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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기

“행복해지고 싶었어.” 사회경제성장과 개인행복감는 비례하지 않는다. 변영주 감독<화차>

by 아프로뒷태 2012. 3. 13.

 

 

 

사회가 외면한 개인의 문제를 추리하다.

 

영화는 장르가 중요하다. 동일한 소재의 이야기도 어떤 장르의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맛이 아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장르라는 것이 주제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추리물이나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는 장애가 많은 편이다. 추리의 대상, 범인이 노출되면 관객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범인을 알고 보는 영화는 김빠진 맥주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강점 또한 많다. 소설부분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가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만큼 독자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르는 없다. 형사 또는 주인공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독자가 추적자의 심리에 가장 가깝게 동화시켜주고 범인을 추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본래 ‘추리소설이란 것도 단순히 살인사건만을 드러내어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일련의 사건(살인)과 해결의 진행 양식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탐구라는 지극히 명료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추리소설은 일련의 살인사건과 그 해결점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의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10쪽) 박상하,『추리소설 창작노트』, 집문당, 1998’

 

 

 

미스터리는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서스펜스다. 그것을 잡아야 생명력이 있고 폼이 난다.

 

추리소설은 ‘비밀, 말해진 것 그리고 말해지지 않는 것’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것을 이끄는 힘은 미스터리이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일, 비밀스런 일로부터 시작된다. 미스터리의 관건은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서스펜스이다. 미스터리 영화는 2시간의 러닝 타임동안 스크린을 향한 관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는 일이다. 2시간동안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는 건. 미스터리 영화는 공포영화와는 다르다. 공포영화는 서프라이즈로 사람의 오감을 곤두세우지만 미스터리는 시종일관 사람을 의문으로 이끌며 시켜야한다. 그래야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가 갖는 분위기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판권을 우리나라 영화사가 꽤 사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모방범>도 A영화사가 샀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2008년부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은 획기적인 소재에 목말라 있었다. 그때 출판계를 통해 소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당시에는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이 일본소설에 열광했고 일본소설의 붐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일본 소설의 판권을 사놓은 영화사가 늘어났다. 이러한 사회현상 때문인지 지금에서야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등장하는 것은 출판계에 비해 다소 뒷북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시의성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에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제기된 문제들이 지금 한국에서 문제되고 있다는 점은 낯설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의 문화가 유행하는 시차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화차>는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카드로 인해 불행해진 여성의 인생을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소설 ‘화차’를 원작으로 일본 아사히 TV에서 2011년 11월 드라마로 제작해 방송되기도 했다. 과거의 일본에서 벌어진 사회문제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기적으로 <화차>는 지금의 한국사회에 걸맞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을 부추기며 급성장했고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실직과 타인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불안해하거나 가난으로 고통받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불안의 시대를 말하다.

 

선영(김민희)의 실종을 맞이한 문호(이선균)는 한국사회의 불안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나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선영이 어떻게 살인마가 되어 가는지, 제대로 된 어른이나 보호자가 없이 방치된 사회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공황을 맞게 되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결혼을 앞두고 문호와 함께 시어른께 인사를 가는 선영이 갑자기 한통의 전화를 받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그녀가 사라졌다!

결혼 한 달 전, 부모님 댁에 내려가던 중 휴게소에 들른 문호와 선영. 커피를 사러 간 사이 선영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나가고, 돌아온 문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문이 열린 채 공회전 중인 차 뿐이다. 몇 번을 걸어봐도 꺼져있는 휴대폰, 내리는 빗속으로 약혼녀가 사라졌다.

 

그녀의 모든 것은 가짜다!

