대선에서 수도권이 막판 승부처가 됐다는 점에서 박 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당사에서 수도권을 잡지 않고 집권을 했던 정당은 찾기 힘들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역시 수도권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호남의 팽팽한 지역주의 탓에, 수도권이 선거의 최종 승패를 좌우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것.

수도권을 공략하지 않는 이상 박근혜 위원장 역시 '영남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에서 또 한번의 '재신임'을 얻은 박근혜. 대선을 앞둔 그의 마지막 '고지'가 수도권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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