미친 듯 선영을 찾는 문호. 돌아온 그녀의 집은 급하게 치운 흔적이 역력하고 다니던 회사의 이력서까지 허위다. 단서가 사라질 즈음, 선영이 개인파산을 했었고 정작 면책 서류에 남은 그녀의 필적과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지문도 없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를 찾으려면 진짜 이름부터 알아내야 하는 문호는 전직 강력계 형사인 사촌 형 종근에게 도움을 청한다. 통장 잔액을 인출하고, 지문까지 지우고 완벽하게 사라진 그녀의 행적에 범상치 않은 사건임을 직감하는 종근. 결국 그는 선영의 실종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는데...

 

추적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영화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람은 문호(이선균)이다. 문호(이선균)의 눈을 통해 선영의 과거가 드러난다. 문호가 알아낸 충격적 진실은 단순하다. 선영이 선영이 아니라는 것과 살인자라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선영이 살인자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드러나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분제도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분제도는 다양한 방식이나 다양한 얼굴로 존재한다. 교육, 직업, 권력, 돈, 주종관계, 노사관계 등등. 한국사회에서 양반가문의 자식은 권력을 상징한다. 양반의 집단으로 유명한 지역, 안동에서 태어난 문호는 가문의 뛰어난 자손이다. 더욱이 문호는 서울에 개인병원을 가진 동물병원의 원장이다. 중상류계층의 인물이다. 반면 선영은 가난하다 못해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까지 써주고 인생을 몰락당한 인물이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만나 화합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사랑은 시작초반부터 균열로 깨지기 시작한다. 균열의 원인은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돈 때문이다. 선영은 돈 때문에 늘 도망자가 되어야 한다. 카드빚 때문에 도망가고 아버지 빚 때문에 매춘에 들어선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까. 행복할 권리를 타인으로부터 박탈당한 선영을 통해 사회와 국가가 개인의 행복마저 빼앗아가고 나몰라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앞만 보고 달리며 경제성장만 앞세웠다. 뒤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살펴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차없이 외면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유한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속설로 떠돌 정도이다. 빈부의 격차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육체적으로 삶이 불행해진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문신이 낙인되어 있다는 것일까. 부와 빈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계급이나 신분처럼 상징되어 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며 부모에게 관심받지 못하고, 그리고 부모의 사채빚으로 인생을 저당잡힌 여자는 아무리 행복해지려고 노력해도 자신의 신분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자가 행복해지는 건, 부모가 준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기.

 

영화에서 선영이 유일하게 행복해하는 순간은 문호를 만났을 때이다. 정확히 문호와 결혼을 앞둘 때이다. 그러나 문호가 알고 있는 선영은 진짜 선영이 아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진짜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슬픈 패러독스다. 하지만 어쩌나? 그렇게라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과연 선영의 선택처럼 그런 걸까? 순수하게 100%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한국사회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흘러가는 걸까? 오직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일까. 영화에서 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차경선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신보다 형편이 낫거나 중상계급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또다른 얼굴인 것을. 과연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이러한 한계와 유혹를 극복할 수 있을까?

 

 

 

 

“행복해지고 싶었어.” 사회경제성장과 개인행복감의 상관관계는 비례하지 않는다.

 

선영인줄 알았던 여자가 선영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살인자였고, 그 살인자는 또 알고 보니, 부모의 사채빚으로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쓴 여자였다. 그 여자의 과거를 돌아보면 끔찍하다. 꽃다운 청춘이 얼마나 더 잔인하게 짓밟히고 무너져야 할까? 망가진 선영(차경선)을 보면서 갈 데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이 폭력을 당하는 청춘,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경선는 사채없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강간당하고 이곳저곳의 술집에 팔려다니며 매춘의 돈벌이로 전략한다. 또한 누군지 모를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고 그 아이마저 죽게 된다. 참, 기구한 인생이되, 현재의 자신으로는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는 인생이다.

 

 

 

 

괜히 아무것도 없는 내가 선영에게 미안하고 안타깝다.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윤리적으로 보았을 때, 살인은 인간으로서 자격미달의 행위인지라 처벌이 마땅하지만 그 살인자가 밉지 않고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구한 인생이 영화에서만 전개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또다른 선영이 만연할 것이다. 또다른 선영에게 행복해지고 싶으면, '너 자신으로 살아야 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러기엔 미안하고 안타깝다. 위기에 봉착한 선영에게 견뎌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국가가 또다른 선영을 뒷받침해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부디, 선영아. 너 자신으로 살길.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선영(차경선)의 투신자살로 마무리 되는 결말은 안타깝다. 윤리적으로 처벌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힘없는 사람은 발악해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거둬야 하는 건가? 한 개인의 문제로 폭발되고 잠식되어야 하는 건가? 만약 문호가 선영을 보내주고 선영이 저벅거리며 기차에 올라탔다면...  적어도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윤리의식과 절대 악과 절대 선에 화두를 던지지 않았을까?

 

 

 

 

 

미야베 미유키 (일본어: 宮部 みゆき みやべ みゆき, 1960년 12월 23일 ~ )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도쿄 도 고토 구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추리작가협회와 일본SF작가클럽의 회원이다.

<우리들 이웃의 범죄>(1987년)로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고교 졸업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쓴 소설이었다. 그녀는 특별히 작가가 되기 위해서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직장 생활 중 문화센터나 시민교실에서 열리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강좌'를 들은 것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6년 동안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속기 내용을 원고로 다시 고쳐쓰는 훈련을 했다"고 판타스틱 창간호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표작 <이유> <모방범> <화차>는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르포식' 추리소설, '사회파 미스터리'다. <이유>는 부동산 거품, <모방범>은 연쇄살인범, <화차>는 신용불량자를 다루고 있다. 시리즈로는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누군가> <이름 없는 독>)가 있다. 게임 매니아로 알려져 있으며 <브레이브 스토리> <이코-안개의 성>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소설이다. <브레이브 스토리>는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와 만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몇 자 쓰려고 인터넷에 접속을 했다.

접속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기사가 이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영이와 경선이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방범들일지도 모르겠다.

 

 

[머니투데이 이상배기자][삼성경제연구소 온라인 설문]


<출처: 삼성경제연구소>

"우리나라에서 4인 가족이 중산층으로 살려면 1년간 얼마 이상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44%가 '7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지난 12일부터 25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3일 오후 2시20분 현재까지 이 같이 집계됐다. 현재까지 응답에 참여한 인원은 978명이다.

연구소는 설문조사에서 "회원님들이 생각하시는 대한민국에서 4인 가족이 중산층으로 살기 위한 일년에 필요한 가계소득은 얼마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연구소는 이어 "중산층 가구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 가운데에 있는 가구소득(중위 소득)의 50~150% 범위에 속한 가구를 뜻한다고 사전에는 정의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가장 많은 431명(44.1%)가 '7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했다. 또 259명(26.5%)이 '5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해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는 '1억원 이상'이라고 209명(21.4%)이 응답했다. '1억5000만원 이상'이 51명(5.2%)이었고, '3000만원 이상'이 24명(2.5%), 기타가 4명(0.4%)이었다.

이에 대해 회원 이모씨는 댓글을 통해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이라고 하면 연소득 7000만원 이상은 돼야할 것 같다"며 교육비 부담이 중산층 생활의 중요한 변수임을 지목했다.

회원 김모씨 역시 "연소득이 7000만원이라고 하더라도 교육비와 집세 따지면 배고픈 중산층일 것"이라고 밝혔다.

회원 안모씨는 "7000만원 이상이 4인 가족이 중산층으로 살기 위한 연간 가계소득이라는 의견이 대세인데, 나에겐 꿈 같은 소득 수준이니 조금 기운이 빠진다"며 "중산층에 든다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고 밝혔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의 중위 소득은 월 350만원으로 연간 42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기준으로 중산층에 해당하는 중위 소득의 50∼150%는 2100만∼6300만원이다. 이는 OECD 기준의 중산층과 설문 응답자들의 인식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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